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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주헌의 프랑스 미술기행 |  | |
| 어릴 때부터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던 이주헌은 홍익대에서 서양화를 전공했다. 그러나 그는 지금 ´붓´ 대신 ´펜´을 잡고, 미술과 대중을 친구로 만들어주는 주선자 역할을 훌륭히 해내고 있다.「50일간의 유럽 미술관 체험」「신화, 그림으로 읽기」「미술로 보는 20세기」등 이미 8권의 책을 낸 바 있는 베테랑이지만, 그럼에도 ´직접 본 작품에 대해서만 쓴다´는 엄격한 자기 내규를 가지고 있는 그는 그림 앞에선 언제나 성실하고 겸손한 ´그림이야기꾼´이다.
그가 낸 책들을 주욱 훑어보다가 우연히 책 날개에 있는 사진을 보았다. 유럽 기행 중에 찍은 가족 사진이었는데, 나도 모르게 웃음이 피식 나왔다. 약 5년 간의 시간차가 있는 사진들 속에는 아이가 둘이었다가 셋이 되고 갓난쟁이가 어엿한 소년이 된 과정이 그대로 보였다. 시간의 흐름에 따른 자연스러운 변화에 불과하지만, 이렇게 세월이 흘러도 여전히 발품을 팔아가며 하나하나 만지고 느낀 것들을 글로 엮어내는 저자의 한결같음이 느껴지는 사진이었다.
이번에 낸 <프랑스 미술 기행>은 예술을 빼고는 생각할 수 없는 프랑스인들의 삶, 늘 빛과 아름다움에 취해 살아온 그네들의 예술적 자취를 따라가 본 미술 기행기이다. 미술가들의 고향, 아틀리에, 활동 무대 등을 순례하는 저자의 발길을 따라가다 보면 그들의 예술에 대한 지독한 사랑과, 예술적 성취와 안목을 한껏 즐길 수 있다.
여행의 출발지는 항구도시 ´칼레´. 칼레는 14세기 영국과의 전쟁에서 패한 대가로 여섯 명의 시민이 희생양으로 끌려간 역사적 상처를 안고 있는 도시다. 그리고 칼레 시청 앞에 ´마치 고통과 희생의 묵주알처럼´ 서 있는 오귀트스 로댕의 유명한 걸작 ´칼레의 시민´은 바로 죽음에 직면한 여섯 명의 희생자들을 생생하게 표현한 작품이다. 저자는 이 작품 속 여섯 명의 표정과 자세, 손의 모양 등을 통해 그 속에 녹아 있는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의 흔들림을 섬세하게 잡아낸다.
˝당시 영웅들은 시장통에서 에드워드 3세의 진지를 향해 출발했다. 시장통에 모인 사람들은 슬픔과 절망감에 싸여 통곡을 하며 그들의 이름을 불렀다. 생각해보라. 동포를 위해 목숨을 버리기로 한 여섯 명의 시민이 지금 목에 밧줄을 걸고 맨발로 그들의 정든 땅을 떠나고 있다. 모자와 관마저 벗어버린 맨머리, 단순한 자루옷 차림은 그들의 순수함을 시리도록 부각시켰다. 그들이 한 걸음 한 걸음 옮길 때마다 그들의 갈 길을 막아설 수도 없고, 그렇다고 그들이 그렇게 죽게 내버려 둘 수도 없어 거의 공황 상태에 빠져버렸을 시민들, 비탄으로 정신을 잃을 지경이었을 것이고 몸은 마디마디 떨려왔을 것이다.˝
´칼레의 시민´을 묘사한 부분을 읽고 있노라면 나도 모르게 그 옛날의 격정적인 역사 속으로 빨려들고 만다. 저자의 유려한 필체가 유감 없이 발휘되는 부분이다. 특히 비오는 날 찍은 사진은, 눈썹 끝 손끝 마디마디에 매달려 떨고 있는 빗방울이 마치 그들의 눈물인 양 비통함을 더한다. 우연인지 의도적이었는지 모르겠지만 여하튼 비오는 날의 ´칼레의 시민´을 보여준 것은 절묘한 우연이요, 탁월한 선택이었다.
이밖에 ´수련´ 연작을 탄생시킨 모네의 화려한 정원, 원시미술의 생생한 현장인 라코스 동굴벽화, 마티스의 빛의 예술을 낳은 지중해안 니스, 고흐가 생의 마지막을 불살랐던 집과 정원 등 16편의 풍성한 읽을거리가 더 있다. 또, 각 꼭지마다 내용에 해당하는 인근 미술관과 관련 정보를 첨가하여 정보서로서의 역할도 톡톡히 해낸다. 저자는 지면의 한계상 취재 내용을 다 싣지 못했다며 ´계산에 약한 자신의 머리´를 타박한다. 그러나 저자의 이런 아쉬움 속에는 두 달 동안 프랑스 구석구석을 발바닥이 뻐근하도록 돌아다닌 그림에의 열정과 사랑이 흠씬 느껴진다. 강추! (김연정 joy@libro.co.kr /리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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