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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록 음악의 미학 |  | |
| 록음악이 성교의 비트를 가지고 있다는 편견에 대한 논리적인 반박
록음악은 좀 특이한 음악이다. 특이하다는 건 그것이 만들어지는 과정이나 조건이 다른 음악형태와는 많은 차이점이 있다는 소리다. 「록음악의 미학」을 쓴 테오도어 그래칙은 록음악이 선율과 화성 중심의 텍스트를 다루는 방식에서 벗어나 볼륨과 음색을 음악적 경험의 중심에 둠으로써 표현성 연구의 새로운 지평을 열고 있다고 말한다.
“좀더 흥미로운 차원은 대부분의 록음악이 레코딩을 통해 유포된다는 사실에서 발견된다. 지미 헨드릭스의 음악을 분석하는 가운데, 세일라 휘틀리는 ‘Purple Haze’에 대해 그 ‘노이즈의 순전한 볼륨이 개인적 의식의 허우적거림을 향해 작용한다.’고 말한다 …(중략)… 청중들은 라디오나 레코딩을 들으며 볼륨 레벨을 조정한다. 하지만 다른 음악은 다른 볼륨을 요구하는 것 같다. 헤비메탈과 랩은 가령 레스 폴이나 바흐의 협주곡보다 더 큰 데시벨을 요구한다.”(P. 192)
「록음악의 미학」은 그런 록음악 특유의 음악적 특성을 레코딩과 리듬, 노이즈의 관점에서 분석하고 있다. 테오도어 그래칙은 이 책의 부제로도 쓰인 위의 전제들이 록음악을 다른 음악(클래식이나 재즈)들과 차별화시킨다고 보는 입장이다. 그러니까 이건 순전히 미학적이고 음악학적인 관점이다. 그래칙에 의하면 록음악에는 바흐나 베토벤 같은 순수한 원작자가 존재하지 않는다. 록음악은 몇 가지 코드 진행과 리듬의 패턴을 반복하면서 다양한 음색과 볼륨으로 변주된다. 레드 제플린의 명곡 ‘Rock and Roll’은 리틀 리차드의 곡조를 라이브로 연주하는 도중 로버트 플랜트가 즉흥적인 보컬로 변화시킨 곡이고 비치 보이스의 브라이언 윌슨은 척 베리의 ‘Sweet Little Sixteen’에 새로운 가사를 붙여 ‘Surfin´ USA’를 만들었다. 그래칙은 소위 록음악 명곡이라는 노래들의 많은 경우가 이런 식으로 변주·변형·발전된 것이라고 말한다.
이런 경우 원 작곡자의 이름이 병기되는 경우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에릭 클랩튼의 ‘Layla’같은 경우는 앨버트 킹의 음반에서 특징적인 리프를 따왔지만 킹은 공동 작곡자로서 아무런 크레딧도 얻지 못했다. 그래칙은 이런 여러 사례들을 통해 원전을 인용하면서 원전 자체를 무색하게 만드는 록음악의 특징이 바로 레코딩 과정에서 발생하는 볼륨과 음색, 노이즈에서 기인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면서 그래칙의 관점은 포스트모던의 철학적 관점을 인용·변주하면서 록음악의 산업적 측면을 새롭게 재고하는 데까지 나아간다. 아도르노 이론에 대한 섬세한 비판과 수정이 가해지는 〈아도르노, 재즈, 그리고 대중음악의 수용〉같은 장은 이 책의 미학적 깊이와 수준을 가늠해볼 만한 중요한 대목으로 읽힌다.
전율과 파괴의 양식으로 청각적 노이즈를 증폭시키는 록음악이 어떤 식으로 의식에 작용하고 몸을 흥분시키는 지에 대한 그래칙의 새로운 분석들은 소위 ‘록이 성교의 비트를 가지고 있다’는 둥의 고정관념들에 대한 예리하고 논리적인 뒤집기로 여겨진다. 거기에 매 장 도입부마다 에피그램 형식으로 인용된 인물들의 짧은 경구들도 인상적이다. 그래칙이 인용하는 문구는 프리드리히 폰 쉘링에서부터 엘비스 코스텔로까지 실로 범문화적이다. 록음악에 대한 집요하고도 강렬한 애정을 거침없는 학문의 논리로 표현해내는 그래칙의 이런 저작은 그런 의미에서 매우 유효하면서도 흥미로울 수밖에 없다. 그는 오로지 록음악이라는 물질적 진동현상의 실체를 과학적으로 검증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했다. 음악 그 자체의 속성에 대한 이런 치열한 탐구정신이 아니었다면 이 책은 아마도 쓰여지기 어려웠을 듯하다. 그런 의미에서 감히 추측컨대, 테오도어 그래칙 자신이 록음악의 노이즈에 미쳤던 사람이 아닐까싶다. 이 책은 그 정도로 열렬하게 록음악의 몸통 그 자체를 꿰뚫는다. 사이먼 프리스의 말마따나 록은 ‘사운드의 힘’인 것이다. (강정 igguas@libro.co.kr/리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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