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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모던뽀이, 경성을 거닐다 |  | |
| 다- 허무러진 대경성 넓은 바닥에서 보는 만문만화
신문을 펴면 만국공통으로 우리의 눈길을 끄는 면이 있다면 바로 오늘날 카툰, 만화, 시사만평 등으로 불리는 만화다. 이것의 뿌리가 바로 1920∼30년대 일제식민 치하에서의 일간지와 잡지 등에 글과 함께 주로 실렸던 만화, 만문만화이다. 만문만화란 흐트러진 글이라는 만문(漫文)이 있는 만화를 일컫는다. 만문만화와 그냥 만화의 가장 큰 차이점은 보통의 만화가 말풍선으로 이야기를 담고 있다면 만문만화는 짧거나 긴 서술문이 이야기를 전한다는 것이다. 어휘야 다소 생경할지라도 일단 만문만화를 보고 나면 이다지도 재미있을 수가 없다. 역시 시대를 뛰어넘고 역사를 가로지르는 게 바로 만화 보는 재미일 거다. 또 한가지, 모든 창작물들이 시대의 성감대이듯이 흐트러진 글에 난삽한 그림이라는 허울을 쓰고 있지만 만문만화도 수상한 시대 속에서 경성의 사회상과 풍속을 꼬집고 있는 내용 일색이다.
우리나라에서 만문만화는 1925년 동아일보에 석영 안석주가 만화를 그리면서 많은 작가들이 줄을 잇게 된다. 일제의 언론 탄압이 심해지면서 1930년대 시사만화는 설자리가 없어지고 보다 우회적인 방식의 만문만화가 주류를 이루게 된다. 「모던뽀이, 경성을 거닐다」는 안석주의 대표작 160여 컷을 따라 당시를 보여주면서 만문문화를 논한다. 청계천을 중심으로 남촌과 북촌으로 갈라지는 근대도시 경성의 모습과 양키문화와 식민자본이 만들어낸 유행, 당시의 연애와 결혼문화, 무산계급과 부르주아의 세계가 만문만화를 통해 펼쳐진다.
당시 경성의 대표선수격이 바로 모던껄과 모던뽀이다. 1928년 조선일보에 실렸던 〈모-던 껄의 장신운동(裝身運動)〉에서는 ‘소위 신녀성들’이 ‘황금 팔뚝시계 -보석반지’를 자랑하기 위해 전차에 빈자리가 있어도 시위를 벌이듯이 손잡이를 잡고 서가는 것(P.84), 궁핍하고 땟국물이 줄줄 흐르는 조선 거리에서 외국 유행에 맞춰 옷차림을 하고 다니는 모던뽀이들을 향해 ‘대톄 그대들은 아모 볼일도 업시 길로싸단디는 까닭을 모르겟다.’(P.134)고 비꼰다. 1933년 〈「허스」감이 업서요〉에서는 외국에서 돌아온 신여성이 이미 시골에 본처를 두고 애까지 낳은 어린 남성에게 첩으로 들어가게 되는 실정을 보여주고 있다. 조혼 풍습은 염상섭이 당대에 발표했던 「만세전」의 동경유학생 이인화가 열세살 때 두 살이 위인 아내사이에서 아들을 두고있는 것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 세태이다. 아래는 일제가 댄스홀 허가를 전면으로 금지하였지만 공공연히 대유행하던 당시의 상황을 보여준다(류승완 감독의 영화 〈다찌마와 리〉에서 히트를 날린 대사와 같은 종이다).
「하하하하-? 바람에 날리는 터럭과 가티 변하기 쉬움은 계집의 마음.」
「애그 난 안드러요!」
「여- 술이다 삐루정종!」
「아기꼬! 나하고 딴스할가」
「난 시려요. 저그번과 가티 순사에게 봉변하게요? 그대신 유성긔나 하나 틀지요! 째스? 그러면-」
-〈광란(狂亂) 뻑테리아- 흠, 목소리 고흔데〉, 서울행진(조선일보 1928.10.30)(P.62)
네온사인이 번쩍이는 도회의 뒷골목에서는 생활고에 못이긴 사람들의 악다구니가 쏟아져 나오고 일본순사의 서슬퍼런 칼날이 휘둘러지는 판에 대로에는 대개가 실업자인 모던뽀이들 뿐이다. 식구들은 쫄쫄 굶고 있는데 세계패션을 쫓고 돈에 환장해 있는 것은 모던껄들이다. 그들이 활보하는 경성은 어떤 땅인가. 부인할 수 없는 식민지 조선의 모습이다. 자기 나라를 빼앗긴 주제도 모르고 백화점으로 카페로 전차를 타고 돌아 치는 그들을 쫓는 만문만화의 파인더는 다분히 비판적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식민 조선의 쓸쓸한 풍경을 이루고 있음이 분명한 제 나라 제 민족의 안위를 속으로 걱정하는 그 시선은 어쩌면 그리도 알뜰살뜰한지.
만문만화를 읽다보면 서울 보통 사람들이 쓰던, 현재 우리의 표준어의 근거가 될만한 경아리말을 읽는 재미가 너무 세다. 그러나 많은 경우 엉거주춤 점잔만 빼던 남자들보다 여자들의 변화에 혀를 끌끌 차는 내용 일변도라 간간이 거슬리기는 한다. 커피를 코오피라 하고 댄스홀을 딴스홀이라 하는, 신문물에 대한 컬쳐쇼크에 그 어떤 감상을 달기도 전에 외래어를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쓰던 그들이 지지리궁상으로 보이는 것은 왜일까. 시대의 첨단을 걷는다고 자부하면서 자본이 주도하는 유행의 거대한 조류를, 혹은 근대 문화라는 것을 몸소 느꼈을 처음의 모던 세대는 지금, 우리가 보기에 그렇게 왜소하고 촌스러울 수가 없다. 여기에서 세계화다 후기자본주의다 하는 현재 우리의 자화상을 찾아볼 수 있다면 어떤 기분을 느껴야 정상일까. 서글프다고 해야할까. 박장대소 해야할까. (김은선 kong@libro.co.kr/리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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