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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 그림 백가지 |  | |
| 달마의 얼굴은 과연 누구의 얼굴을 본딴 것일까?
잘 알려진 김명국의 달마도는 대상의 요체를 한 순간에 이끌어낸 일필휘지의 필체가 두터운 질감 속에 그대로 녹아있다. 밑그림도 없이 단박에 저질러버리듯 평면의 종이를 투실투실한 입체로 변화시키는 이런 붓질은 단순한 기예의 경지를 넘어선 것이다. 17세기에 그려진 그 그림은 현재 우리가 달마하면 떠올리는 대표적인 얼굴이 됐다. 하지만 그게 과연 실존했던 달마대사의 얼굴이었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두주불사였다던 취옹 김명국은 과연 누구를 모델로 달마의 얼굴을 단번에 그려냈던 것일까? 혹시 그게 자화상은 아니었을까?
「우리가 알아야 할 우리 그림 백 가지」는 소위 옛그림이란 인식 속에 골동품 취급을 받는 우리 민족의 그림들을 일일이 뜯어보며 그 의미를 밝힌 책이다. 그림 그리기와 더불어 우리 그림에 대한 글쓰기에도 전념하는 글쓴이 박영대는 서양 그림에 비해 저변이 약한 우리 그림들에 대한 새로운 성찰을 위해 이 책을 썼다. 글쓴이는 그림 한점을 볼 때마다 느꼈던 감동을 일일이 쪽지에 남겨뒀다고 한다. 이 책은 글쓴이의 그런 정성과 애정이 두툼하게 엮여 있는, 보기 드문 한국화 화집이라 할 만하다.
이 책은 ´그림은 결국 사람이다´라는 글쓴이의 믿음을 전제로 탄생했다. 사람이 그렸음에도 사람이 그린 것 같지 않은 서늘함이 느껴질 때 거기엔 삶의 덧없음과 위대함이 담겨있다고 글쓴이는 말한다. 한 점의 그림을 앞에 놓고 절실함과 좌절을 반복해서 경험하는 화가의 영혼은 붓질 하나하나의 흔적에도 고스란히 담겨있다. 시대가 변하고 대상을 관찰하는 과학적인 척도가 변화했어도 대상과 영혼이 교류하는 미술의 근본은 변하지 않았다. 따라서 우리의 토양 속에 뿌리내려 있는 그림들을 본다는 건 곧 오늘의 우리 정신을 되돌아보는 올곧은 역상임에 분명하다.
미술사적으로 중요한 작품 180점을 뽑아 94개의 이야기를 담은 이 책은 선사시대에서부터 출발해 조선 말기의 그림들까지 시대 순으로 훑는다. 그림과 연관된 시구들과 화가들의 삶에 대한 이야기들이 그림 속 유장한 필체만큼이나 시원시원하게 펼쳐져 있다. 김정희나 박제가, 정약용 등에 관한 잘 알려지지 않은 일화를 듣는 재미도 쏠쏠하다.
일례로 심사정의 ´하마선인도´를 얘기하는 부분을 인용해 본다.
˝두꺼비신선(蝦 仙人)은 10세기 경 중국 후량 때 살았던 유해를 말한다. 그는 늘 세 발 달린 두꺼비를 데리고 다녔는데, 이 두꺼비는 그가 가고 싶은 곳 어디나 데려다 주는 신통력이 있었다. 가끔 우물로 도망치는 게 문제였는데 그 때마다 쇠돈이 달린 끈으로 들어 올렸다고 한다. 두꺼비는 재물을 지켜주고 복을 불러온다. 아무렇게나 누더기를 걸친 신선의 동작과 표정, 닳은 붓으로 호방하게 그은 선들이 어떤 대상에도 구애됨이 없었다는 화가의 필력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p.229)
여기서 다시 김명국의 달마도 얘기로 돌아와보면 서두에 제기했던 물음들이 쉽게 풀릴지도 모른다. 요컨대 김명국의 달마 얼굴이나 심사정의 두꺼비 신선은 공히 무아지경에 이른 화가의 꿈과 절실함에서 탄생했을 거라는 가설이다. 대상에 대한 정확한 묘사보다는 고도로 고양된 정신의 몰아경에서 비로소 붓을 든 손에 정기가 서린다. 고로, 진정한 그림은 대상을 바라보면서 스스로 자유로워지고, 그런 자유를 대상에 투영해 대상마저 훌훌 날게 만들어 버리는 일종의 선인의 경지에서가 아니면 불가능하다. 술에 취해서든, 정신의 황홀경에 취해서든 진정한 화가는 현실의 얕은 표면에서 생동하는 우주의 기운을 감득한 사람들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알아야 할 우리 그림 백 가지」는 결국 ´우리가 알아야 할 운치있는 정신의 활기´에 대한 이야기에 다름아니다. (강정 igguas@libro.co.kr/리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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