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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음란한 예술 |  | |
| 음란한 것을 예술적으로 즐기기
인터넷이 가져온 놀라운 기쁨(?) 중의 하나는 마음만 먹으면 포르노를 마음껏 공짜로 즐길 수 있다는 것이다. 인터넷이 없었던 시대에 포르노를 본다는 것은 상당히 피곤한 행위였다. 구하기도 용이하지 않았고 가격은 비쌌다. 좋은 작품(?)을 고를 정보도 부족했다. 그러나 지금은 포르노에 조금 주의를 기울이고 거기에 취미를 붙인다면 아주 세밀한 단위까지 카테고리를 분류할 수 있을 정도이다. 포르노에 무심한 사람이라면 현재 포르노에 적어도 10가지 이상의 장르가 세분화되어 있다는 사실에 놀랄지도 모르겠다. 성(性) 만큼 사람들의 욕구를 다양하게 세분화시킬 수 있는 분야를 상상하기 어렵게 되었다. 내가 아는 범위 내에서 어떤 문화도 포르노만큼은 세분화되지 않았다. 장르의 복잡화, 세분화, 미세화가 문화의 진화 정도를 측정하는 기준이라면 포르노는 현재 가장 진화한 문화 중의 하나다. 인터넷은 포르노라는 사회의 하위문화를 단 시간 안에 정교한 세부 카테고리를 가진 대중 문화의 하나로 확산시켰다. 「음란한 예술」은 인터넷에 의해 세분화되고 전문화된 포르노의 카테고리들을 최초로 엮어보려는 야심찬 시도이다.
먼저 저자는 자신의 글에 대해 ‘학술적’이 아니고 그럴 ‘주제도 못된다’고 변명 비슷한 것을 남기며 슬쩍 후퇴한다. 물론 이런 제스처는 읽는 사람들을 실망시킨다. 그러나 그는 곧 가장 극적인 명제를 선택하여 포르노를 적대시하고 쓰레기 취급하는 사람들에 대해 공격을 감행한다. 그 명제는 ‘포르노는 예술’이라는 것이다. 여성의 성기를 본 딴 쿠션들, 정밀한 세공을 거친 값비싼 보석이 박힌 정조대, 음순 피어싱을 비롯한 각종 성애 장신구, 문신, 포르노 만화와 사진 등등이 이 책이 다루는 소재들이다.
여기 여성 성기를 자극하는 딜도가 있다고 치자. 그리고 그 옆에 콘돔이 있다고 치자. 이 두 개의 도구에 대한 우리의 감상은 매우 다르다. 둘 다 섹스를 위해 존재하는 실용적 도구이지만, 하나는 음란한 것 혹은 비정상적인 변태의 것으로 또 다른 하나는 정상적이며 필수적 도구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딜도와 콘돔의 도구적 가치를 동등하게 인정한다면 「음란한 예술」을 쉽게 받아들일 수 있을 듯하다. 혹자는 딜도와 콘돔의 도구적 가치가 동등하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예술일 수 있는지에 대해 의문을 가질 것이다. 물론 나도 의문이 든다. 딜도와 콘돔이 음란한 물건이라고 생각하지 않지만 예술이라고까지 할 게 뭔가,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러다 생각을 달리 해보니 모든 도구에는 무릇 그 기능성을 떠나 심미적 가치를 추구하는 장인이 존재한다는 걸 깨닫는다. 가령 그릇도 특별히 심미적 가치를 추구하는 그릇을 만드는 장인이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딜도와 콘돔의 생산에도 그런 장인은 충분히 있을 터이다. 딜도와 콘돔의 차이가 있다면 콘돔은 이미 당당하게 그 가치를 인정받았고, 딜도는 자신의 존재 의의를 위해 싸워야 할 날들이 아직 많이 남았다는 것뿐이다. 이것은 모든 발명품들이 안고 있는 초기의 어려움에 지나지 않는다.
