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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은 생명의 큰 고통 |  | |
| 어느 화창한 가을날, 아이의 모자 위에 앉아서 난생 처음 집 밖으로 나와 어딘지도 모르는 곳으로 소풍을 나왔던 파리는 점심 시간이 되어 아이가 도시락을 먹으려고 뚜껑을 열었을 때, 그만 아이의 손에 잡히고 말았다.
점심 시간이 되기 전까지는 아이의 콧등이며 어깨, 등 뒤 이곳 저곳으로 옮겨다니며 파리는 처음으로 보는 갖가지 신기한 구경을 다할 수 있었다.
사람보다도 훨씬 덩치가 더 큰 코끼리며 기린, 사자, 호랑이 같은 어마어마한 동물들이 있다는 것도 파리로서는 처음 알게 된 사실이었다.
그런데 오전 중 내내 신나는 구경을 하고, 잔디밭에 앉은 아이가 도시락을 열었을 때 참을성 없이 그 위로 날아가 앉은 것이 큰 실수였다.
˝이 더러운 똥파리.˝
하고 아이는 말했다.
분명히 그 아이가 살고 있는 집에서 태어나 똥 근처에는 가본 적도 없건만, 아이는 그렇게 불렀다.
아이가 마악 식사를 하려던 동작을 멈추고, 호흡을 끊은 채 가만히 있었기 때문에 파리는 멋 모르고 몇 번의 시식(試食)을 즐겼다.
그러나 다음 순간, 아이가 벼락같이 한 손을 날려 낚아채는 바람에 파리는 기겁할 듯 놀라며 아이의 주먹 속에 갇히게 된 것이다.
˝너 오늘 혼 좀 나봐라.˝
아이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륙색 속에서 얼마 전에 이미 다 마셔버린 작은 사이다병을 꺼냈다. 아이는 유리병 속에 파리를 집어넣고 마개를 닫은 다음 그것을 도로 륙색 속에 쑤셔 넣었다.
그 다음부터 파리는 컴컴한 병 속에 갇혀 더 이상 아무 것도 구경할 수 없게 되었다. 갑갑하고 지루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파리는 날아오르고 또 날아올랐다. 그때마다 병 속의 이곳 저곳에 몸을 부딪치고 나동그라지곤 했다. 끝없이 날아오르고 부딪쳐 떨어지곤 하던 파리는 마침내 지치고 지친 끝에 늘어진 상태로 죽은 듯 꼼짝 않고 있었다.
파리는 비로소 그 아이와 함께 밖으로 나온 것을 후회했다. 파리는 사실 아이를 좋아했다. 국민학교 3,4학년쯤 되는 꼬마 아이로서 좀 짓궂게 생긴 개구장이였지만, 집에서는 귀염둥이라는 것을 파리는 익히 보아 알고 있던 터였다. 그런데 그 아이가 이렇게 자기를 미워할 줄은 파리는 정말 짐작도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 어떻게 되는 걸까.
도저히 빠져나갈 수 없는 병 속에서 파리는 절망했다. 이제는 더 이상 날개를 움직일 기력도 사라져 버렸다. 생각도 돌아가지 않았다. 파리는 가물가물 정신을 잃어갔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모른다. 길고도 긴 시간 동안 파리는 병 속에 갇힌 채 어딘가로 계속 흔들려 갔다. 마침내 주위가 밝아졌을 때, 파라는 비로소 그 아이의 방에 되돌아와 있는 것을 알았다.
아이는 병을 꺼내서 허공에 들고 파리를 살펴보고 있었다. 죽지 않았나 보고 있는 것 같았다. 꼼짝 않고 있으려니까 아이는 병을 흔들어 보았다. 그 바람에 파리는 다리가 미끄러져 자기도 모르게 날개짓을 하며 다시 날아올랐다.
아이는 심술궂게 웃으며 가만가만 병마개를 열더니, 놓치지 않으려고 한 손으로 병 주둥이를 막고 병을 거꾸로 들어 탁탁 때렸다. 파리는 다시 아이의 손에 들어왔다.
˝도망가면 안돼? 내가 널 도망가지 못하게 해줄 거야.˝
아이는 파리를 들여다보며 다시 심술궂게 웃었다. 아이는 자리에 앉아 어떻게 할까 궁리를 하는 듯 한참 가만히 있더니, 손가락으로 몸통을 꼭 잡고 파리의 날개 하나를 잡아 뜯었다.
˝아아악.˝
뜨겁게 달군 쇠로 지져대는 것같은 무서운 고통을 등줄기에 느끼며 파리는 비명을 질렀다. 아이는 그 비명 소리를 전혀 못 듣는지, 재미있다는 듯 히죽히죽 웃으며 조심조심 다른 쪽 날개마저 잡아 뜯었다. 그런 다음에야 아이는 파리를 방바닥에 놓아주었다.
˝자, 이젠 실컷 도망가봐.˝
아이는 놀려대듯 그렇게 말했으나, 파리는 아파서 어쩔 줄을 모르고 계속 비명을 지르며 팔딱팔딱 뛰었다. 생각 같아서는 어서 빨리 이 무서운 아이로부터 달아나고 싶었으나, 아무리 날개짓을 해도 날개가 떨어져나간 자리에 무서운 아픔만 더해올 뿐이었다.
