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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방가르드란 무엇인가 |  | |
| 예술의 경계를 넘나드는 시대의 ‘척후병’들
1917년 4월10일, 뉴욕의 그랜드 센트럴 갤러리에선 미술사에 큰 획을 긋게 되는 ‘사건’이 일어났다. 참가비 6달러만 내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앙데팡당전. 거기 모인 사람들은 ‘R. MUTT’라는 사인이 적힌 한 남성용 변기 앞에서 당혹해 했다. 예술에 대한 근본적인 개념과 인식을 뒤트는 그런 도발을 감행한 사람의 이름은 마르셀 뒤샹. 체스광이자 혁명적인 예술관을 가지고 있었던 프랑스 출신의 이 젊은 화가는 이후 20세기 미술사의 첨병의 위치에 올라서게 된다.
「아방가르드란 무엇인가」는 뒤샹 같은 예술적 첨병들의 역사를 꼼꼼히 훑고 그 의미를 살핀 책이다. 현재 삼성 아트 앤드 디자인 인스티튜트의 교수이자 덕성여대 미술사학과 겸임교수이기도 한 저자 진휘연은 르네상스 시대부터 구체화되기 시작한 예술에서의 아방가르드를 이렇게 설명한다.
“미술에서 아방가르드는 하나의 사조도, 철학도 아니고 모더니즘이나 포스트모더니즘처럼 역사적 시간의 틀을 제공하는 개념도 아니다. ”(p.7)
불어 아방가르드(Avant Garde)는 원래 군사용어다. 전선을 넘어 적진 깊숙이 투입되는 척후병을 뜻하는 이 말이 예술에서 쓰일 땐 ‘전위(前衛)’라는 의미를 갖는다. 전위란 시대의 통념을 뛰어넘는 전복의 포즈를 강하게 취한다. 시대의 ‘전위’들은 전 시대의 예술적 한계를 단번에 뛰어넘는 모험가들이라고 할 수 있다. 마티스를 뛰어넘은 브라크와 피카소, 또 그들을 뛰어넘은 뒤샹 등, 이런 예술적 모험가들의 역사는 20세기 미술사의 중심을 장악하고 있다. 이 책은 현대 미술의 전반적인 동향을 ‘아방가르드’라는 일관된 시각에서 총체적으로 조명한다.
쇠라와 함께 점묘법을 완성했던 시냐크는 그에게서 강한 영향을 받은 마티스의 작품을 두고 당시 기준을 벗어난 기법에 내용조차 파악하기 어렵다고 혹평했다. 그에 반해 젊은 피카소는 마티스의 작품에 자극 받아 그보다 더 파격적이고 대담한 ‘아비뇽의 처녀들’(1907)을 발표한다. 그러나 마티스는 그 작품의 기괴하고 생경한 표현을 비판한다. 마티스는 또 다른 입체파의 선구자 브라크의 풍경화 또한 프랑스의 진보적 미술전인 가을전에 전시하기를 거부했다. 그 후, 입체파들이 득세하던 시절엔 마르셀 뒤샹의 ‘계단을 내려오는 나부’(1912)가 똑같은 전시회에서 거부당했다. 불과 몇 년 간격으로 일어난 이 일련의 사건들은 20세기 미술사의 격변을 예고했던 것이라 볼 수 있다.
제1차 세계대전 전후의 다다이즘이나 초현실주의 운동은 현대 미술의 전위적 성격을 정초한 기반이 된다. 그 대표적인 작가로는 서두에 언급했듯, 실제 오브제를 현실 공간에서 미술품으로 표현한 마르셀 뒤샹을 들 수 있다. 흔히‘레디메이드’작품이라 불리는 초유의 형식실험을 했던 뒤샹은 애초에 브라크 등의 입체파 기법을 극단까지 몰고 가면서 자신만의 파격적인 예술론을 발전시켰다. 그는 흔히 기존의 권위적이고 귀족적인 예술에 반기를 든 미술의 혁명가로 기억된다.
뒤샹은 프랑스 출신이지만, 전후 그는 뉴욕에서 활동했다. 뉴욕은 그야말로 전위의 본고장이라고 할 수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잭슨 폴록이 커다란 평면 위에 온몸을 던져 관념적인 색채의 향연을 펼친 후, 존스나 라우센버그 등에 의해 시작된 네오다다이즘의 발원지 또한 뉴욕이다. 단순한 레디메이드에 그치지 않고 오브제를 합성하면서 추상 표현주의의 관념적 미학에 대응했던 것이다. 그런 일상성이 대중문화와 결합한 건 1950년대에 이르러서다.
미국의 워홀과 영국의 해밀턴은 거의 동시에 팝 아트를 등장시켰다. 팝 아트는 순수 미술에 대중적인 이미지를 적극적으로 끌어들였다. 워홀의 작품이 대중적인 아이콘(마릴린 몬로 등)을 무한 복제·반복하면서 예술의 순수성을 회의했다면, 해밀턴은 유화나 사진 콜라주 등의 기법으로 형식적으로는 입체파를, 사상적으로는 독일 다다이즘의 비판 의식을 계승했다. 예술과 일상, 삶과 예술이 이리하여 어떤 동질의 공간에서 뒤섞이게 된다. 기존의 권위와 관념에 정면으로 도전했다는 점에서 이 또한 다다이즘의 연장이라 할 수 있다. 하위 문화의 무비판적 수용이라는 비판도 강했지만, 이후 팝 아트는 예술 각 방면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아방가르드란 무엇인가」의 저자는 관념적인 이론의 나열이 아니라, 한국 독자들에게 최초로 소개되는 80여 점의 미술 작품을 직접 보여주면서 현재에도 지속되는 혈기방장한 아방가르드의 정신을 심도 있게 개괄하고 있다. 미술전문가나 애호가가 아니더라도 뭔가 새롭고 창조적인 삶을 기획하는 이들에겐 더없이 신선한 자극으로 다가올 듯하다. (강정 igguas@libro.co.kr/리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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