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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침묵 |  | |
| 여러분, 내 방귀맛 좀 보이소!
지난 10월 25일 압구정동의 한 스튜디오에서 ‘프로포토아티스트’(1960년대 말 한국을 방문해 가요평론가 이백천씨를 만났을 때 한대수가 자신을 소개한 멘트다) 한대수를 만났다. 11월에 나올 신곡의 뮤직비디오와 이번에 출간된 사진집 「침묵」에 대한 여러 얘기를 하는 가운데 그는 이렇게 말했다.
“디지털 카메라가 보급되면서 사진작가들이 먹고 살 일이 막막해졌어요. 흑백사진은 아직 기회가 있지만… 아참, 디지털이 흑백도 되제? 아이고, 그걸 몰랐네. 그럼 앞으로 우찌 먹고 살아야 되노? 내도 모르겠다.”
뭐, 디지털 시대를 살아가는 포토아티스트의 고뇌를 얘기하자는 건 아니지만, 그 순간 한 대수는 작곡자나 시인, 30년 이력의 가수라기보다는 세파에 휩쓸리면서 자신의 실존을 버거워하는 범상한 생활인으로만 보였다. 봉두난발에 오십이 넘은 아저씨의 복장이라고 하기에는 좀 특이하다고밖에 할 수 없는 차림새였지만 삶과 맞닥뜨리는 그의 태도는 특이하지 않은 복장으로 특이하지 않은 삶을 사는 대부분의 사람들과 하나도 달라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다고 그가 수수해 보였다거나 곤궁한 생활 속에서 허우적대는 가난한 예술가의 비감에 사로잡혀 있는 듯 보였다는 건 아니다. 그는 자신의 비참을 얘기할 때조차도 웃기고 통렬하다. 개인적으로 딱 두 번 만나 봤을 뿐이지만, 인간 한대수에겐 그의 노래를 들으면서 곧잘 상상하곤 했던 이미지들이 거의 예외 없이 겹쳐있다. 한대수는 자신의 예술과 삶이 드물게 일치하는 예술가다.
한대수는 「침묵」의 〈인사말〉에서 영어로 된 시를 번역하는 어려움을 얘기하면서 ‘시가 어떠한 분위기를 지니고 있다는 ‘기분’은 전달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니까 중요한 건 언어가 아니라, 기분이고 느낌이고 대상을 바라보는 사람의 마음 상태라는 거다. 한 대수는 이렇게 중얼거린다. “당신의 마음 상태가 당신의 궁극적인 진리다.”(P. 135) 그러니까 「침묵」에서 한대수의 프레임 안에 잡힌 풍경들은 한대수의 마음 상태를 표상한다고 할 수 있다. 아울러 거기에 (사후적으로)덧붙여진 말들은 풍경을 포착함으로써 풍경 속에 내면화된 세계에 대한 짧은 탄식이라 해도 틀리지 않는다. 이때 그 탄식의 발원지 역시 침묵이다. 한대수는 풍경을 낚음으로써 풍경 이면에서 숨죽이고 있는 개인적이고도 보편적인 상처들을 건드린다.
영어의 어미를 물고 늘어지면서 언어의 의미를 부풀리고 변형시키는 것처럼 고통과 절망, 기쁨과 익살이 뒤섞여있는 이 사진집에서 한대수는 카메라 파인더를 통해 ‘시각적인 라임’을 줄줄이 이어나간다. ‘시각적인 라임’이란 물론 자의적인 용어지만, 한대수는 각기 다른 장소, 다른 시간대에 포착된 풍경들을 마음 상태가 불러일으키는 내부의 리듬에 의해 재배치한다. 그 순간 풍경들끼리의 내밀한 운율이 발생한다. 한대수는 그걸 다시 즉흥적인 언어로 표현한다. 그렇게 재편집된 풍경들은 늘 현재적으로 살아있다. 그 살아있음은 부동과 침묵 속에 덧대어진 짧은 언어놀음을 통해 환기된다. 한대수는 이렇게 말한다.
“사랑을 낚는 것/ 인생을 낚는 것/ 나는 이 큰 공허에서/ 위안을 찾고 있다”(P. 137)
이런 표현은 한대수의 실존을 그대로 압축하는 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세계라는 거대한 악다구니에서 평화와 사랑이라는 궁극적인 위안을 찾기 위해 노래를 만들어 부른다. 그가 찍은 풍경들은 그러므로 그의 마음 상태에 붙들린 악보의 초안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식 음악 교육이라고는 터럭만큼도 받아보지 못한 그지만, 그의 자유분방한 노래들은 자신이 붙든 세계의 다채로운 풍경들을 내적인 리듬으로 단순소박하게 언어화함으로써 바람처럼 불어 나온다. 어쩌면 그가 카메라로 붙들고 싶어했던 진짜 풍경은 울긋불긋한 세계의 물상들 사이로 보이지 않게 날아다니는 바람이었는지도 모른다. ‘예술은 방귀와 매우 비슷하다’(75쪽)고? 방귀는 냄새나는 바람 아닌가? 그 자신만의 육체의 분비물들이 곰삭아 풍기는 유일무이한 바람. 그렇다. “당신의 속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당신의 배설물을 연구해야 한다”(61쪽) 《침묵》 속의 풍경들은 한대수가 삼킨 세계의 분비물이다. 그는 그것을 카메라로 마시고 노래로 뱉는다. 그렇게 방사된 그의 방귀냄새는 참 질 좋은 삶의 비료들이다. (강정 igguas@libro.co.kr/리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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