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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영남 길에서 미술을 만나다 |  | |
| 그림 그리는 가수 조영남에서 노래 부르는 화가 조영남으로
가수 조영남이 난데없이 미술책을 들고 나타났다. 조영남 자신조차도 백 명 중 아흔아홉은 ´그 조영남이 맞어?´ 하고 의아해 할 것이 당연하다며 정황 증거들을 펼쳐놓기 시작한다. 그는 수십 년 전부터 미술을 해 왔고, 전시회도 벌써 20여 차례나 열었으며, 잡지에 현대미술에 관한 글들을 연재한 적도 있다. 음악 쪽으로 너무 알려지는 바람에 자신의 미술이 가려졌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미술계의 ´이방인´이다. 그런 그가 서울 도시 한복판으로 나가 ´미술´을 얘기하려 한다.
이 책이 탄생하게 된 데에는 ´1% 조형물법´이 큰 역할을 했다. 1% 조형물법이란, 대형 건물을 지을 때 건축비의 1%에 해당하는 미술 장식품, 일명 공공조형물을 반드시 설치하도록 하게 한 법규를 말하는데, 이 덕에 우리 일상에 뿌리를 내리게 된 미술품들은 의외로 눈부시다. 포스코, 코엑스, 종로타워, 흥국생명 신사옥 등을 누비며 조영남이 ´입을 대는´ 작품들은 서울 시내에서 생활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알 만한 것들이다. 포스코에 있는 ´아마벨´이라는 작품은 철거 직전까지 갔다가 그의 구명 운동에 의해 극적으로 살아 남았다. 이쯤이고 보면 화가 조영남에 대한 낯설은 시선이 조금은 가실 듯하다.
그러나 이야기의 핵심은 무엇보다 그가 펼치는 ´총체적인 미술론´에 있다. ´총체적인 미술 여행´, 그가 이 특별한 여행을 시작하게 된 명분이다. 그는 모든 사물을 미술로 환원해서 보는 버릇이 있다. 백색 아이보리 비누에서 미니멀 조형의 극치를 읽어내고, 침실 창문으로 보이는 영동대교는 완벽한 무빙 인스톨레이션, 살아 움직이는 설치미술이라고 주장한다. 뒤샹은 소변기를 미술 전시회에 들어다 놓는 수고를 아끼지 않았지만, 그는 화장실에 놓여 있는 변기 그 자체에서 일상의 아름다움을 발견한다. 게다가 평생 쓰던 귀이개를 잃어버렸다며 온 집 안을 발칵 뒤집은 친구 김용옥의 ´귀이개 분실 소동´은 사물의 존엄성을 온몸으로 증명한 해프닝이자 퍼포먼스란다. 언뜻 보면 별나고 괴짜 같은 발상이지만 한편으로 지극히 논리정연하고 군더더기가 없어 깜짝 놀랄 지경이다.
´나이롱 뽕´, ´자뻑´, ´죽음이다´ 등과 같은 속어를 남발하면서 그가 들려주는 미술 이야기는 무척이나 재미있고 살갑게 다가온다. ´서울 시내 대형 미술관´의 안내자로 그가 낙점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닌 듯 하다. 우리가 알고 있는 가수 조영남은 노래를 부르지 않을 때에는 철저하게 한 사람의 ´미술가´로 돌아간다. ´노래 부르는 화가 조영남´. 어쩌면 이게 그의 진짜 이름이 아닐까. (오지연 minol7s2@libro.co.kr/리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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