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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똥 |  | |
| 누가 ‘그것’을 더럽기만 하다고 하는가?
한국대표팀의 마지막 키커 홍명보가 패널티 라인에 섰다. 킥을 성공시키면 한국은 4강 진출, 만약 실축하면 승부는 다시 몇 분 후로 미뤄진다. 박빙의 순간, 숨이 멎고 다리가 후들후들 떨리고 눈앞이 뱅뱅 돈다. 지구가 망하더라도 이 순간 TV 앞을 떠나는 건 불가능하다. 그런데 …
너무 긴장한 탓인지 갑자기 뱃속이 요동치며 진땀이 흐른다. TV를 응시하던 시선이 순식간에 안으로 굽어들며 내장의 급격한 동요에 반응하기 시작한다. 월드컵 사상 최대의 기적을 앞두고 이게 웬 생뚱맞은 내부의 역습인가? 참아야 하지만 참을 수 없다. 몸 외부의 기적을 바라볼 것인가 몸 속에서 일어난 불시의 소요를 진정시켜야 할 것인가. 이 애꿎은 딜레마는 그러나 금세, 호쾌하게 결단난다. 홍명보가 볼을 향해 달려가는 순간, 번뇌하던 햄릿형 붉은 악마는 어느덧 화장실 변기 뚜껑을 열어젖히는 것이다. 슛∼고오올! 볼은 스페인 골키퍼 카시아스를 젖히고 그물에 출렁! 몸에서 급전직하한 누릿한 덩어리는 고요하던 변기 속 물 위에 철퍼덩! 한국은 4강에 진출하고 몸은 가벼워진다. 대지가 전신으로 화응하는 이 기막힌 앙상블이여!
중국인들은 일찍이 ‘그것’을 ‘다이엔(大便)’즉, ‘커다란 편안함’이라고 불렀다. 그에 대한 상대어로 액체 상태의 ‘그것’을 지칭하는 ‘작은 편안함’도 있다. 아시다시피 이건 우리나라에서도 마찬가지다. 서구에선 대개 욕설이나 좋지 않은 상황을 비유할 때 ‘그것’을 입에 담는다. ‘그것’은 입으로 들어간 걸 뒤로 뱉어내면서 생겨나는 것인데, 뒤로 나온 걸 다시 입에 담을 정도라면 그 만큼 기분이 ‘그것’같다는 소리일게다. 일례로 전 미국대통령 빌 클린턴은 아칸소 주지사 시절 지지율이 급격히 하락하자 “우물 속으로 떨어지는 ‘그것’덩어리 같군”이라고 푸념했단다. 혹시, 르윈스키와의 섹스 스캔들이 불거졌을 때도 그는 ‘그것’을 입에 담지 않았을까? 그러고보니 왠지 고상한 척(?) 하는 사람들일수록 ‘그것’을 많이 씹을 듯하다. 물론, 근거는 없다.
「똥」은 제목 그대로 ‘그것’에 대한 책이다.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없을 정도로 명징한 제목이지만, 굳이 다른 소제목을 달아보자면 〈세계‘그것’백과사전〉정도면 충분할 듯하다. 책은 ‘그것’과 관련된 모든 것들이 다양하게 담겨 있다. 세계 최고의 해양연구소 UCSD 스크립스의 명예교수인 글쓴이 랠프 A. 레윈은 “‘모든 사람이 평생토록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몇 분씩의 시간을 소비하는 활동’에 대한 자연스런 관심” 때문에 이 책을 썼다고 말한다. 그러면서도 그는 독자들에게 이렇게 반문한다.
“그런데 친애하는 독자 여러분, 끝으로 한 가지만 물어 봅시다. 도대체 이 책을 사거나, 빌리거나, 최소한 훑어보기라도 해야겠다고 생각한 이유가 뭡니까?” - 〈글쓴이의 말〉에서
글쓴이에 따르면 ‘그것’을 연구하는 학문분야는 “스캐톨로지(scatology)”란 단어가 널리 쓰인다. 주로 더럽고 외설적인 언어를 소재로 하는 그 연구는 일종의 비유나 수사학에 가깝다. 때문에 글쓴이가 자신의 연구에 붙인 단어는 “코프롤로지(coprology)”, 즉 ‘그것’자체에 대한 과학적이고도 객관적인 연구라는 의미다. 그 만큼 이 책에는 ‘그것’에 대한 방대하고도 놀랄만한 정보들이 수북히 쌓여있다. 인간의 ‘그것’뿐만 아니라, 각종 동물들의 ‘그것’의 크기와 생김새, 성분, 냄새, 심지어는 거기에 담긴 영양소까지 세세하게 밝히고 있다. ‘그것’을 대하는 각기 다른 문화적 태도와 언어적 변용 사례들을 보고 있으면 ‘그것’에 대한 문화인류학이라 불러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무수한 ‘그것’들에 대한 탐색의 끝에 글쓴이는 이런 제안을 한다.
“실로 방대한 이 주제를 놓고 회의를 열 수도, 기념 우표 시리즈를 발행할 수도, 현대 미술관에 특별전시관을 차릴 수도, 사발통문을 돌려 학회를 조직할 수도 있을 것이다. 또 누가 알리? 전문 잡지―지나친 욕심인가?―라도 창간될지. 그 이름도 거창하여라. 《인터내셔널 저널 오브 컴퍼러티브 코프롤로지(비교 분변한 국제 저널)》!˝ (p.241쪽)
누구에게나 있지만 누구에게도 사랑받지 못한 몸 속의 잉여 덩어리, 그렇지만 한 유쾌한 노학자의 노력에 의해 새로운 인류학의 저변을 넓히는 ‘그것’, ‘똥’! 이 책은 그 ‘똥’을 언어적인 에두름 없이 정직하게 얘기한다. 대개 지저분하고 더럽게만 여겨지는 ‘똥’으로 칠갑돼 있지만, 읽고 나면 마치 쾌변의 뒤끝처럼 속이 개운하고 마음이 티없어진다. 어린아이들이‘똥’을 좋아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지 않을까? (강정 igguas@ libro.co.kr/리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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