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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극 반연극 비연극 |  | |
| 시인의 영혼, 철학자의 정신을 가진 숭고한 배우의 탄생
「연극 반연극 비연극」은 글쓴이 안치운이 ´뒤돌아가는 아픔이라는 뜻을 지닌 노스탤지어의 글쓰기´로 회귀하면서 탄생한 책이다. 글쓴이는 연극 본래적인 의미의 복권과 몸에 대한 철학적인 성찰, 그리고 오늘날 일회적인 연극에 대한 예리한 비판과 반성을 시도하고 있다. 그의 연극비평은 방대한 인문학적 지식과 분석에 기초한다. 정실비평이나 뻔한 수사로 치장된 공허한 찬사는 찾아보기 힘들다. 이 책은 연극에 관한 책인 동시에, 삶 자체에 대한 성찰로 가득차 있다. 삶을 들여다보면서 연극의 의미를 재고하고, 몸을 관찰하면서 의식의 여러 현상들을 탐구하는 이 책은 따라서 한 권의 철학서로 읽어도 무방하다.
다소 난해하고 버거울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런 난해함과 버거움은, 글쓴이의 표현을 빌리자면, ´의지와 표상의 사이에서 발생한 비극´ 에 기인한다. 때문에 이 책은 의지를 표상과 일치시켜 일회적으로 소모되는 그 어떤 글이나 연극보다 삶에 밀착해 있고, 무엇보다 진실하다.
´머리말´에서 글쓴이는 이렇게 말한다.
˝연극은 현실을 가장하고 있는 거짓된 것을 드러내는 허구다. 허구로서의 연극은 일어날 수 있는 개연성과 필연성을 지닌 ´그럴듯한´연극이다. 반면에 날것의 연극은 진짜라고 말하는, 연극과 현실을 동일시하는 연극의 탈을 쓴, ´그와 같은´연극이다. 연극의 세계란 일상적 삶과 구분되는 장소에서 형성된다.˝(p.8)
일테면 연극은 일상의 고착된 습관으로부터 거리를 만들어내면서 형성된다는 얘기다. 그런데 그 거리는 연극뿐 아니라 모든 예술을 형성시키는 근간으로 작용한다. 아름다움은 바로 그 일상과의 거리, 의지와 표상을 어긋나게 하고, 그로 인한 뼈아픈 성찰을 불러일으키는 거리에서 탄생한다. 그러므로 거리 자체가 아름다움이라 해도 틀리지 않는다. 글쓴이의 말대로, 연극은 현실인 듯 가장된 허구를 허구 자체로 드러냄으로써 역설적인 진실을 말한다. 연극이 사실과 똑같다고 말할 때, 따라서 그건 거짓이 된다. 의지와 표상이 현실의 공간에서 일차원적으로 결합할 때 아름다움은 증발한다. 아름다움이 사라진 그곳엔 즉물적이고 일회적인 충동만 남는다. 그런 의미에서 글쓴이가 말하는 ´날것의 연극´이란 삶과 인간, 그리고 몸과 자연에 대한 철학적 성찰이 부재하는 연극을 의미한다. 거기엔 신비와 부재로 의미의 폭을 넓히고, 미감을 풍부하게 하는 ´미스테리(mystery)한 침묵´또한 부재한다. 예술은 아름다움과 신비에 대한 그리움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글쓴이가 ´1부 연극, 몸, 자연´에서 말하는 건 바로 이런 내용들이다.
´2부 작가와 작품의 숲´에선 한국연극계 거장들의 작품을 일일이 예시하며 치열한 현장비평을 시도하고 있다. 서항석, 차범석, 김정옥, 이근삼, 이강백, 김민기, 채승훈 등의 작품세계를 꼼꼼하게 되짚으면서 글쓴이는 한국 연극의 질서와 원리, 그 이치를 위해서 존재하는 이론을 정립하려고 한다. 그런 작업을 통해 글쓴이가 궁극적으로 꿈꾸는 건 연극하는 이들이 철학자가 되는 것, 니체의 말을 빌리자면, 예술가가 아니라 예술 작품 그 자체가 된 가장 숭고한 배우의 탄생이다.
연극이론과 실제의 결별로 인한 연극의 불균형은 연극의 몰이해를 자초한다. 연극은 몸과 언어, 또는 몸의 언어에 대한 풍부한 이해와 감각적인 훈련 없이는 성립되지 않는다. 다시 반복하건대, 몸 자체를 즉물적으로 현시하는 건 아름다움과의 거리를 상실한 ´날것´에 불과하다. 연극은 몸을 통해 표현되지만, 진정한 연극적 몸은 부재를 표현하는 몸이다. 몸은 다양한 표정들과 동작들로 변화하면서 궁극의 실체를 표현한다. 그건 드러나지 않는 걸 드러내려는 몸의 자기성찰이다. 따라서 그 표현은 은밀하다. 소리로 비유하자면, 그건 침묵으로 발현되는 소리다. 침묵과 거리. 그것들은 얼마나 아득하면서 풍부한가. 연극은 그 캄캄한 그리움의 영역 안에서 삶과 세계의 본질을 투과해낸다. 글쓴이는 이렇게 말한다. ˝연극과 춤에 대한 글쓰기는 몸의 겉과 안, 움직임의 표면과 깊이에 관한 것이 될 수밖에 없다.˝ (p.161)고. 몸의 유려한 외형을 통해, 보이지 않는 몸 속 깊이 스며드는 이 행위는 얼마나 숭고한 역설이고 번뇌인가. (강정 igguas@libro.co.kr/리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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