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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첫마음이 아름다운 이유 / 조연경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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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마음이 아름다운 이유 ] - 조연경 / 방송작가
요즘 ‘겨울 연가’라는 TV 드라마가 장안의 화제가 되고 있다． 흔히 볼 수 있는 삼각 구도의 멜로 드라마지만 거기에는 젊은 시절 누구나 한 번쯤 열병처럼 앓아본 첫사랑이 있기 때문이다． 처음으로 느껴본 사랑의 감정,선물 포장을 풀 때의 설렘과 평범한 일상에 도금 가루를 뿌린 것처럼 갑자기 모든 게 반짝반짝 빛나던 경이로움을 잊을 수 없을 것이다．
비단 사랑만이 아니라 모든 것에 ‘첫’이라는 관형사가 붙으면 팽팽한 긴장감과 설렘을 갖게 된다． 어린 시절 나는 새 공책을 사서 첫 장에 글씨를 쓸 때면 언제나 한자 한자 정성스럽게 써내려가며 새로운 각오를 다졌다．
‘글씨를 예쁘게 잘 써야지’
그러나 서너 장을 넘기면서부터 새 공책을 대했을 때의 첫 마음은 슬며시 사라지고 종전처럼 편한 대로 아무렇게 글씨를 써내려가곤 했다．
처음으로 대학생이 되었을 때 나는 젊음을 낭비하지 않기 위해 많은 결심을 했다． 좋은 책을 많이 읽어야지,여행을 자주 다녀 시야를 넓혀야지,강의 시간에 충실해야지． 그러나 첫 결심은 시간이 지날수록 어린아이가 불어 올린 비눗방울처럼 톡톡 터지면서 말끔히 사라졌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지루하다는 이유로 마거릿 미첼의 책보다 어두운 극장 한 구석에 앉아 클라크 케이블과 비비안 리를 보는 것으로 대신했고 친구의 리포트를 천연덕스럽게 베껴 쓰기도 했으며 긴 방학 기간 중 집 떠나면 고생이라며 배낭을 베개 삼아 햇빛 잘 드는 거실에 누워 낮잠으로 소일하기도 했다． 또 첫 마음을 잃어버리고 만 것이다．
어디 그뿐이랴? 첫날밤 신혼여행지에서 남편과 나는 부부십계명이라는 것을 만들었다． 같은 비행기를 타고 온 대부분의 신혼부부들이 스카이라운지 바에 가서 우아하게 와인을 마시는 동안 우리는 구구법을 외우는 초등학생처럼 낑낑거리며 하루에 열 번씩 사랑한다는 말을 하자, 상대방 부모님께 잘 하자, 부부싸움을 하지 말자 등을 써내려갔다． 그러나 한 달도 못 돼 부부싸움을 하는 바람에 첫 마음은 깨지고 말았다．
처음으로 엄마가 된 날 눈높이를 아이한테 맞춰야지,집착하지 말고 한 발짝 떨어져야지,아이를 야단칠 때 야단맞는 이유를 설명해줘야지,여러 생각을 하며 좋은 엄마가 되고 싶은 열망에 가슴이 울렁거렸다． 그러나 아이가 접시를 깼을 때 내 기분에 따라 “넌 왜 그렇게 조심성이 없니?” 꽥 소리를 지르기도 하고 “어디 손 안 다쳤니?” 명주실처럼 보들보들한 목소리로 묻기도 하는 변덕쟁이 엄마가 됐다．
‘초심(初心)을 잃지 않으면 무슨 일이든 성공할 수 있다’는 말이 있다． 처음 먹은 마음을 끝까지 지켜나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려면 남다른 노력과 인내와 절제가 뒤따라야 할 것이다．
이제 봄의 시작인 3월이다． 입학,입사,결혼 등 출발점에 서 있는 사람이 많은 달이기도 하다． 소중한 첫 마음을 잃지 않도록 나 자신을 다시 한 번 점검하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도 필요할 듯 싶다．
국민일보 [여의도에세이]
2002년 3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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