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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에 관한 질문들 |  | |
| 영화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영화에 관해 질문을 던지는 저자 스티븐 히스는 한국의 영화광들에게서조차 낯설다. 간혹 영화잡지나 머리 아픈 영화 관련 논문에서나 간헐적으로 언급되었던 히스는 정신분석학과 마르크스주의의 절합이라는 70년대의 이론적 지형 위에서 영화비평을 했던 대표적 이론가이다. 68년 이후 70년대는 펠릭스 가타리에 따르면, 모두가 프로이트-맑스주의로 달려갔고 정신분석학이 라캉과 더불어 세력을 떨쳤던 시기였다. 그러니까 히스는 그런 주류적 분위기 속에서 영화비평을 해왔던 셈이다.
하지만 한국에서의 지적풍토는 모든 것이 한꺼번에 유행처럼 몰려와 압축적으로 그 내용을 전달하고는 사라졌기 때문에 히스는 영화비평에서 곧 잊혀졌다. 「영화에 관한 질문들」은 너무 서둘러 잊어버린 히스를 다시 들춰내고 있다. 히스의 책이 지금 다시 출간되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오늘날 영화비평은 대중화되었고, 대중화된 것만큼이나 가십거리 기사가 되었다. 아무도 영화에 관해 더 이상 질문하지 않는다. 단적으로 엄지손가락을 치켜올리거나 내리는 것이 비평행위를 대체하고 있다. 그게 좋은 현상일까, 나쁜 현상일까. 적어도 히스의 책은 이런 현상에 저항한다. 왜냐하면 히스는 지금은 애써 무시되고 있는 혁명적 열정으로, 그리고 역시 외면되고 있는 진지한 탐구정신으로 영화에 대해 질문하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란 무엇인가를 물었던 앙드레 바쟁에게 있어 영화는 현실을 그대로 보여줌으로써 현상학적 진실에 도달하게 해줄 수 있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70년대에 있어서 영화는 재현이라는 과정을 통해서 이미 지배이데올로기의 시선을 투과하는 기만적인 환영으로 생각되었다. 영화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지도 않을뿐더러 모순을 봉합하고 결국 지배이데올로기적 주체를 강화하는 테크놀러지인 것이다. 이런 생각에서 이론가와 비평가들은 형식파괴적이고 아방가르드적인 실험영화들을 옹호했다. 이 영화의 관객들이 스크린을 보면서 그 영화에 동일시될 수 없었음은 물론이다.
스티븐 히스는 이런 70년대가 지닌 영화에 대한 생각들을 공유한다. 그의 관심은 끊임없이 영화가 어떻게 지배이데올로기의 국가장치와 같은 것이 되지 않을 수 있는가,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70년대의 생각들은 지나치게 형식주의적이었고, 관객들을 마냥 수동적인 존재로 사고했었다. 관객이 영화의 이데올로기적 봉합으로부터 저항하거나 그것에 능동적이고 비판적으로 개입한다는 것을 고려하지 않았다. 「영화에 관한 질문들」에서 스티븐 히스는 70년대의 생각들을 공유하면서도 바로 그런 한계로부터 변화된 질문들을 던지고 있다.
스티븐 히스의 주장은 간단하게 말해 모든 영화는 봉합의 운명을 피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어떤 영화도 완전하게 봉합을 달성할 수 있는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그리고 영화가 숨기고 있는 목적에 쉽게 봉합되는 관객도 드물다. 그래서 히스는 아방가르드적 실험영화의 실천들에 동의하지 않으며, 차라리 내러티브의 해체가 아닌 변형을 강조한다. 이러한 주장은 정신분석학적 영화비평에 대해 일정하게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다. 정신분석학적 영화비평은 완결된 주체 위치를 상정하고 있으며, 시네마를 단일한 심급으로 다루기 때문이다. 히스는 영화에 대한 독해는 절대적으로 강요되는 것이라거나 절대적으로 자유로운 것이라고 보아서는 안된다고 말한다. 그것은 역사적인 것이라고 말한다.
“역사는 시네마 속에서 회복되거나 표현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며 주어져 있는 것도 아니다. 역사는 언제나 영화들 속에서 획득되어야 하는 것이며 그러한 투쟁 속에서 정치적인 영화를 발견시켜야 한다.”(P.340)
이 책에 모은 히스의 글들은 쉽지 않다. 70년대의 영화이론과 그것의 변화에 관심 있는 사람들에게는 흥미로운 텍스트가 될 것이다. 그러나 오히려 이 책의 가치는 요즘의 한국영화에서 우리가 어느새 묻지 않게 되어버린, 빠져 있을지도 모르는 질문들을 던진다는 것에 있다. 어떤 영화를 만들어야 하는가? 스크린 쿼터제로 영화산업이 다시 쟁점이 되고 있지만, 그것은 우리가 지켜야 할 영화가 과연 무엇인지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것이고 우리가 싸우고 지켜내야 할 영화를 만들어내는 일이어야 한다. (이성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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