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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무라이 윌리엄 |  | |
| 윌리엄, 그대를 사무라이로 봉하겠노라
「사무라이 윌리엄」은 가일스 밀턴이 사료를 바탕으로 곧이곧대로 적어 내려간 역사서이자 영국인 앞에 드러난 일본 문명에 대한 보고서이며 사무라이 윌리엄의 일대기이다. 윌리엄이 사무라이였다는 것은 진짜다. 기사 윌리엄이 아니다. 이건 호기심을 자극하겠다는 광고성 멘트도 아니고 역사서에 흔히 오르는 장광설도 아니다. 영국 하층민 출신의 한 사내가 일본 쇼군의 총애를 받아 사무라이의 위치에까지 오른다. 그간 「향료전쟁」, 「위대한 두목 엘리자베스」를 내면서 여행사와 탐험사에 천부적인 재능을 보여주었던 가일스 밀턴이 이번에도 역작을 건져올렸다.
1564년 영국의 한 어촌에서 윌리엄 애덤스가 태어났다. 15세기에서 16세기는 그야말로 대항해 시대였다. 모두들 동으로 동으로 황금을 찾아, 모험심에 신세계로 눈을 돌리고 있었다. 애덤스는 35세에 향료제도로 향하는 배의 선원으로 지원했다. 폭풍우와 질병, 야만인의 습격, 굶주림을 겪은 20여 개월의 혹독한 항해 끝에 1600년 4월, 그들이 표류하듯이 닿은 곳은 세계의 끝, 일본이었다.
그는 오사카로 가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알현한 뒤 감옥에서 6주를 보낸다. 이에야스는 애덤스와의 지루한 문답 끝에 그의 항해술과 천문학 지식을 높이 사 신변을 보장해준다. 자유의 몸이 된 애덤스 또한 튼튼한 배를 건조하라는 임무를 성공적으로 완수한다. 그리고 이에야스에게 항해술과 수학을 가르치는 스승이, 다른 서양 나라들과의 외교에 있어 자문을 해주고 세계의 소식들을 전해주는 중개자 역할도 충실히 해낸다. 이에야스는 그의 재능을 활용해 비밀리에 지도제작자로 고용하기도 했으며 러시아 북부를 가로지르는 북서항로를 개발을 구상하라고 지시하기도 한다.
애덤스는 쇼군을 알현할 수 있는 위치인 궁성의 직속 가신에 해당하는 최고직인 하마모토에 까지 이른다. 수많은 전투를 통해 자신의 용맹함과 충성을 증명한 소수의 사무라이들만이 그런 자격을 갖췄던 것에 비하면 파격적인 조치였다. 또한 영국을 그리워하는 애덤스에게 이에야스는 저택이 딸린 넓은 교외 영지를 하사했고 90명에 이르는 농노에게 절대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영주로 승격시켰다. 이방인에게 영주의 작위를 주는 것은 일본 역사상 전례를 찾아볼 수 없는 일이었다. 그의 신분상승은 일본의 정세에 힘입은 바도 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겨우 5살 난 아들을 남기고 죽자 섭정체제에 있던 중앙권력 5명 중 하나가 바로 이에야스였다. 그는 다른 네 명보다 뛰어난 인물이자 실세였다. 애덤스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확실한 뒷배를 등에 업고 있었던 것이다.
당시 일본은 세계지도에서 뾰족한 해안선과 복잡한 군도들로만 표시되어 있던 미지의, 미개인의 땅이었다. 그러나 예수회 신부의 편지를 통해 일본은 뛰어난 문명국이며 ‘재화가 풍부해서 물물교환이 아닌 지급수단을 지닌’ 나라이며 황금은 없지만 은광이 풍부하다는 사실을 접한 런던의 탐험가들과 투자자들은 열광했다. 그들은 일본에 상관을 차리고자 새리스 선장 일행을 보낸다.
동포를 만난 애덤스는 영국 동인도회사에서 파견한 일행들을 도와 그들이 일본에 정착하는 것을 돕고 동인도회사의 직원이 되어 일본 상관을 위해 일했다. 쇼군에게 영국인들을 위해 탄원하고 인맥을 활용해 그들을 살폈으며 계약이 만료된 후에도 영국상관이 재정파탄을 피할 수 있게 애썼다.
일행 중 우두머리인 새리스 선장은 애덤스를 보기 전 흔히 볼 수 있는 영국 뱃사람을 기대했다. 그러나 선장은 그는 영국인이긴 했지만 옷과 행동거지는 영락없는 일본인이었다고, 그런 그를 ‘허깨비’ 같다고 전했다. 윌리엄은 하마모토가 된 후 스스로 일본식 복장을 입고 자신의 일기에 일본식 역법을 사용하기도 했다. 그는 항해사라는 뜻의 일본 이름 안진 사마(按針樣)로 불리는 것을 즐겼고 일본 여자와 가정을 꾸리며 일본을 제2의 고향으로 삼았다. 한편 애덤스는 영국으로 돌아가는 문제를 두고 이에야스에게 수년 간 간청했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일본을 떠나도 좋다는 허락을 받고 몇 번의 기회도 얻지만 그는 20년간 살아온 일본을 떠나지 않고 뼈를 묻는다.
이에야스가 서거하고 애덤스가 죽음을 맞이하면서 일본에서 서양인들은 설 땅을 점점 잃었다. 카톨릭에 이은 개신교의 탄압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이에야스의 카톨릭교도 추방령은 히데타다에 이르러 모든 기독교도의 추방정책으로 확장되어 발효되었고 외국인들이 벌이는 크고 작은 분쟁도 그에게는 성가신 일이었다. 일본은 1854년 공식적으로 문호를 개방할 때까지 200여년 간을 쇄국정책을 펴나갔고 애덤스의 존재는 그때까지 일본의 전설로 묻혀 있게 된다. (김은선 kong@libro.co.kr/리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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