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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생활의 역사 1 |  | |
| 안방 창문을 열고 들여다본 세계의 역사
아주 우람하고 방대한 책, 치밀한 사료 검증과 역사와 인간에 대한 미시적 관찰을 통해 거시적 통합을 이뤄낸 책이 나왔다. 가로줄을 따라 천천히, 그리고 꼼꼼하고 아기자기하게 사생활의 흔적들을 훑다보면 어느덧 역사 속으로 성큼 들어와 버리는 그런 책. 인간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잘 짜여진 건축물처럼 서로를 받치고 견인해내는 책. 「사생활의 발견」은 그 분량과 형식으로만 판단해도 가히 혁명적인 세공술을 보여주는 책이라 할 수 있다.
이 책은 프랑스의 명문 출판사인 쇠유 출판사의 역사학 분야를 담당하고 있는 미셸 비녹의 제안으로 1976년부터 10여 년 간의 작업을 거쳐 1985년에 출판되었다. 필립 아리에스와 조르주 뒤비, 두 명의 책임편집 체제 아래 1권은 폴 벤느, 3권은 로제 샤르티에, 4권은 미셸 페로가 각각 편집에 가담했다. 이들말고도 전공과 국적 불문한 40여명의 국제적인 학자들의 학제적 연구가 이뤄져 지식 교류와 소통의 새 전기를 마련했다는 점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는다. 더불어 다양한 도판과 본문이 이뤄내는 조화는 새로운 멀티 텍스트의 가능성을 성공적으로 실험한 쾌거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제목만 보고 무슨 ‘몰래 카메라’식의 훔쳐보기를 기대했다면 실망하게 된다. 이 책을 읽다보면 흔히 프라이버시 개념으로 설명되고 보호받아야 한다고 여겨지는 은밀한 사생활이란 게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된다. 이 책에 따르면 사생활의 역사란 ‘사회성의 형식들이 변형되어 온 역사’다. 이 책에서 저자들은 사생활에는 항상 ‘국가의 그림자’가 드리워있었다고 하면서, 사생활의 역사는 비정치적 역사가 아니라 ‘일상의 정치사’였다고 말한다. 그러니까 ‘몰래 카메라’의 시선은 사생활을 몰래 훔쳐보는 게 아니라, 공적으로 조직된 생활의 양식을 특정한 개인적 사례를 공개하면서 전면화하는 거라 볼 수 있다. 몰래 카메라에 의해 들켜버리는 건 그것을 바라보는 자들의 공적인 준거양식인 것이다.
여태까지의 역사연구가 공적영역에 국한돼 있었다면, 이 책은 미시적이고 사적인 역사의 영역을 현미경처럼 파헤친다. 그 대상과 항목들이 미세하고 미묘한 만큼 그로 인해 형성되는 역사 인식 또한 기존의 역사관과는 첨예하게 다르다. 이건 기존 역사학적 방법론을 뒤집는 일이라 할 수 있다. 아울러 이 책은 그동안 사회정치적인 현상들의 뒷전에서 배경 노릇만하던 시대의 문화양식들을 전면에 내세우면서 새로운 역사인식의 기초로써 파악하고 있다. 역사를 그렇게 봤을 때, 문화양식들을 이끌어왔던 것으로 여겨졌던 사회정치적 요소들은 거꾸로 문화의 양식이 변화하면서 파생되어 나온 것으로 이해되기 마련이다. 이런 역사연구의 선두에 있는 이가 바로 미셸 푸코, 노르베르트 엘리아스, 그리고 이 책의 책임편집자인 필립 아리에스다. 참고로 아리에스는 갈리마르 출판사에서 퇴짜맞은 미셸 푸코의 첫 번째 작품을 발굴해낸 혜안으로도 유명하다.
이 책은 사사로워 보이는 문화적 행위, 예컨대 홀로 일기를 쓰거나, 화장을 고치는 행위, 그리고 시대별로 각기 다른 의미를 지녔던 섹슈얼리티 등 지극히 개인적으로 이뤄지는 행위 들이 사회적 관계 속에 어떻게 작용하면서 공적인 함의를 드러내는지를 세세하게 분석하고 있다. 근대적 패러다임 안에서 한 개인의 기본적 권리장전처럼 인식되던 사생활이란 개념은 그러므로 이 책의 형식이 그렇듯, 역사를 포괄하면서 역사의 일부로 귀속된다. 그런 의미에서 서구의 유구한 역사적 전통들을 세세하게 더듬으며 그 방대한 역사를 한꺼번에 되씹고 새로운 의미를 뱉어내는 이 책은, 그 분량의 방대함만큼이나, 미래에서 부활해 온 신인류의 공룡처럼 여겨진다.
푸코의 「말과 사물」같이 난해한 이론서도 빵처럼 팔려나가는 곳이 프랑스라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이토록 방대한 박물학적 지식의 보고가 20만질이나 팔려나갔다는 사실이 그닥 납득하기 어려운 일만은 아닐 것이다. 프랑스뿐 아니라, 이 책은 14개국의 언어로 번역돼 전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됐다. 현재 우리나라에 1권, 3권, 4권이 출간된 이 책의 2권과 5권은 올 연말쯤에 완역돼 나올 예정이다. 근대나 현대의 개념으로만 애매하게 규정되는 작금의 역사와 당대의 문화적 행위들을 통찰하기 위해서든, 공적 영역 속에 함장된 인간들의 사사로운 흔적들을 통해 미래를 예측하기 위해서든, 이 거대한 공룡과 정면으로 맞서 보는 건 더더욱 미시적으로 분할돼 변화하는 시대적 패러다임의 근거를 파헤치는 새로운 정신의 모험이 될 수 있을 듯하다. (강정 igguas@libro.co.kr/리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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