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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새로운 종의 진화 로보 사피엔스 |  | |
| 로봇은 미래의 건설자인가, 파괴자인가
마이크로소프트 유니버셜 사전 2099년도 판에 의하면 ‘로보 사피엔스’라는 단어의 정의가 이렇게 내려져 있다. 명사(자동제어에 의해 움직이는 장치를 뜻하는 영어의 로봇과 인류를 뜻하는 라틴어의 호모 사피엔스에서 유래) 1. 순전히 생물학적인 인류보다는 훨씬 우월한 지능을 가진 인간과 로봇의 혼합종;21세기에 출현하기 시작. 2. 지구를 중심으로 한 태양계의 지배적인 종족.
2099년도 판이라는 사전부터 가상의 것인 만큼 ‘로보 사피엔스’에 대한 정의 역시 가상이라고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로보 사피엔스’는 아직 출현하지 않은 인류의 미래를 예시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그게 100여 년 이후에나 사전적인 정의가 가능해질 정도로 먼 미래의 일은 아닐 듯싶다. 체코의 작가 카렐 차펙이 1920년도 작품 「R.U.R」에서 ‘로봇’이란 단어를 처음 쓴 이래, 로봇의 창조는 과학자들의 오랜 숙제로 남았다. 「새로운 종의 진화 로보 사피엔스」는 그후 80여 년 동안 인류가 발전시켜온 로봇의 역사를 현재의 시점에서 포괄적으로 점검하고 있는 책이다.
카렐 차펙의 희곡은 비극이었다. 인간들의 노역을 대신하던 로봇들의 숫자가 급격하게 불어나면서 로봇들이 반란을 일으키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다. 영화사의 고전으로 남아있는 ‘메트로폴리스’ 역시 비슷한 얘기를 담고 있다. 테크놀로지에 대한 두려움과 인간에 대한 오랜 믿음이 상극으로 부딪쳤던 탓일까? 20세기초에 활동했던 예술가들의 그런 상상력이 현실화될 만큼 로봇산업이 발달하지는 못했지만, 「새로운 종의 진화 로보 사피엔스」는 로봇의 발달로 일어날 수 있는 인류의 변화에 대해 여러 가지 관점들을 제공하고 있어 주목할 만하다.
이 책은 사진 작가 피터 멘젤과 전직 TV프로듀서 페이스 달루이시오가 전 세계의 로봇 개발자들 백 여명을 직접 만나 인터뷰한 내용과 함께 현재 개발돼있는 다양한 로봇들의 화보로 구성돼 있다. 흥미로운 도판들과 과학지식이 많지 않은 일반독자들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만한 설명으로 이뤄져 있어 공상과학만화 속에서나 보던 로봇들을 실물의 형태로 마주하는 기회를 제공해준다. 그렇지만 로봇의 미래에 대한 굉장히 진지한 고찰이 담겨있어 단순한 흥밋거리로 접근했다가는 글쓴이의 만만치 않은 과학적 전망에 기가 질리고 만다.
로봇의 출발은 기존 생명체의 형태 및 기능 등을 복제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가정과 직장에서의 단순한 업무 대체에서부터 시작해 소니의 아이보(AIBO)처럼 애완동물을 대체하는 오락용 로봇 개까지, 현재 개발이 완성돼 상품화 단계에 접어든 로봇들은 그러므로 로봇의 가장 기초적인 단계에 속한다. 문제는 단순노동의 대체 개념을 넘어 스스로 사유하고 행동을 통제하는 지능적 기계(Artificial Intelligence)의 창조 여부다. 지능적 기계가 창조자의 지능 및 감수성을 그대로 복제하거나 그것을 뛰어넘을 수도 있다는 가설에 대한 로봇 공학자들의 견해는 크게 두 가지 관점으로 요약할 수 있다.
“오늘날 지능적 기계를 만드는 데에는 기본적으로 두 가지 접근 방식이 있다. 약한 AI와 강한 AI가 그것이다. 약한 AI는 기계가 인간의 인지적 행동을 모의할 수는 있지만, 기계 스스로가 실제로 심적 상태를 경험하는 것은 아니라는 논변이다. …(중략)… 반면에, 강한 AI의 지지자들은 기계들이 인지적인 심적 과정을 구현할 수 있으며, 진짜 감정과 의식을 지닌 자기 반성적인 기계를 만드는 것이 가능하다고 주장한다.”(P. 25)
이런 대립의 핵심은, 앞에 인용한 마이크로소프트 사전의 개념을 빌리자면 ‘순전히 생물학적인 인류보다는 훨씬 우월한 지능을 가진 인간과 로봇의 혼합종’이 과연 가능할 것이냐는 것으로 압축할 수 있다. 이럴 경우, 문제는 단순히 공학의 차원에서 그치지 않는다. 인류학과 철학, 유전학, 생물학 등 인간의 모든 학문분야가 혁명적인 변화에 부딪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이 책의 부제로 붙은 ‘새로운 종의 진화’라는 표현은 전혀 과장된 것이 아니다. 현재의 호모 사피엔스는 어쩌면 새로운 대체 인류에 의해 오래된 영장의 위치를 내줘야하게 될는지도 모른다. 그게 카렐 차펙의 암울한 묵시록처럼 비극적인 일인지, 아니면 인류가 새롭게 맞이할 과학 문명의 신천지가 될지는 아무도 확신할 수 없다. 「새로운 종의 진화 로보 사피엔스」에서 그 결론을 찾기는 어렵다. 이 책은 단지 거기로 가는 노정 중의 여러 가지 사례들에 대한 중간점검만이 담겨 있을 뿐이다. 단 하나 분명한 건, 로봇의 미래가 인간의 미래에 적잖은 작용을 하리라는 사실이다. 2099년 판 마이크로소프트 유니버셜 사전의 ‘로보 사피엔스’란은 아직도 공란으로 비어 있는 채, 수많은 공학자들의 상상력과 결단을 유도하고 있다. (강정/리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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