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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터랙티브 스토리텔링 |  | |
| 컴퓨터가 셰익스피어 같은 위대한 시인이 될 수 있을까?
돈키호테는 미치광이였다. 그를 미치게 만든 건 바로 책이었다. 그리고 책 속에 든 이야기였다.
“간단히 말해, 그는 책에 너무 몰두한 나머지 땅거미가 질 때부터 동틀 때까지의 밤 시간을 오로지 독서만 하면서 보냈고, 새벽부터 어두워질 때까지의 낮 시간에도 독서만 하면서 보냈다. 이처럼 거의 잠을 자지 못하고 독서에만 열중한 탓으로 결국 그의 뇌는 빈사 상태에 빠지게 되었으며, 마침내는 이성 능력마저 잃어버리고 말았다. 그는 자신이 읽은 모든 것, 즉 마법, 싸움, 도전, 부상, 구애, 사랑, 고통, 그 밖의 온갖 터무니없는 상념들에 모든 정신을 빼앗겨 버렸다. 그는 상상의 세계에 너무 깊이 빠진 나머지 자신이 읽은 모든 환상적 요소들이 사실이라고 믿게 되었다. …그래서 그는 곧 말을 타고 갑옷을 입고 모험을 찾아 세상을 돌아다니는 편력기사가 되기로 결심하였다.”
돈키호테가 이 사실을 안다면 눈이 뒤집힐 게 뻔하지만, 컴퓨터의 발달로 우리는 돈키호테가 본 환상보다 훨씬 더 생동감 넘치는 이미지들을 보게 됐다. 우리는 머드 게임 속으로 들어가 ‘꼬마 요정’이나 ‘마술사’가 될 수 있고 인터랙티브 영화 속으로 들어가 내가 원하는 이야기를 만들 수 있다. 이야기 속의 주인공이 되고 싶어했던 꿈이 현실로 바뀐 것이다.
「인터랙티브 스토리텔링」의 지은이 쟈넷 머레이는 용감하게도 컴퓨터가 차세대의 위대한 이야기꾼이 될 것이라고 예견한다. 구텐베르크가 근대를 예고하는 서사를 가능케 했듯이 컴퓨터가 새로운 시대의 서사에 엄청난 영향력을 발휘할 것이라는 이야기다. 그녀가 1992년부터 MIT에서 시도한 ‘전자 소설 창작법 강의’역시 그런 실험과 검증의 단계라 할 수 있다.
‘컴퓨터가 새로운 서사의 주인공’이라곤 하지만 지은이가 컴퓨터 테크놀로지에 전적으로 매달리는 것은 아니다. 그건 지은이가 인용하는 텍스트를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보르헤스와 칼비노의 소설이나 「화씨 351」처럼 가상현실을 다룬 소설, ‘사랑의 블랙홀’같은 영화, 머드 게임 등 머레이는 다양한 문화에서 새로운 서사의 가능성을 발견한다. 컴퓨터의 발달이 ‘책의 죽음’을 앞당길 것이라 믿는 사람에겐 충격적인 이야기로 들릴 수도 있겠지만 그녀가 책을 미워하지 않는다. 그 대신 책 속의 이야기들이 어떻게 하면 컴퓨터로 자연스럽게 옮겨질 수 있을 것인가를 걱정한다.
“나는 책의 죽음을 고대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닥쳐온 현실을 두려워하는 사람도 아니다. 컴퓨터는 책의 적이 아니다. 그것은 인쇄 문화의 산물이며, 지난 5세기 동안 출판물을 존재하게 했던 똑같은 창의와 필요성이 낳은 결과이다. 소프트웨어 개발자로서의 내 작업은, 나로 하여금 디지털 매체의 원시적인 속성과 주어진 시간 안에서 그것이 무슨 일을 할 수 있고 할 수 없는지를 예견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뼈저리게 깨우치도록 해주었다.”(〈서문〉중에서)
책과 컴퓨터라는 과거와 미래의 상징들을 함께 다룬 것에서 알 수 있겠지만, 이 책을 읽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다. 우선, 지금까지 발명된 매체들 가운데 가장 거대한 수용력을 지닌 ‘컴퓨터’가 도대체 어떤 능력을 지녔는지 탐구하며 책을 읽는 것이다. 또 다른 방법은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방법’의 지침서로 읽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이야기의 구조를 분석한 노드롭 프라이의 책과 많이 닮아 있다. 한 가지 차이가 있다면 쟈넷 머레이는 해체된 이야기의 요소들을 컴퓨터로 재결합한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쟈넷 머레이는 일종의 징검다리와 같은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그녀는 예언자처럼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상상하며 새로운 세대를 예견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 실감은 나지 않는다. 도대체 어떻게 컴퓨터가 소설을 대체할 것이며, 어떻게 컴퓨터가 감동적인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구체적인 신기루는 보이지 않는다. 그녀의 말이 설득력이 없기 때문은 아니다. ‘컴퓨터가 새로운 이야기를 쓴다’는 이 짧은 말에는 수많은 의문이 붙어 다닐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작가란 어떤 존재인가? 정확한 문장과 아름다운 문장이란 무엇인가? 재미있는 이야기란 무엇인가? 이야기는 전달을 위한 수단인가, 표현을 위한 수단인가? 누구나 답을 이야기할 수 있지만 그 어떤 답도 정답이 될 수 없는 물음들이다. 글쎄, 컴퓨터가 이 질문에도 명확한 답을 내놓을 수 있을까? (김중혁 vonnegut@libro.co.kr/리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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