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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할머니는 글씨를 배우기로 마음먹고 ..... |  | |
| 아름다운 노년 [고입검정고시 준비하는 고분임할머니]
오전 7시 한문 특강반.오전 9시30분부터 오후 1시30분까지 고입검정고시반,
오후 2시 영어단어반….
올해 66세의 고분임 할머니(서울 이태원동) 수첩에는 매일매일의 강의 시간표가
빼곡히 적혀 있다. 지난 7일 서울 신설동 수도학원 중검반(초등학교 과정)
졸업식 때 졸업생 대표로 졸업장을 받으며 기쁨의 눈물을 흘렸던 고할머니.
집안사정이 어려워 초등학교 문턱도 못 밟아본 고할머니는 이제 편지도 쓸 수
있게 됐고 간판에 적힌 영어단어들의 뜻도 웬만큼 알 수 있게 됐다.
고할머니가 공부를 시작한 것은 환갑이 되던 해인 지난 96년.공부는 못했지만
손재주가 좋아 10대 소녀 때부터 삯바느질을 해온 할머니는 서울 중랑교 부근서
‘혜선 한복 드레스’가게를 하고 있었다.
한복,폐백음식,부케 등은 직접 만들고 신부화장 드레스 등은 다른 동업자를
두고 했다.
“59세때 한 대학교수가 아들을 결혼시키면서 한복 폐백음식 같은 걸 맞추는데
나더러 직접 주문내용을 받아쓰라는 거야”
차마 글을 못쓴다는 말이 안나와 승강이를 벌이다 겨우 남편을 불러 그 자리를
모면한 할머니는 손님이 돌아간 뒤 목놓아 울었다.
‘환갑이 낼모렌데 겨우 더듬거리며 글을 읽을 뿐 여전히 글씨도 쓸 줄 모르는
반까막눈 신세’가 기막혀서였다.
할머니는 글씨를 배우기로 마음먹고 동네를 몇바퀴 돈 끝에야 늙은 학생을
받아주는 곳을 겨우 찾아내 3개월간 개인지도를 받았다.
바늘 대신 연필을 쥐고 글씨를 배우면서 신바람이 났지만 가을이 되자 밀려드는
일거리 때문에 공부를 계속할 수 없었다.
“환갑을 맞으면서 생각해보니 안되겠더라구. 더 늦췄다간 영영 공부 못할 것 같아
가게를 팔고,50년 가까이 해오던 한복일을 그만두었어요”
수도학원 중학입학 자격 검정고시반에 등록한 고할머니는 3년간 열심히 배웠다.
검정고시 원서를 냈을 때 다시 방해꾼이 생겼다.눈 각막이 터져 눈이 안보이게
돼 1년여에 걸쳐 두번의 큰수술을 받았다.올 3월 겨우 눈이 보이기 시작하자마자
다시 학원을 찾았다.
“그래도 60대 초반에는 기억력이 괜찮았는데 지금은 달라.지난달 말에 시험을
봤는데 떨어진 과목이 많아요”
내년 5월에 떨어진 과목만 다시 시험보는 고할머니는 지금 중학교 과정을 배우는
고입검정반에 다니고 있다.시험문제가 길면 앞에 읽은 것이 생각 안나 다시
읽어야 할 정도로 기억력이 떨어져 있지만 어떻게 해서든 고등학교 졸업장까지는
손에 쥘 생각이다.
“요즘 며느리들은 모두 공부 많이 해서 똑똑하잖아.
배우지 못한 시어머니하고 말이 안통해 같이 못살겠다는 이들 많이 봤어.
나이가 아무리 많더라도 공부하라고 권하고 싶어요”
손자뻘 자식뻘 되는 동급생들 틈에 끼여 열심히 공부하고 있는 고할머니의 꿈은
자신이 살아온 얘기를 글로 써보는 거다.
아버지도 안계셨던 가난한 집 6남매 중 둘째로 태어나 늘 배고팠던 어린시절,
한복짓기를 하면서 배불리 먹을 수는 있었지만 공부에 대한 꿈은 영영 접어야 했던
십대,지긋지긋한 가난이 싫어 시집도 안가고 억척같이 일만했던 20대…
그 힘들고 고난했던 삶의 기억들을 한자한자 쓰면서 되돌아보고 싶단다.
(국민일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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