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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항 |  | |
| 저항의 존재론, 존재의 경멸에 맞서는 복수
다른 사람이 뭐라고 하든 자신을 맑스주의자에 당당히 포함시켰던 철학자 질 들뢰즈는 후에 안토니오 네그리와 마이클 하트가 쓴 「제국」의 가장 중요한 테마 중 하나를 제공했다. 그것은 두더지처럼 저항하는 시대가 가고 뱀처럼 저항하는 시대가 왔다는 것이다. 이 테마는 「제국」에서 구체적 사례를 통해 분석된다. 하지만 들뢰즈는 뱀의 방법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못하고, 이러한 결점은 「제국」에서도 어느 정도 반복된다. 철학을 논하는 한 자리에서 들뢰즈는 뱀의 방법이라고 생각되는 약간의 힌트를 제공하는데 윈드서핑과 행글라이더 같은 스포츠를 예로 들었다. 들뢰즈는 스포츠에 있어서 운동이라는 것이 변화하고 있다고 말하며, 운동의 에너지 개념 근거한 하나의 근원점을 지렛대 삼아 힘을 쓰고 견디는 스포츠(던지기, 달리기 등)에서 이미 존재하는 파동 위로 개입되는 것으로 변해가고 있다는 것이다.
두더지학은 분명히 ‘underground’라는 저항의 근거지를 가진다. 이런 점에서 두더지학은 들뢰즈가 말하는 뱀학과 상반된다. 벤사이드는 이 점을 의식해서인지 에필로그에서 두더지의 은유를 폐기하고 ‘뱀의 무한한 구불거림’을 제창한 네그리와 하트의 견해를 탈근대적이라고 정의한다. 그리고 두더지학은 근대적인 동시에 탈근대적인 양면성을 지니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 차이는 마치 홍대 앞 언더그라운드 클럽과 신세대들의 X-Sports의 차이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언더그라운드의 메카니즘과 X-Sports의 메카니즘은 닮은 듯 하면서도 다르다. 언더그라운드 밴드는 도시 속에 지하 굴을 파고 거기에 암약해 있지만 X-Sports를 즐기는 아이들은 도시를 탐험한다. 인라인 스케이트를 타는 아이들에게 도시는 지하와 지상으로 나뉘어져 있지 않으며 그저 수많은 굴곡을 지닌 파동에 불과하다. 언더그라운드 밴드는 노래를 불러 사람들을 지하로 끌여들여 무리 의식을 다지지만, 도시의 서퍼들은 낙서를 하고 글자를 새긴다. 물론 우리는 언더그라운드 밴드와 X-Sports가 결합하는 것을 상상해볼 수도 있다.
「저항」에서 두더지를 통해 말하려고 하는 것은 저항의 존재학이다. 저항이란 무엇이고 왜 저항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끈덕지게 사유한다. 여기서 저항은 어떤 이념을 달성하기 위한 것도 아니고, 어떤 천년왕국을 건설하기 위해 매진하는 것이 아니다. 벤사이드는 진리는 가능한가, 불가능한가? 사랑은 가능한가, 불가능한가? 이런 질문에 저항한다. 왜냐하면 가능성과 불가능성을 논하는 순간, 현실성이라는 명목아래 우리는 포기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때의 포기는 자신을 지속할 수 있는 역량의 포기, 사랑할 수 있는 역량의 포기, 진리를 창출할 수 있는 역량의 포기다.
그렇다면 저항은 비현실의 것이 아닌가, 진리는 비현실이 아닌가 하는 반문이 들어올 것이다. 그렇다. 반은 맞는 얘기다. 저항은 현실을 따르지 않으며, 반시대적이다. 그것은 현실에 균열을 내는 ‘사건’의 분출을 통해 드러나는 진리에의 충실성이다. 때아닌 사랑, 때아닌 사건. 이런 탓에 저항의 언어는 종종 묵시론적이거나 예언적으로 비쳐지며, 그 충실성은 ‘기다림 없는 기다림’처럼 고집스러워 보이는 것이다.
벤사이드는 루이 알튀세르의 마주침의 철학, 자끄 데리다의 유령론, 알랭 바디우의 사건의 철학, 안토니오 네그리의 자율주의 등의 정치철학을 살피면서 자신의 ‘저항의 존재론’(두더지학)을 피력한다. 이상의 정치철학자들은 사실상 벤사이드가 피력하고 있는 저항론과 상당히 친화적이다. 프랑수아즈 프르스트, 샤를 페기, 발터 벤야민으로부터 깊은 영향을 받은 벤사이드의 저항론은 들뢰즈나 네그리가 그러하듯이 스피노자의 ‘코나투스’에서 그 뿌리를 찾고 있다. ‘코나투스’란 할 수 있는 한 최대로 자기 존재를 지속시키려는 노력으로, 실존에 대한 무한정한 욕망과 역량을 일컫는 말이다. 「저항」은 여러 철학의 대가들을 다루고 있어 복잡하기는 하지만 스피노자로부터 뻗어 나온 또 한 갈래의 경향를 탐색하는 흥미와 오늘날 매우 중요하게 대두되고 있는 정치철학의 쟁점을 쉽게 훑어보는 재미를 동시에 준다. (이성문 mongkey@libro.co.kr/리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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