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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무한의 신비 |  | |
| 발빠른 아킬레스가 느린 거북을 결코 앞지를 수 없다고?!
무한 즉, 영원이란 만물의 창조와 소멸이 동시적으로 이뤄지는 ‘어떤 것’이다. 그러니까 그건 시간개념인 동시에 모든 공간을 함유하고, 공간의 점멸까지도 포함한다. 무한은 즉 ‘무(無)’나 ‘공(空)’과도 통한다. 무한은 존재의 시원과 종말을 한꺼번에 담은 그릇이다. 하지만 그 그릇엔 테두리가 없다. 그걸 수학적으로 표현한 우화가 유명한 제논의 패러독스다.
“고대인 가운데 가장 발이 빠른 아킬레스에 비하면 거북은 너무 느리기 때문에 얼마간 앞에서 출발한다. 거북이 처음 출발한 지점에 아킬레스가 도착할 무렵이면 거북은 얼마간 더 기어갔을 것이다. 거북이 더 기어간 거리만큼 아킬레스가 쫓아갈 무렵이면 거북은 또 얼마간 더 기어갔을 것이다. 이런 식의 논법이 무한히 계속된다. 그리하여 제논은 발빠른 아킬레스가 느린 거북을 결코 앞지를 수 없다고 결론짓는다.” (pp.22∼23)
과학전문 저술가이자 수학자인 애머 액젤은 「무한의 신비」에서 고대로부터 수많은 철학자와 수학자들의 영혼을 사로잡았던 무한 개념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들을 풀어놓는다.
책은 19세기 말 ‘연속체 가설’을 얘기하며 무한에 대한 광적인 천착을 보였던 독일 수학자 게오르크 칸토어의 죽음에서부터 시작한다. 칸토어는 말년을 정신병원에서 보내면서 무한을 표현하는 기호‘알레프’를 처음 사용했다. 헤브라이어 알파벳 첫 문자인 ‘알레프’는 이후 집합론의 완성자이자 무한집합 개념을 정면으로 파헤쳤던 칸토어의 상징이 된다. ‘알레프’는 기초 수학의 바탕이 되는 학문이다. 그건 단순한 수학이론을 떠나 우리 삶의 보이지 않는 원리와 신비스런 이면들을 탐색하는 열쇠로 작용한다. 신비롭지만, 파고 들어가면 삶과 우주의 기본원리로 늘 삶의 배후를 떠도는 무형의 실체. 참고로 말하건대 이 책의 원제는 ‘알레프의 신비’다.
그러나 이 책은 한 수학자에 관한 단순한 전기가 아니다. 칸토어는 단지 무한으로 들어가는 초입 역할만 할 뿐이다. 글쓴이는 칸토어의 무한 개념을 다양한 스펙트럼으로 열었다 조이며 고대와 중세까지 넘나들면서 무한의 신비를 살핀다. 수학과 철학 연구를 도덕적 삶의 기초로 삼았던 피타고라스 학파에서부터 플라톤, 아르키메데스, 에우독소스 등의 고대 철학자들이 생각했던 무한개념들이 세세하게 소개돼 있어 다양한 지적 쾌감을 안겨준다. 칸토어 이후 괴델 등의 철학자들이 발견해낸 개념들을 통해 신비의 옷자락에 감춰진 무한의 공리적 실체를 밝히는 데 주력하는데, 그 중 가장 흥미진진한 건 스페인 신비주의자 솔로몬 이븐 가비롤이 유대교의 은밀한 신비주의 명상 체계에 이름 붙인 카발라 신비주의를 얘기하는 부분이다. 칸토어가 ‘알레프’를 생각하게 된 것도 카발라의 유대 수비학을 통해서였다.
카발리스트들은 우주의 얼개를 살피는 거대한 숫자의 전개도를 통해 절대에 대해 명상했다. 그들은 무한을 신적인 영상과 결합해서 파악했다. 그래서인지 무한에의 도전사에는 피비린내가 물씬 풍긴다. 정신병으로 죽은 칸토어는 물론이고, 무한의 잡히지 않는 첨탑에 도전한 이들에겐 언제나 저주가 퍼부어졌다. 「무한의 신비」는 그런 의미에서 무한이라는 신비의 정원에서 실족하거나 소멸해버린 영혼들에 대한 은밀한 보고서로 읽힌다. 무한의 정원엔 그렇듯 다가가면 살아남지 못하는 고색창연한 신화가 생생하게 살아있다. 그래서 더 유혹적이지만 그 누구의 노력으로도 무한은 밝혀지지 않는다. 그건 알레프가 마지막이 없는 궁극의 수인 것과 마찬가지다. 그러면서 알레프는 매번 유혹이 시작되는 수다. 무한은 늘 시작되기만 할 뿐, 마지막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무한은 영혼의 전쟁을 지속시키기 위한 신의 파토스인지도 모른다.
수학자들의 삶과 철학적 의문들이 유려한 문체에 실려 전달되지만, 만약 이 책을 통해 무한의 본질이나 실체를 알려고 한다면 실망하게 된다. 책의 마지막 장을 덮어도 무한의 신비는 밝혀지지 않는다. 단지, 뫼비우스띠처럼 얽혀 안으로 접혔다 밖으로 펼쳐지는 무한의 이상한 운동성만 요령부득하게 여겨질 뿐이다. 게다가 수학적인 기초상식이 부족할 경우엔 따라잡기 힘든 요소가 많다. 그러나 무한은 어차피 정신의 강한 도전들을 향해 열려 있다. 무한은 결국 영혼을 투쟁하게 만드는 인간 본질의 기저에서 늘 생동한다. 「무한의 신비」를 읽는 건 그러므로 삶의 내면적 질서와 정면으로 맞부닥치는 일! 가히 도전해봄직하지 않겠는가. (강정 igguas@libro.co.kr/리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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