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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자 |  | |
| 너 자신을 좀 알아라
돌아가지 않고 딱 잘라 이 책의 핵심을 말하겠다. 남자들은 쪼다다. 진화과정의 미아, 실수한 오발탄이며, 하나의 가면을 달고 사는 것으로도 모자라 수십 개의 가면을 달고 산다. 그러니까 음울한 박쥐인간 베트맨 따위에나 열광하는 이상한 족속이라는 것이다. 공격적이고 의사소통 능력도 결여됐으며 게다가 쓸데없이 목소리까지 크다. 이런 주장이 어느 페미니스트 여성학자에게서 흘러나온 것이라면 아마 남자들이 예비군 훈련 때나 써먹었던 협동심을 발휘해 모두 봉기하고 일어났을지도 모른다.
여자의 적은 여자인가? 남성들이 페미니즘을 조소할 때 곧잘 하는 말을 이제 뒤집어 보겠다. 남자의 적은 남자인가? 이 책의 저자는 남성이다. 인문학에 도통해 「교양」이라는 무지막지하게 두꺼운 베스트셀러를 쓴 남성. 멀리서 빨강머리 페미니스트들의 유쾌한 웃음소리가 들리지 않는지. 이 책은 독일에서 30주 동안이나 베스트셀러 1위를 지켰다. 여자보다 남자가 이 책을 더 많이 샀는지는 물론 알 수 없다.
이제까지 남성학에 관한 책은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페미니즘에 대응할 수 있는 그 어떤 이즘도 존재하지 않았던 게 사실이다. 거꾸로 생각하면 그것은 남자 자신이 그만큼 자신들에 대해 무지했다는 것을 공공연히 고백하는 것과 같다. 여자보다는 어쨌든 우월하다는 막연한 의식이 자신 알기를 소 닭 보듯 해온 것이다.
이 책에서 무게가 실리는 주장은 여성은 자연적이지만 남자는 인위적이라는 것이다. 여자는 태어날 때부터 여자다. 그러나 남자는 만들어진다. 이미 그것인 여자에 비해 만들어져야만 하는 남성은 유전학상 Y염색체의 강한 도태 압력과 사회적 경쟁자들로부터의 여러 위협을 감수해야 한다. 수천 가지 종류의 버그가 생길 소지가 다분하다는 것. 문명을 만든 것 역시 여자다. 문명은 여자들이 섹스와 함께 섬세하지 못한 남성의 야만성을 길들이기 위해 사용하는 도구라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다.
`「벌거벗은 원숭이」의 저자이자 동물학자인 모리스(Desmond Morris)는 남자가 언제 퇴행하는지를 조사하면서 훌리건의 행태를 연구했다. 그는 그 광적인 축구팬들이 전투 준비를 하는 부족전사와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똑같이 행동한다는 것을 알아냈다...(중략)...코치는 원시인들을 치료하는 무속인 역할을 하고 팀 구성원들은 엘리트 전사이며, 팬들은 보병대, 합창단 그리고 전투연맹이다. 그녀는 그곳에서 혹시 자기 남편만큼은 예외로 축구를 우습게 여기는 세련된 정신의 소유자라는 것에 속아서는 안 된다. 남편의 종족은 경우에 따라 정치적 끈다발을 형성하고 있거나 연구집단 또는 회사의 사무실 계파로 구성되어 있지만, 이 모든 집단의 원형과 기본 모델은 훌리건이나 부족전사의 그것과 동일하다...(중략)...축구장을 한 번 방문한 여자는 많은 것을 배운다. 그녀는 거기서 남성 유전자가 축제를 즐기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다.`(pp. 57-58)
이 두꺼운 책을 전부 읽을 시간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많은 카테고리로 나누어져 있는 주제별 소제목만이라도 정독할 것을 권유한다. ´남근은 조울증에 걸려 있다´ , ´남자의 엿보기 성욕´ 이라는 소제목을 예로 들면, 남자의 자부심이 왜 본질적으로 조울증적인지를 섹스의 비유에 의지하여 수긍할 수 있고, 남자들이 왜 빤한 스토리의 포르노에 열광하는지 막연하나마 짧은 힌트를 얻을 수 있다. 또 고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인물들을 다시 각색해서 만든 ´여성들의 희극´(암피트리온 또는 알크메네의 딜레마) 이나, ´남성들의 초상화´ 라는 소제목의 글을 따로 뽑아 읽는 것도 시간을 절약할 수 있는 방법이다.
이 책은 이리가라이나 글로리아 스타이넘식의 남성주의에 대한 반대급부로서 여성의 우월성을 입증하는 방식이 아니라는 점에서 한결 여유 있고 유머러스하다. 같은 맥락에서 이 책을 여성들이 남성을 공격하는 방식으로 사용하는 것은 위험하다. 농담, 유머, 은유를 차용하는 저자 특유의 문체 때문에 행간이 느슨해서 그 틈새로 좌충우돌하는 전략과 간텍스트적인 오차가 발생할 소지가 있다. 그러므로 남성들이 자기 자신을 아는 데 사용하는 것이 이 책의 효용가치를 더 높이는 일이다. 아내나 애인에게 들키지 말고 혼자서 읽어라. 기분이 나빠지다가도 키득키득 웃게 될 게 자명하다. 게다가 이 책은 읽고 나면 괜히 저자가 궁금해지는 좀 유별난 책이다. (백영옥 rararal93@libro.co.kr/리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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