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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떤 거짓말 |  | |
| 이세욱 님 (번역가)
초등학교 5학년 때의 일이다. 여름방학이 끝나고 개학을 맞았지만 마음이 무거웠다.
그때 나는 개학 전 2, 3일 동안에 거의 모든 과제를 처리하는 게으른 학동이었다.
산으로 들로 쏘다니고 냇가와 저수지에서 미역감고 고기 잡으며 방학을 보낸 탓에
그 해에도 벼락치기로 과제를 해결했다.
그러나, 날림으로 후닥닥 해치우기가 쉽지 않은 숙제가 하나 있었다. 일기가 바로
그랬다. 달포 전부터의 일을 날짜에 따라 기억해 내기도 어렵거니와 하루 일을
반성하면서 매일 써야 하는 일기를 한번에 몰아서 쓴다는 것도 어쩐지 마음에
거리끼는 일이었다. 결국 나는 일기를 포기하기로 했다. 거짓으로 글을 쓰느니
종아리 몇 대를 맞고 말겠다는 자못 비장한 각오를 하면서.
그런데 “세욱아, 일기는 왜 안 냈니?”라는 선생님의 자상한 물음 앞에서 나의
각오는 너무나 맥없이 풀어져 버렸다. 교대를 갓 졸업한 앳된 모습으로 부임
인사를 할 때부터 나의 이상적인 여성상이 되어 버린 선생님, 2년 내리 담임선생님이
되어 나의 글재주를 칭찬해 주시고 많은 책을 빌려 주며 독서 지도를 해 주셨던 나
의 우상. 그런 분이 “일기를 왜 안 썼니?”가 아니라 “왜 안 냈니?”라고 다정하게
물으시는데, 내 입에서 어찌 “안 썼어요”라는 말이 나올 수 있었으랴. 나는 뒷일을
미처 생각하지 못하고 무심결에 “집에 두고 왔어요”라고 대답했다. 내가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것은 “그럼 늦게까지 기다릴 테니, 학교 끝나고 집에 가서 가져
오렴” 하시는 선생님 말씀이 떨어진 뒤였다.
한숨을 푹푹 내쉬며 오 리 길을 걸어 집으로 돌아가는 동안 나는 어떻게든 써 보자는
쪽으로 결론을 내렸다. 집에서 일기장과 연필을 챙겨 다시 학교로 가는 길은 내 상상
력이 시간에 맞서 가열차게 싸움을 벌인 눈물겨운 전장이었다. 나는 산길을 걷다
쓸거리가 생각나면 무덤가든 나무등걸이든 풀밭이든 아무 데나 앉아 하루치씩 써
나갔다. 날짜와 날씨가 어긋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고, 동네 아이들의 무용담이
내가 겪은 일로 둔갑한 것도 부지기수였다.
해거름이 밀려올 무렵에야 선생님께 갖다 드린 그 일기 덕분에 나는 상을 받았다.
그런데 선생님은 시상식이 있은 지 며칠이 지나도록 나에게 상장을 전해 주시지
않더니 어느 날, 방과후에 나를 따로 불러 상장을 내보이며 말씀하셨다.
“거짓말을 잘 했다고 상을 줄 수는 없겠지? 그래도 일기는 엉터리지만 소설을
쓰면 잘 쓰겠다. 이건 내가 보관하고 있을 테니, 나중에 커서 좋은 소설 쓰거든
찾으러 와.” 나는 아직 그 상장을 찾지 못했다.
(좋은 생각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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