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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히스토리아 |  | |
| 역사에 ‘빅뱅’은 없다
이 리뷰를 쓰는 3월 19일은 사진의 역사가 공식적으로 시작된 뜻깊은 날이다. 1839년 3월 19일 프랑스 과학 아카데미가 자크 다게르의 은판사진법을 정식 발명품으로 인정함으로써 사진은 역사에 화려하게 데뷔하게 됐다. 3월 18일은 또 무슨 일이 있었을까? 이탈리아의 항해사 아메리고 베스푸치가 태어난 날이다. 콜럼버스가 발견한 대륙이 인도가 아닌 신대륙임을 증명한 공로로 베스푸치의 이름은 불멸하게 됐다. 새로운 대륙의 이름이 ‘아메리카’로 정해졌기 때문이다. 그럼 내일은? 한국출신의 독일 소설가 이미륵이 작고한 날이다. 이미륵은 독일어로 작품 활동을 한 유일한 한국출신 작가로「압록강은 흐른다」라는 유명한 작품을 남겼다.
당연한 말이지만 역사는 어느 한 순간 이루어지지 않는다. 역사에 ‘빅뱅’이란 없다. 그것은 누적이면서 하나의 도도한 흐름이다. 고종석은 이런 역사의 본질에 ‘날짜’라는 인위적 도구를 이용해 모 일간지에 매일매일 칼럼을 썼다. ´오늘´이라는 이름으로 연재된 이 칼럼들은 때로는 사건을 객관적으로 보도하는 스트레이트 기사가 되기도 하고, 때로는 인물의 죽음을 알리는 부음기사가 되기도 한다. 이 책 「히스토리아」는 이 칼럼들을 추려 한 권의 책으로 만든 것이다. 구성은 은행 창구에 걸려 있는 일력(日曆)과 똑같다. 히스토리아는 라틴어로 ‘역사’라는 뜻이다.
「히스토리아」를 보다 보면 재미있는 날이 꽤 많다. 예컨대 세계문학에서 엄청난 영향을 끼친 두 문호, 세익스피어와 세르반테스는 4월 23일 같은 날 사망했다. 러시아 소설가 투르게네프에 의해 완전히 반대되는 인간형으로 분류된 ‘햄릿’과 ‘돈키호테’가 공교롭게도 같은 날에 죽은 묘한 상황이 연출된 것이다. 비슷한 날은 또 있다. 이름도 비슷한 고야와 고흐는 3월 30일 같은 날 태어났다. 이 두 사람은 모두 외국인으로 프랑스에서 죽었다는 공통점도 가지고 있다. 또 둘 다 다소의 광기도 있었다. 틀린 점이 있다면 고야와 달리 고흐가 자살했다는 점이다.
서양 인물들의 비중이 가장 높긴 하지만 고종석은 비극적인 사건과 관련된 한국현대사도 객관적으로 기록하고 평가했다. 한국전쟁 중이던 1951년 2월 11일에는 빨치산의 공세가 강화되는 시점에서 국군의 과잉진압으로 민간인 130여 명이 학살당한 거창양민학살사건이 일어났다. 1975년 4월 9일에는 인혁당 관련자 여덟 사람이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날이다. 국제 법학자 회의로부터 ‘사법 사상 암흑의 날’로 선포된 이 사건은 중앙정보부의 대표적인 용공조작사건으로 박정희 유신체제의 광기가 만천하에 드러난 사건이었다.
전반적으로 객관적인 사실 위주의 칼럼이지만 곳곳에 자유주의자 고종석의 관점이 녹아 있기도 하다. 스스로 말하길 ‘채점자가 되고자 하는 욕망을 버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긴 객관적인 사실만이 나열되어 있다면 역사 교과서처럼 따분했을 것이다. 이 책이 재미있는 이유는 그날 그날 있었던 역사 중에서 고종석만의 관점으로 사건을 고르고 인물을 추린 점에 있다. 다른 사람이 같은 형식의 글을 썼다면 3월 19일자 칼럼에 ‘사진의 탄생’이 아닌 다른 역사가 기록되었을지도 모른다. (박수호 psh4039@libro.co.kr/리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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