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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의 인생은 영화관에서 시작되었다 |  | |
| 시오노 나나미, 극장에 가다
어렸을 적 보았던 영화잡지의 영화평들은 주인공들에 대한 인물평이 많았다. 굳이 그런 분석에 이름을 붙여보자면 영화 속 캐릭터 분석이라 하겠다. 요즘 영화평들은 텍스트의 구조적 분석이나 텍스트가 사회적 맥락에 놓였을 때의 의미를 많이 묻는다. 이런 시류에 떠밀려 인물평은 스포츠 신문의 한 귀퉁이로 밀려나 스타들의 자전적 스토리로 전락하고 말았다. 시오노 나나미의 「나의 인생은 영화관에서 시작되었다」는 인물평의 추억을 우리에게 다시 들려주려는 듯 영화 속 인물에 대해 특유의 통찰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다.
시오노 나나미에게 영화는 무엇보다 배우들을 보는 즐거움이다. 그러니 영화의 주인공은 감독도 아니고 세트도 아니고 촬영도 아니고 무조건 배우다. 당연한 얘긴데도 촌스러운 영화관을 지녔다고 놀림당하기 십상이다. 그녀는 게리 쿠퍼를 율리시즈와 카이사르에 비교할 정도로 게리 쿠퍼 광이며, 자신의 신비를 끝까지 지켜낸 고혹적인 마를렌 디트리히의 신봉자다.
「나의 인생은..」은 머뭇거리거나 잠시 멈출 틈도 주지 않는다.‘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를 보고 섹스가 있는 남녀간의 우정에 대한 가능성을 생각해보거나,‘귀여운 여인’을 보고 창부가 성공하는 스토리가 아닌 지골로가 성공하는 경우를 찾아보기도 한다. ´지옥의 묵시록’에서는 전쟁에서의 지휘관의 요건에 대해 통찰하기도 하며,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영화를 보고 전쟁에 대한 반성의 의미를 묻기도 한다. 시오노 나나미의 글을 보고 있으면 참으로 다양한 주제에 다양한 인간군상의 이야기가 절묘하고도 쉽게 전달된다. 영화사에 길이 남을 추억의 명화에서부터 현재의 영화까지 그야말로 시공을 넘나들며 삶의 의미를 캐내어 윤이 나게 반짝반짝 닦아내는 것이다.
“전시의 리더에게는 평시의 리더보다 훨씬 더 퍼포먼스의 재능이 필요하다. 그것이 위선이라 해도 상관없다. 늘 죽음을 마주하는 상태에서의 거짓은 거짓이 아닌 경우가 많다. 왜냐하면 전쟁은 ‘컷’하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수 없는 그런 세계이기 때문이다.”(P. 48)
시오노 나나미는 마를렌 디트리히 이외에는 좋아하는 여배우가 없다고 말한다. 그녀가 말하는 디트리히는 사람들이 단순히 생각하는 섹시 심볼과 거리가 멀다. 디트리히는 자유로운 여자였고 ‘길가에 쓰러져 죽어도 좋다’는 태도로 살았으며, 보석을 모두 팔아버리고 거지가 다 됐어도 당당하고 오만한 매력을 잃지 않았다고 한다. 이런 당당하고 중성적인 매력이 디트리히의 섹시함이었다고 시오노 나나미는 쓰고 있다. 시오노 나나미는 이런 마를렌 디트리히에게 자신을 투영해보고픈 욕망을 숨김없이 드러낸다. 그녀는 디트리히를 흉내내어 이렇게 말한다.
“나는 사랑받기를 바란다. 이것이 시오노 나나미다.”(163쪽)
영화 속의 인물, 캐릭터만큼 텍스트를 구조가 아닌 살아 생동하는 텍스트로 만드는 것은 없다. 텍스트의 의미를 묻고 있는 것도 중요하지만, 캐릭터의 의미를 묻는 것도 중요하다. 캐릭터의 강력한 매력은 영화 속에서 뛰쳐나와 제 멋대로 관객을 흡입할 때 오히려 영화를 살린다는 점이다. 그렇지 않다면 영화에 스타를 기용할 이유가 있을까?
어떤 면에서 현재의 스타들은 불운하다. 너무 영화에 짓눌려있기에 특별히 스크린을 뚫고 존재감을 드러내는 스타라는 생각을 관객에게 주지 못한다. 때문에 역설적이게도 ‘가짜 같은 가짜’가 되어버렸다. 우리가 사랑하는 스타는‘진짜 같은 가짜들’이지 않았던가. 시오노 나나미를 통해 이‘진짜 같은 가짜’들을 만나보자. 영화 속에 살지만 영화 속에서 뛰쳐나와 우리에게 걸어오는 인물들 말이다. (김은선 kong@libro. co.kr/리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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