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joungul.co.kr 에서
제공하는 좋은글 입니다.
바쁜 일상 속에 잠시 쉬어가는 공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
|
|
|  | 꼴통들과 뚜껑 안 열리고 토론하는 법 |  | |
| 오늘 나랑 끝장토론 하자
날씨도 더운데 입씨름 얘기를 해서 죄송하지만, 누구나 한번쯤 토론이나 논쟁 중에 상대방에게 화를 내 본적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상대방에게 이미 화가 나서 논쟁이 시작되는 경우가 더 일반적이지 않을까? 상대방에게 화가 나지 않은 상태에서 논쟁을 하게 되는 경우란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상대방과 진지하게 대화할 때 일 것이다. 사회자가 있고 어떤 주제에 대해 진지하게 ‘정식으로 토론이나 논쟁을 시작합니다’ 라고 시작되는 입씨름에서는 비교적 화를 잘 내지 않게 되는 게 사람들의 심리다. 물론 이때에도 속에서는 부글부글 끓어오르고 흥분상태에 빠질 때도 있지만 어쨌든 화내는 것을 억제하게 된다. 그런 자리에서 화를 내게 되면 아무래도 논쟁에서 지고 있다는 인상을 주기 때문일 것이다.
후베르트 슐라이허르트가 쓴 「꼴통들과 뚜껑 안 열리고 토론하는 법」은 토론의 와중에 이렇게 화를 안 내는 법에 대한 책이라고 할 수 있다. 한마디로 논쟁과 토론을 즐기는 법에 대한 책이다. 논쟁을 즐기는 법은 반드시 논쟁에서 승리하는 법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논리적으로 상대의 오류를 지적했다고 해서 반드시 논쟁에서 승리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논쟁의 승리는 오히려 주변의 반응과 같은 비논리적인 과정에 따라 결정되는 경우가 더 많다.
논쟁에서 어떻게든 승리하는 법을 알고 싶다면, 「쇼펜하우어의 토론의 법칙」을 보라. 쇼펜하우어의 가르침에 따라 열심히 말하는 기술을 연마한다면 정말 논쟁에서 백전백승을 거둘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논쟁의 승리가 목적이라면, 주먹을 연마하는 것도 한가지 방법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어쨌든 논쟁의 승리는 논리라든가 올바름이라든가 하는 것과 전혀 상관이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비교적 상관이 없다고 할 수 있으므로.
학창시절 나는 논쟁을 즐기는 편이었다. 주로 선생이라든가 교수라든가 하는 윗사람들과 논쟁을 하곤 했는데, 논쟁에서 화를 내는 쪽은 윗사람들이었다. 나 딴에는 논쟁을 즐긴다고 했지만, 그리고 주변의 상당한 호응도 얻곤 했지만 결과는 언제나 나의 패배였다. 왜냐하면 얼마 뒤 그 논쟁의 결과가 성적에 반영되어 나오곤 했으니까 말이다. 그래도 학창시절에는 그것마저 즐기고 있었지만, 나이가 들어서는 논쟁 자체가 재미없어졌다. 시비를 가리는 일이 귀찮아졌고 무의미하게 느껴진 것이다.
「꼴통들과 뚜껑 안 열리고 토론하는 법」을 보면 사람들은 대체로 25살 정도가 되면 가치관이나 세계관이 웬만한 충격에는 끄덕도 하지 않는다고 한다. 이 말의 의미는 자기와 서로 다른 가치관에 대해 더 이상 기대를 품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25살이 되면 딱 굳어져서 요지부동이요, 한마디로 꼴통이 된다는 의미다. 25살을 넘긴 우리 모두는 꼴통이다. 그러니 논쟁이 재미있을 리가 없고, 논쟁을 하게 되면 화만 나게 되는 셈이다. 차라리 이 책은 ‘꼴통과 꼴통이 만나 어떻게 논쟁할 수 있을까?’에 대한 책으로 여겨진다.
“논리적으로 볼 때 전혀 해결책이 없는데도, 사람들은 끊임없이 자기 것과 대립되는 이데올로기와 이야기를 하려 한다. 이 현상은 상황에 따라 여러 가지로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첫째 이 상황에서 이루어질 수 있는 참된 논증의 가능성을 과대평가한 데서 비롯된 것일 수도 있다. 그 시도는 환상에 바탕을 둔 것이다.”(P.94)
우리는 이성이라든가 논리의 힘을 너무 과대평가 한다. 우리 모두가 논리적인 올바름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은 환상에 불과하다. 이런 의미에서 나는 TV에서 하는 〈끝장토론〉이라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 도대체 무엇을 끝장낸다는 것일까? 토론의 쟁점이 된 그 문제가 끝장이 나기나 하는 문제일까? 나는 절대 그럴 수 있으리라 생각하지 않는다. 그리고 실제로 끝장을 낸 토론도 보지 못했다. 끝장을 볼 수 없는 문제를 가지고 끝장을 보겠다고 달려드는 것이야말로 무모한 짓이 아닌가. 논쟁을 즐기려면 무엇보다 끝장을 보겠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바꿔 말해 끝장을 보겠다는 순간부터 논쟁은 즐길 수 없는 것이 된다. 내가 논쟁에 무관심해진 것도 따지고 보면 끝장을 볼 수 있다는 기대가 불가능함을 깨달은 것에 불과하다.
「꼴통들과 뚜껑 안 열리고 토론하는 법」에서 다루는 논쟁은 원칙을 공유하는 사람들 사이의 논쟁 그러니까, 가치관이나 세계관을 공유한 사람들 사이의 논쟁이 아니라 원칙을 공유하지 못하는 사람들 사이의 논쟁이다. 서로 원칙을 공유하지 못하게 되면 논쟁이나 토론을 할 의미를 못 찾게 되어 서로에게 불관용적으로 대하게 마련이다. 이 책에서는 ‘근본주의’를 논리적으로 공략하는 법을 소개하고 있는데, 여기서 근본주의란 불관용적 교조체계를 말한다. 논쟁에 있어 근본주의적 태도에 대한 사례를 읽다가 보면 그것이 특정한 종교적 이념체계가 아니라 사실 우리 주변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논리적 태도임을 알 수 있다. 원칙을 공유하지 않는 사람들과의 논쟁에서는 근본주의에서 벗어나야 한다. 25살이 넘어 꼴통이 된 우리가 제대로 된 논쟁을, 즐기는 논쟁을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
“계몽가는 결코 무엇을 증명하거나 반증하겠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대신 아주 소박하게 정보를 제공하고, 눈앞에 내놓고, 다르게 생각할 가능성을 제시하려 할뿐이다. 계몽가는 그 이데올로기에 도대체 무엇이 들어 있는지를 보여주려 할뿐이다. 그리고 바로 여기에 커다란 이점이 있다.”(P.172) (이성문)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