아픔을 무릅쓰고 파리는 계속 뛰었다. 그러나 얼마큼 달아나면 어느새 아이의 손바닥이 앞을 가로막곤 했다. 가만히 있으면 아이는 어서 뛰라고 콧노래를 부르며 주위를 손바닥으로 탁탁 때렸다.
아이는 날지 못하고 톡톡 뛰기만 하는 파리가 재미있어 낄낄낄낄 웃었다. 날개가 있을 때는 그냥 걸어가는 때도 있었는데, 그걸 떼고 나니까 계속 뛰기만 하는 것이 여간 우습지 않았다.
파리도 그렇게 톡톡 뛰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 스스로 생각해도 한심스러웠다. 그 어린 아이의 심술궂은 얼굴이 이제는 지옥에서 온 저승사자보다도 더 무섭게 느껴졌다.
아이는 파리가 뛰는 높이를 유심히 보았다. 고작 1cm도 될까말까한 높이였다. 아이는 파리를 필통 속에 가두어 놓은 다음, 도화지를 한장 꺼내어 종이 상자를 접었다. 천정이 없고 사방으로 3,4cm쯤 되는 높이의 담이 쳐진 종이 상자였다. 아이는 파리를 꺼내 방금 만든 그종이 상자 속에 넣어 놓았다.
˝어디 도망가봐.˝
아이는 다시 상자 주위를 소리나게 손바닥으로 두드렸으나, 아이가 계산한 대로 파리는 그 종이담을 아무리 해도 뛰어넘을 수가 없었다.
아이는 부엌에 가서 성냥을 한 통 가지고 들어왔다. 파리가 어쩌나 보고 있으려니까, 아이는 성냥불을 켜 들고 있다가 잠시 후에 그것을 훅 불어 껐다. 그러나 아이가 들고 있는 타다 남은 성냥개비 끝에는 아직 빨간 불똥이 매달려 있었다. 아이는 그 불똥으로 파리의 꽁무니를 지졌다.
˝앗 뜨거, 앗 뜨거.˝
파리는 다시 기겁할 듯 놀라 톡톡 뛰며 달아났지만, 불똥은 계속 궁둥이를 따라오며 쿡쿡 찔렀다. 파리는 앞발을 싹싹 비비며, 차라리 어서 빨리 죽여달라고 아이에게 빌었다. 그러나 파리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아이는 이 재미있는 놀이는 반 시간 가량이나 계속하느라고 얼마 남지 않았던 성냥 한 통을 다 없애버렸다. 성냥을 더 가져올까 생각했으나, 아이는 이제 싫증이 났다.
˝한숨 주무시고 날 테니까, 그 동안 그 속에서 계속 뛰고 있어야 한다.˝
아이는 상자를 책상 위에 올려놓고, 슬그머니 침대 속으로 들어가버렸다.
파리는 아이가 잠을 자고나서 목욕을 하고, 저녁을 먹고, 공부를 시작할 때까지 살아 있었다. 이렇게 몸에 큰 상처를 입은 채, 계속 시달림을 받고 나서도 멀쩡하게 살아 있을 수 있는 것이 지구상에 얼마나 될까. 만일 사람을 팔 다리를 잘라 놓은 상태로 이렇게 놓아둔다면 아마 한 시간도 못가서 죽고 말리라.
아이는 숙제를 하려고 책상 앞에 다가 앉았다가 종이 상자를 보고서야 파리가 생각났다. 아이는 또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종이 상자를 들고 옥상으로 올라갔다. 옥상으로 올라간 아이는 한 가장자리로 가만가만 다가갔다.
˝내가 널 마지막으로 날 수 있게 해줄께.˝
하고 아이는 말했다.
이 아이가 나에게 또 무슨 형벌을 가하려고 이러는 것일까 하고 파리는 생각했다. 인간이 얼마나 잔인한 것인가를 비로소 깨달은 파리는 이제 아이에게 뭐라고 더 사정할 엄두도 나지 않았다.
아이는 종이 상자를 든 손을 높이 쳐들었다.
오오, 하느님.
파리는 그 순간에 비로소 신(神)을 찾았다.
왜 하느님께서는 파리를 더러운 것으로 만들어 놓았으며, 인간을 괴롭히는 존재로 살아가게 하셨읍니까. 파리가 이 세상에서 할 수 있는 유익한 일은 무엇입니까. 고작 잠자리나 개구리, 제비 따위의 먹이가 되는 것입니까.
파리는 마지막으로 피맺힌 절규를 쏟으며 하늘을 보았다. 아득한 하늘 위에서 영롱하게 반짝이고 있는 별들이 파리의 눈에도 들어왔다.
아이는 쳐든 손에 들고 있던 종이 상자를 가만히 기울였다. 어둠에 덮인 천길 낭떠러지가 입을 열고 있었다. 그 어둠 속으로 떨어져 내리며, 파리는 멀고 먼 하늘 나라 어딘가에는 파리들만의 낙원도 있기를 기원했다.
-우희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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