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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리가 잡은 범인 |  | |
| 파리는 정직하다!
과연 파리도 인간에게 이로운 점이 있을까? 곰곰히 생각해 보았다. 개구리의 먹이로 생태계의 먹이사슬에 참여하거나 피라미낚시의 미끼로 사용되는 점을 제외하면, 거의 없을 것 같았다. 더러운 곳에 서식하면서 갑자기 돌진하는 파리야말로 혐오스럽기 그지없는 곤충이다. 그것이 나의 결론이었다. 하지만 이 책 ˝파리가 잡은 범인˝은 파리에 대한 인간들의 편견을 참혹하게 무너뜨린다. 파리야말로 엄청나게 쓸모있는 곤충이었던 것이다. 파리는 결코 거짓과 가식을 모른다. 때문에 유충-번데기-성충에 이르기까지 파리의 성장패턴을 파악한다면, 누구라도 콜롬보같은 탐정이 될 수 있다! 실제 이 책의 저자인 파리박사 ´M.리 고프´는 파리가 시체의 부패에 미치는 영향을 밝혀내 훌륭한 탐정이 될 수 있었다. ´리 고프´가 밝혀낸 원리는 비교적 간단하다. 시체에서 수집한 구더기(파리의 유충)의 종과 성장기간을 알아내면, 시신이 사망한 시간대를 추정할 수 있다는 원리이다. 파리에 대한 리 고프의 해박한 지식은 정말 놀랍다. 그는 어떤 파리종이 시신에 도착한 후, 알을 낳고 유충으로 부화하며 번데기가 되는데 걸리는 시간을 꿰뚫을 정도다. 그것도 각각의 단계별로! 각종 범죄사건의 에피소드를 다룬 이 책은 한 편의 추리소설을 읽는 듯한 스릴감을 준다. 파리와 구더기를 단서로, 시신의 사망시간대를 추적하는 저자의 추리는 사건해결에 결정적 단서를 제공한다. 놀랍게도 그에 의해 추정된 사망시간대의 오차는 단지 ´몇 시간´ 범위 안에 있을 뿐이다! 추리소설은 허구에 불과하지만, 이 이야기들은 실제 있었던 사건이다. 그래서 더욱 몰입할 수밖에 없다! 리 고프에 의해 개척된 법곤충학이란 학문은, 우리에게 잘 알려진 법의학과 마찬가지로 살인사건의 해결을 목표로 한다. 그러나 법곤충학은 미국에서도 1990년대에 정착되었을 정도로 낯선 학문이며, 우리 나라에는 이 책을 통해 최초로 소개되었다고 한다. 한국의 법의학계 자존심인 황적준 교수도 ˝파리가 잡은 범인˝에 매료돼 연구테마로 이 분야를 선택했다는데, 하물며 이 책을 읽을 일반인들이 느낄 충격이란! 얼마전 세상을 경악케 한 ´대구 개구리소년 사건´의 시신발굴 현장은 법의학에 대한 세인들의 관심을 증폭시킨 바 있다. 발굴에 참여했던 한 법의학자는 유골에 파리의 유충이 묻은 것으로 보아, 살해 후 시신이 매장장소로 옮겨 왔다고 판단하였다. 하지만 이 책을 읽은 사람이라면, 그의 주장을 반박하거나 적어도 몇 가지의 첨언정도는 할 수 있다! 즉 이 책의 지식에 의거할 때, 매장된 시신에서도 파리의 유충이 자랄 수 있다는 것이다. 만약 시신이 옮겨졌을 경우라도, 법곤충학 전문가가 감식했더라면 그는 파리의 유충과 주변의 곤충생태계를 단서로 개구리 소년들의 사망시기, 시신 이동시기, 지금까지의 경과시기 등을 대략적으로나마 짚어낼 수 있었을 것이다(내가 탐정이 된 것은 아닐까). 풀릴 수도 있었던 사건이 다시 미스테리로 남게 된 것은 한국 법의학의 저급한 수준을 반영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리 고프가 말한 바와 같이 법곤충학은 인간본성의 어두운 부분을 파헤치려는 시도이다. 참혹한 시신과 들끓는 파리와 구더기들로부터 초연해지고, 사건에서 냉정한 시선을 유지해야만 성공할 수 있다고 그는 조언한다. 사건을 미궁에 빠뜨리려는 범법자의 트릭도 수사를 방해하는 요인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진실은 결코 숨겨지지 못한다. 왜냐하면 파리는 정직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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