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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로베르네 집 |  | |
| 파리 피볼리가 59번지, 유쾌한 화가들의 점거 아틀리에
1999년 11월 1일 밤 칼렉스, 가스파르, 부르노(이곳에서는 보통 KGB로 통한다)란 이름의 세 사나이가 작업공간이 없는 예술가들과 함께 리볼리가 59번지의 폐쇄된 건물을 점거한다. 그리고 그들은 일요일을 제외하고 매일 오후 1시 30분에서 저녁 7시 30분까지 아틀리에의 문을 열어 사람들에게 다양한 전시회와 공연을 무료로 관람할 수 있도록 했다. 물론 공연할 장소를 확보하지 못한 다른 예술가들에게도 열린 기회를 제공했다. 새로운 파리 시장으로 당선된 좌파 출신의 베르트랑 들라노에는 이들에게 얼마간 그곳에서 더 머무를 수 있는 유예기간을 주었지만, 이들은 언제 추방될지 모르는 상태에 놓여있다. 이들은 여전히 무법자로, 그들에겐 아직도 현실적인 문제가 현존해 있다.
「로베르네집」은 점거 아틀리에에 정착한 이들 로베르네집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다. 건강이 별로 좋지 않은 카세트(음악 소리가 제대로 흘러나오는 일은 드물다)로 레게 음악을 즐겨 듣는 피투, 벨소리가 나지 않아 사려 깊은(?) 전화기를 좋아하는 브루노, 쉰여섯 살의 어린아이 베르나르, 불법 점거 아틀리에의 역사를 다큐멘터리로 기록중인 무단 점거학자 성디… 세계 각지에서 흘러 들어온 이들은 대개 정규 미술 교육을 받은 적이 없는 화가들이다. 그들은 피자 배달을 했거나, 방랑자였고, 공장에서 인형을 만들었다. 논리학을 공부한 에스토니아인 카이아는 블루 마린을 사랑하는 철학도다. 그녀는 기하학적이고 수학적인 그림, 벡터를 연상시키는 그림들을 즐겨 그린다. 설명을 원하거나, 사인을 원하는 관람객들에겐 그림 뒤에 작은 사인도 해준다.
로베르네집 사람들의 작품 중 가장 눈에 들어온 건 파베스코의 작품들이다. ‘엄청난 행복’ 씨. ‘무조건 복종’씨. 그녀는 그림에 이야기를 생각해내고 성격에 어울리는 이름을 붙이는데, 어느 날 그림의 주인공들이 좀더 현실로 튀어나오게 되면 어떨까 생각하게 됐다고 한다. 그림에 두툼한 솜을 넣고, 바느질을 시작한 건 그때부터다. 폭 안고 있으면 따뜻할 것 같은 그림. 오렌지와 빨간색이 마주 앉아 있는 그림 속엔 갸우뚱한 얼굴로 질문하는 작은 여자 아이가 숨어 있다. 네 살 반인 에밀리는 그녀 그림의 실제 모델이기도 하다. 파베스코는 딱딱한 마음의 겨드랑이를 보드랍게 해 주는 한 아이의 엄마이기도 하다.
책 초반에 쓰여져 있던 ‘여자도 그림을 그릴 줄 안다’, ‘제 그림을 사주지 않아 감사합니다’ 같은 작업실 문구들이 새롭게 이해되기 시작한 것도 파베스코의 그림들을 보면서부터다. 이들에게서 나는 사회에 관한 메시지, 일탈, 점거 같은 과격한 메시지를 먼저 읽었다. 하지만 책장을 넘기고 보니 파격 이전에 베인 상처같은 희미한 보조개가 보였다. 젊은 예술가들의 클리쉐 같은 냉소와는 다른 웃음. 나는 그것이 웃음에 대한 좀 색다른 리얼리티라고 생각했다. 파리에 가면 로베르네집에 들리게 될 것 같다. 그곳에 갈 때까지 이 가난하고 유쾌한 예술가들의 성소가 잘 보전되었으면 좋겠다. 포크레인에 허물어지기 시작한 것은 인사동 고서점과 혜화동의 옛 화랑만으로 족하니까. (백영옥 rararal93@libro.co.kr/리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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