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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대미술의 상실 |  | |
| 피카소는 어떻게 천재가 되었는가
“멍청아, ‘보는 것이 곧 아는 것’ 이 아니고, ‘아는 것이 곧 보는 것 Believing is Seeing´이야! 왜냐하면 ’현대미술은 완전히 문예적인 성격을 띠게 되었으며, 그림이나 다른 작품은 오직 문의(文意)를 예시하기 위해서만 존재하기 때문이다.” (P.12)
나른한 아침, 저자는 목욕 욕조 안에서 신문을 읽다가 하나의 문장을 발견한다. 유레카! 이 뜻밖의 발견으로 그는 이해할 수도, 즐길 수도 없었던 현대미술의 비밀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곧 스콜라 철학의 기괴한 천사 논쟁보다도 더 심하게 뒤틀린 현대미술의 이론에 대한 책을 쓰게 된다. 「현대미술의 상실」은 어째서 우리가 미술관 한 켠에서 그토록 당황스러운 느낌을 가져야했는지에 대한 유머러스한 대답이다. 도대체 이게 무슨 의미지? 이건 또 무슨 그림이람? 눈이 빠질 거 같네! 미술관에서 내질렀을 당신의 순수한 내장반응들이 실은 무식함 때문이 아니라, 너무나 두텁고 빠르게 진화된 이론 때문이라는 사실은 30년전 이 책의 발견으로 증명되었다.
태초에 말씀이 있었다! 구약의 신이 고단한 천지창조의 위업을 달성하기 전부터 말씀이 먼저 있었다. 그러니 플라톤 같은 철학자가 파토스를 밀쳐내고 로고스를 최고의 지덕으로 삼고, 엄청난 세월동안 그것의 또 다른 철학적 변주가 이루어진 것은 성경에 빗대면 그럴법한 이치이다. 철학은 이제 ‘신은 죽었다!’ 고 선포한 니체를 필두로 몸의 부활을 외치며 저주받던 파토스를 불러들이고 있다. 그렇다면 미술은? 철학과 반대의 길을 가고 있다. 그림은 사라지고 무성한 이론만 남았다. 추상표현주의에서 팝아트, 그리고 미니멀 아트까지. 그린버그와 로젠버그, 이 양대 평론가가 지지해마지 않던 ‘평면성’ 의 옹호는 극단을 향해 치달았다. 처음엔 옷을 벗더니, 나중엔 머리를 깎고, 제 살을 도려내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마술을 썼다. 통째로 사라져 버린 것이다.
“최초에 우리는 이야기책 같은 19세기의 사실주의를 제거했다. 다음에 우리는 사실적 대상을 제거했다. 다음에 우리는 3차원을 완전히 제거하고 정말로 평면적이 되었다(추상표현주의), 다음에 우리는 공기 같은 희박성, 붓질, 대부분의 물감을 제거했고, 형체나 복잡한 구도라는 마지막 병균을 제거했다.” (P.111)
그들은 고흐의 노란색을, 렘브란트가 창조한 인간 본성을 꿰뚫는 듯한 깊은 음영을, 먼 옛날 십 수년의 혹독한 도제를 통하지 않고서는 배울 수 없었던 뛰어난 테크닉의 장인들을 깡그리 밀어버렸다. 그 낭만성을, 화면을 뚫고 나올 것 같은 사실성을,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는 정교함이란 불멸의 가치들을 말이다. 그리하여 이론만 남은 현대미술 안에서 대중들은 공허함을 만끽하게 된다. 길거리 공갈빵의 썰렁한 농담 정도가 아니라, 무식함이라는 불명예스러운 주홍딱지를 이마에 붙이고 미술관에 등을 돌려버린 것. 현대미술은 점점 대중과 격리되고 그들만의 잔치로 이어지고 있다.
그렇다고 이 책을 어려운 미술 이론들만 빼곡한 책으로 보면 곤란하다. 피카소가 어떻게 해서 미술계의 스타가 됐고(그는 40이 넘어서야 비로소 ‘피카소다운’ 대접을 받게 되었다), 촌닭 같던 앤디 워홀의 어떻게 이 세계에서 세련됨이란 지휘를 얻게 되었는지에 대한 소상한 이야기들은 잡지의 가십을 읽는 것 같은 재미도 주니까 말이다. 특히 저자가 ‘보호의 춤’, ‘소원 성취’ 라고 명명한 (뜨고 싶어 안달이 났지만 그렇지 않은 척 하는)가난한 화가와 화랑 주인, 평론가, 후원자들의 짝짓기 형태에 관한 보고서는 마치 조류의 세계를 보는 듯한 생태학적 즐거움을 준다. 간택 당하기 위해 굳이 뉴욕이나 파리로 모여드는 이들 화가들의 집단적 모습에서 우리는 확장된 인간 욕망의 핵심을 읽을 수 있다. 평소 예술가 특유의 과장법과 현란한 레토릭에 알러지가 있었던 사람이라면, 이 책은 좋은 약이 될 것이다. 물론 이 지점에서 너무 까발렸다는 이 책의 단점은 곧 장점이 된다. (백영옥 rararal93@libro.co.kr/리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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