솔직히 말해 사람이 조금 음란하면 어떠하리, 그 음란이 또 굳이 예술이 아니면 어떠하리. 우리는 외설인가, 예술인가 하는 지겨운 싸움을 너무나 많이 봐왔다. 예술이냐 아니냐는 것은 늘 애매하고 그것을 다루는 각자의 담론이 지닌 힘의 역관계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다. 게다가 예술의 모호함 뒤에 숨는 것이 비난에 맞서는 가장 손쉬운 방법이라고 생각하는 포르노 제작자도 현실에는 엄연히 존재한다는 것을 우리는 눈치채고 있다. 그러므로 지나치게 예술임을 주장하는 이 책이 어떨 때는 부담스럽기조차 하다. 가령 여자 연예인은 공인이므로 그들의 초상을 도용한 페이크화한 포르노그라피도 인정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부분에서는 억지스러움도 존재한다. 굳이 예술과 비교되어야 한다면 「음란한 예술」은 음란한 것을 예술적으로 즐기려는 의지라고 하는 것이 알맞은 표현인 듯 싶다. 예술을 굳이 음란한 것으로 즐기려는 사람(이 사람들에게는 어떤 예술도 음란한 상상의 결과일 수 있을 것이다)이 있는가 하면, 음란한 것을 예술로 즐기려는 사람(이 부류의 사람들에게는 어떤 음란한 것도 심미적 각성일 것이다)도 존재한다.
가뜩이나 모호한 예술의 경계가 인터넷의 등장으로 인해 더더욱 모호해진 것은 사실이다. 인터넷은 모든 것들의 기능성과 심미성을 통합해나가고 생산과정과 그것을 향유하는 과정마저 분리하지 않고 통합해간다. 그것은 산업시스템과도 통합해나가고 모든 것의 가능성을 실험해간다. 그러므로 예술에 뭔가 호소를 한다는 것은 지나치게 과거의 관념에 의지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중요한 것은 예술이 아니라 자유이다. 예술의 자유도 아니고 언론의 자유나 표현의 자유도 아니다. 특별히 그 부분에서만 자유가 필요한 건 아니니까. 그냥 자유라고 말하자. 자유란 인간의 한계에 대한 인정이다. 무수한 시행착오와 오류를 겪을 가능성, 항상 올바르지 않을 것이라는 가능성, 늘 현재가 전부인 것은 아니라는 것에 대한 겸허한 인정이다. 이것을 인정하고 새로운 가능성을 탐구하기 위해 문을 열어 젖히는 것이 자유인 것이다.
「음란한 예술」에 소개된 도구들과 포르노들은 모두 인간의 새로운 가능성을 탐구하는 첫 출발선에 놓여있다. 전자 자극 섹스가 어떤 치료요법이 있는지, 음순을 뚫고 끼워진 링이 기계와 인간의 새로운 결합에 대한 어떤 새로운 형상을 제공하는지 모든 질문에 열려있다. 무엇보다 인터넷 포르노 예술(예술이 아니더라도)은 인간의 성 욕구를 참으로 다양하게 세분화시켜 놓았다. 차라리 그 모든 것을 막기 보다 예상되는 부작용을 탐구하고 그것을 최소화하고 재 활성화하는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자유에 따른 책임이 필요한 것은 이 부분에서이리라.
청소년을 보호한답시고 인간을 새롭게 할 가능성에 대한 탐구의 자유를 가로막는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 현재의 청소년과 인류의 가능성을 맞바꿀 수는 없을 듯 하다. 그렇다고 해서 청소년을 희생시킬 수도 없는 노릇이다. 중학생인 아이가 어느 날 당신에게 새로 사귄 이성친구와 섹스를 하고 싶다고 말한다면 당신은 어떻게 할 것인가? 중학생 아이가 그런 말을 하는 것을 개탄이나 하며 그 원인으로 포르노를 지목하여 몰살시킬 생각을 할 수도 있겠다. 혹은 성욕의 에너지를 공부로 돌리기 위해 무던히 애쓸지도 모르겠다(이 방법은 확실히 어른들의 이기심에서 비롯된다). 금지의 논리는 어쨌거나 성욕은 중학생 정도의 아이가 느끼는 자연스러운 욕구가 아니라는 가정 위에 서 있다. 내 생각에 뭐 그런다고 해서 중학생 아이가 섹스를 하고 싶다는 욕구가 사라진다고 생각할 수는 없지만 말이다. 차라리 중학생 아이에게 섹스를 가르치고 섹스 커뮤니케이션에 따르는 여타의 것들을 가르치는 편이 좋지 않을까. 당장 그렇게 하기에는 우리가 교육과 사회의 재 활성화에 대해 너무나 게으른 것일까. 아니면 중학생의 섹스 욕구에 대해 아는 게 너무 없어서 가르칠 수 없는 무능력을 절감한 탓에 손쉽게 포르노를 공격하는지도 모른다. 「음란한 예술」은 적어도 우리시대에 세분화된 성의 카테고리들을 코드별로 배울 수 있는 교육적 자료의 입문서이다. (이성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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