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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출산과 육아의 풍속사 |  | |
| 여성적인, 그리고 자궁처럼 부드러운 공감
눈앞에서 몰캉몰캉 하늘이 노랗게 늘어져야 아기가 나온다는 어른들의 엄포는 무의식 속에 출산에 대한 엄청난 공포심을 키운다. 산달이 가까워지면 떠오르는 풍경은 그러므로 차가운 수술대, 상복 같은 가운을 뒤집어 쓴 의료진과 날선 메스, 30평생 질러댄 것보다 더 많은 비명과 눈물로 가득 찬다. 인간미가 잘려나간 의학적 풍경 속엔 출산에 대한 기쁨보다 절망과 고통의 울림이 훨씬 더 크다. 그렇다면 지금이 아닌 과거, 여기가 아닌 다른 곳은 어땠을까?
「출산과 육아의 풍속사」는 인간 무의식 너머에 있는 정서적 자궁에 도달하기 위한 일종의 여행서이다. 저자는 수술대 위에 누워 있는 현대의 산모들을 가뿐히 들어올려 먼 과거 속에 동참시킨다. 출산이 의학적 사건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행위의 결과라는 인식에 도달하기 위한 동행, 그래서 여행의 시작이 문명을 빗겨간 아프리카로 향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갓난아기가 젖을 떼기 전까지는 본질적으로 인간이 아닌 요정이나 동물과 비슷하다고 본 서아프리카의 어떤 부족은 아기의 진짜 어머니를 요정으로 보고 이중혈족을 유지하는 풍습을 지니고 있었다. 아기의 태반에 아기를 지켜주는 정령이 스며 있다고 생각한 것도 아프리카 부족의 특징이었다. 그들은 태반을 땅 속에 묻고 나무를 심는다. 성장한 아이는 상상이 아닌 현실 속에서 자신을 지켜주는 쌍둥이 정령 나무 한 그루씩을 갖게 되는 것이다. 산부인과에서 축출된 태반이 공공연히 피부 이식이나 화장품 재료로 팔려 나간다는 지금과 비교해보면 얼마나 시적인지 모른다.
인류학자 마빈 해리스의 저서를 보는 듯한 흥미로운 구절들도 눈에 띈다. 닭을 먹으면 닭살이 된다고 믿었던 우리 민족이나, 계란을 먹으면 대머리가 된다고 생각했던 아프리카 부족간의 차이점은 무엇일까? 중국에선 임신 중에 생강을 먹지 않는다. 생강 같은 손을 가진 아기가 태어날 거라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이런 금기 사항들 속에서 여성 억압의 장치를 발견하는 학자들도 있다. 물론 눈 밝은 독자들 중엔 그것을 간파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아기의 위생과 목욕을 권유하는 문화와 더러운 아기가 건강하다고 믿는 문화 사이에도 간단치 않은 진실이 숨겨져 있다. 아프리카의 한 부족은 아기를 목욕시키는 대신 아기의 몸에 올리브를 발라 닦아주고 순서를 정해 아기 몸을 마사지 해준다. 현대 의학은 수세기가 지나서야 그들의 행위에서 놀라운 건강상, 정서상의 지혜를 발견했다. 청결 교육에 너무 집착한 나머지 유럽의 많은 아이들은 배변에 커다란 공포를 느꼈다. 말 그대로 똥누는 문제 때문에 제 명줄보다 일찍 갔다는 루이 13세의 일화나, 유난히 항문기에 집착하는 프로이트 이론들은 이에 대한 반증이 아닐까? 물론 옛날 방식이 모두 좋은 것은 아니다.
아기를 바라보는 관점이 달랐던 시절에는 아기의 요람을 흔들어주는 것을 금기시하기도 했다. 모유 먹인 일을 묘비에 써넣을 정도로 기이한 모험이라고 생각했던 시절도 있었고, 심지어 잠자지 않고 보채는 아기에게 수면용 시럽을 제작해 먹이는 일을 한때도 있었다. 양귀비 시럽을 먹이거나 진정제를 먹이는 것이 비도덕적인 행위인가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너무 형편없어서 죄책감 없이 아기에게 약을 먹인 것이다. 우는 아기에게 젖을 주지 않아 그 아이의 무의식에 엄청난 그림자를 만들어 미래의 신경증 환자를 양산하는 일도 부지기수였다. 진짜 부모에게 잘 보이기 위해 유모가 일부러 아기를 비만아로 만드는 경우도 여럿 있었다.
저자는 과거와 현재의 빛과 그림자를 동시에 보여준다. 서로가 서로의 거울이 되어 자신이 보지 못한 악화의 이면을 되비추게 하는 것. 이것이 이분법의 독단을 피하고, 강요하지 않는 부드러운 공감을 얻어내기 위해 그녀가 택한 방식이다. 그래서 무엇이 좋고 무엇이 나쁜가를 따져보기 이전에 세상에 얼마나 다양한 방식의 출산과 육아법이 존재하는지를 되짚어 보는 것이 이 책에선 더 중요하다. 정해진 답은 없다. 저자의 땀 냄새 나는 자료 속에서 자신에게 맞는 답을 찾아가는 것, 정답이 없다는 건 그런 의미에서다.
불과 1세기 전 유럽인들은 비명 한번 지르지 않는 아프리카 여성들의 출산을 보며 ´출산중 미개인들의 고통이 문명인보다 훨씬 덜 하다´는 가설을 내놓기도 했다. 지금 이 황당한 가설이 떠오르는 건 왜일까? 고통의 의미를 정확히 알면 그것은 인내를 넘어 지고의 쾌락으로 급선회한다. 갓 태어난 아기가 남긴 칼 같은 틈새, 그 속에 깊숙이 접혀 있던 생의 놀라운 비밀이 숨겨져 있는 것은 아닐까. (백영옥 rararal93@libro.co.kr/리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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