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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잔의 유혹 |  | |
| 우리 약물 한 잔 할까요?
하루 한 번 면도를 하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뇌졸중에 걸린 확률이 훨씬 적다. 밥 한 숟가락에 최소 30회씩 씹으면 치매 예방의 효과가 있다. 속속 들어오는 의학뉴스에서 심심찮게 볼 수 있는 재미난 연구 결과들이다. 이게 루머처럼 입에서 입으로 퍼져 어느새 건강 상식으로 통용된다. 건강에 있어서는 모든 게 상식이 되어 가는 지금, 국경을 초월하고 인종을 뛰어넘으며 전세계적으로 인기를 얻고 있는 두 물질계도 건강 상식의 세계에 상당한 몫의 정보를 보태고 있는데 그 물질이 바로 알코올과 카페인이다. 적당량의 적포도주는 심장병 예방에 도움을 주고 숙면을 도와준다. 커피는 살빼기에 효과가 있고 각성제로 좋다는 등. 이것이 유혹이 아니고 뭐란 말인가.
어제의 당신이 즐겼고 앞으로도 줄기차게 찾게 될 알코올과 카페인. 스티븐 브라운의 「한잔의 유혹」은 ‘활력과 중독’의 이면을 지닌 알코올과 카페인을 해부한다. 알코올과 카페인의 분자 구조와 화학적 작용에서부터 어떻게 인간의 음료로 사랑 받게 되었는지, 또 시대별로 내려졌던 무수한 정의까지 현대 의과학 연구 성과와 사례들을 들어 요목조목 나열하고 있다. 사실 책에서는 앞서 언급한 구미 당기는 유혹보다는 그 유혹이 사실 뱀혓바닥과 같이 우리를 농간하고 있다는 쪽에 촛점을 맞추고 있다. 그러나 저자는 알코올과 카페인의 해악을 설파해 필히 ‘끊어야 된다’는 식의 계도문을 읊는 데 목적을 두고 있는 것은 분명 아니다.
알코올과 카페인은 세계적으로 애용되는 기분 전환 물질이다. 니코틴이 함유된 담배가 공식적으로 중독성 있다고 판정된 이 세계에서 아직 버티고 있는 것이 바로 이 두 가지인데, 이것들은 전혀 상이한 효과를 낸다. 정신을 각성케 하고 심지어 유행 초창기 유럽에서는 ‘천재를 한결 명민케 하’는 작용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각광받았던 커피와 달리 술은 이성과 합리의 해방구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러나 놀랍게도 카페인이나 알코올이 우리 신체에 미치는 명백한 영향에도 불구하고 알코올 중독이 유전인지, 혹은 카페인에 반응하는 양상이 왜 극과 극인 경우가 발생하는 지에 대해서는 명쾌한 해답을 내놓지는 못하고 있다. 이유는 두 물질의 성분 구조가 과학적으로 밝혀지지 않아서가 아니라 그것이 작용하는 기관, 즉 인간의 뇌를 분석할 수 있는 기술이 아직까지는 없기 때문이다.
라틴어로 생명의 물을 뜻하는 ‘아쿠아 비타에(Aqua Vitae)’라 불릴 만큼 알코올이 옛사람들에게 주는 믿음은 대단한 것이었다. 그들은 알코올이 약이 될 수 있다고 보고 감기약으로도 자주 썼으며 말라리아를 예방한다고 선전되기까지 했다. 실제 대(大)주가가 아닐 경우 알코올을 마시는 그룹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감기에 걸리는 횟수가 적다는 실험 결과도 보고되었다. 알코올이 감염에 대한 저항력을 증가시킨다는 말이다. 고춧가루를 푼 소주를 마시고 감기를 이긴다는 우리네 민간요법도 일리가 있긴 있나보다.
카페인은 우리가 가장 흔하게 접할 수 있는 약품이다. 지금도 열대 지방에 가면 카페인을 잔뜩 머금은 식물들이 널려 있다. 더군다나 작업과정이 까다롭고 복잡한 알코올에 비해 자연 상태로 노출된 카페인은 추출이 훨씬 쉽다. 커피, 초콜렛, 차, 각종 청량음료와 처방전에 약방에 감초격으로 빠지지 않고 들어갈 수 있는 까닭도 여기 있을 것이다. 카페인이 기분 전환용 약물로는 그 중독성이 미약하고 가장 안전한 효과를 나타낸다는 것도 빠질 수 없는 사실이다. ‘도취’가 아니라 ‘정상화’라는 카페인의 대표적인 쓰임새는 우리가 일상에서 흔히 갈구하는 바이기도 하다.
저자는 ‘너 자신을 알라’, ‘지나쳐 좋을 건 아무 것도 없다’는 고래의 경구를 내세우며 글을 마무리 짓는다. 아무래도 결론이 너무 약하다고? 무슨 폭탄이라도 터트려 줄 것을 기대했다면 실망을 감출 수 없는 독자도 더러는 있을 것이다. 요즘 사람이 먹고 마시는 것과 관련된 책들 치고 이런 거 하면 죽습니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병 걸립니다 라고 으름장 놓지 않는 것들이 드무니까 말이다. 그러나 이 책에서 차분하게 분석하고 있는 알코올과 카페인은 ‘현대인들의 벗’, ‘나만의 여유’이기 전에 일단 그것들이 우리에게 미치는 무시할 수 없는 영향을 직시할 수 있게 도와준다. 분명 ‘물약’이라 불리우며 인간계에 등장한 신비한 알코올과 카페인이, 입성한지 채 몇년이 지나기도 전에 ‘약물’로 탈바꿈했다. 뼈에 구멍이 숭숭 뚫린다는 골다공증의 위협에도 커피 한 잔의 생각이 간절해지는 오후는 어김없이 찾아오고 뇌세포가 한움큼씩 죽어버린다는 말을 뒤로 하고 우리는 오늘 저녁에도 차려질 거나한 술상을 떠올린다. (김은선 kong@libro.co.kr/리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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