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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 영원히 사랑해 드릴 겁니다. |  | |
| 저는 올해 스물 아홉입니다.
사실 전 다섯 살 때부터 어른으로 급성장이 되도록 강요 받은 것 같습니다.
친모께서 저희 부자를 남겨두고 훌쩍 떠나버리셨거든요.
주위 가족들은 그 젊은 나이에 어떻게 하나만 끼고 살겠냐며 청승 떨지 말고
새 살림 차리라고 수없이 재혼을 권유했지만 단호히 거절하시던 아버지.
그러나 어느 날 아버지에게 큰 변화가 오고야 말았습니다. 새로 결혼하고 싶은
여자가 생겼기 때문입니다. 수줍게 그 말을 꺼내셨던 아버지께 솔직히 섭섭한
마음이 든 것도 사실이었지만 그래도 반대할 순 없었습니다. 저의 동의가
떨어지자마자 아버지께선 일사천리로 같은 시장에서 생선을 나르시던 분과
살림을 차리셨습니다.
처녀의 몸으로 다 큰 사내애가 딸린 홀아비에게 시집오신 어머니께 그 후
전 이상하게 자꾸만 반감의 싹을 키웠습니다.
어머니라는 호칭대신 제 입에선 늘 아줌마라는 용어가 붙어 다녔습니다.
그 아줌마를 밥이나 차려주고 늦잠 많은 저를 학교에 지각하지 않도록
깨워주는 역할이나 하는 형식적인 사람으로만 여겼습니다.
그런데 그때까지 그렇게 얌전히 앞만 보고 달려오셨던 아버지께서 갑자기
술독에 빠져 휘청휘청 ‘홍도야 우지마라’를 외치시며 귀가하는 날이 잦았고
그런 아버지께 새어머니가 한마디라도 하면 바로 손찌검을 앞세우시는 것
이었습니다. 아버지한테 거의 밤마다 두들겨 맞아 성한 곳이 없으련만
그래도 새벽이면 오뚝이처럼 벌떡 일어나서 아버지께 북어국을 끓여드리고
저의 도시락을 준비해 주시던 새어머니.
어느날 전 그녀가 측은하게 느껴져서 아버지를 잊고 도망가서 잘 살아
보시라는, 나름대로의 따뜻한 마음을 한번 보였습니다.
그러자 어머니의 두 눈엔 눈물이 줄줄 흐르면서 “난 아버지를 사랑하고
너를 이미 내 친자식으로 받아 들인지 오래란다” 라는 도통 이해할 수
없는 답변을 들려주셨습니다.
그런데 아버지께 다른 여자가 생긴 것입니다.
결국 아버지는 새 여자와 살림을 차리기 위해 집문서까지 들고 나가
저희를 길바닥에 나 앉게 했습니다. 그리고 급기야 이혼이라는 최후
통첩까지 보냈지요. 저 역시 더 이상 동거를 하고 싶은 마음이 없어서
빨리 헤어지자고 종용했지만 어머니께선 아버지의 그 줄기찬 요구를
단호히 거절하셨습니다. 그런 연 후에도 어머니께선 그 모진 풍파
앞에서도 전과 조금도 다름없이 계속해서 시장으로 생선을 이고
나가서 목이 터져라 ‘이면수’를 외치셨습니다. 다리와 목이 부서져라
고생해서 번 몇 푼의 돈으로 저희들은 입에 풀칠이나마 할 수 있었지만
늘 고통의 시간을 겪어야 했습니다.
그런 저의 모습이 애처로우셨던지 참다 못한 어머니께서 저를
부르셔서 조용히 이런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니가 원하는 대학 공부 계속해라. 내가 학원비는 다 충당해 줄 테니까.”
전 뛸듯이 기뻐하며 대학합격의 영광을 모두 돌리고 싶다는 그 말을
하기위해 정말 죽을 힘을 다해 최선의 노력을 다했고 결국 잠도 못
주무신 어머니의 노고 덕분에 합격자 명단에 당당히 제 이름 석자를
올릴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기쁨도 잠시, 수백만 원씩이나 되는
등록금은 저희 두 사람에게 너무도 벅찬 상대였습니다.
전 끝내 입학과 동시에 군 입대를 해야 했습니다. 입대 전날 그래도
어떻게 제 소식을 접했는지 아버지께선 어머니를 통해 쇠고기 두 근과
몇 푼의 용돈을 딸려 보냈더군요.
전 그 고기와 돈을 어머니가 보는 앞에서 바로 휴지통에 내버리고
갈기갈기 찢어 버렸고 어머니께선 호통을 멈추지 않으셨습니다.
나중에야 잘못했다고 빌었지만 끝내 아버지의 그 호의만큼은 단호히
거부했습니다. 허나, 그 정은 어쩔 수 없었던지 입대 전날 정말 서럽게
눈물을 철철 흘리면서 먼동이 틀 때까지 뜬 눈으로 꼬박 밤을 지새워야
만했습니다.
그렇게 멈춰 버릴 것만 같았던 세월이 흘러 저의 손에도 전역증이
주어지더군요. 제대와 동시에 전 어머니의 시장 일을 도와 드렸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갑작스런 교통사고로 아버지는 따뜻한 밥 한 그릇 나누지
못한 채 영영 저 세상 사람이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모든 것을 잊기 위해 전 복학 후 공부에만 매달렸습니다. 물론 늘 꼬리표
처럼 따라 다닌 가난 때문에 공부와 막노동을 병행했고, 어머니도 당신의
연세와는 정반대로 더 심한 일에 매달려야 했습니다. 당신께선 드실 거
못 드셔 가면서 저의 등록금을 도와 주셨던 것이었습니다.
제대로 된 가게가 아닌 판자를 펴고 장사를 하셨기 때문에, 자식 같은
시장 관리인들에게 참 많이도 쫓겨나셨습니다.
하루는 제가 저녁 때문에 시장으로 갔더니 새파랗게 젊은 관리인들의
발을 붙잡고 제발 쫓아내지만 말아 달라고 무릎 끊고 두 손 싹싹 빌고
계시더군요. 전 그 모습을 보면서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저 사람은 분명 하늘에서 생모가 변해 내려온 진짜 내 어머니보다 더
귀한 분이라고, 전 죽어서도 잊을 수 없는 이런 어머니의 땀과 눈물
때문에 학사모를 쓸 수 있었습니다.
허나, 전 아직도 어머니의 눈물을 다 닦아드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몸이 많이 편찮으셔서 시장에서 일은 못하고 계시지만
그래도 한푼이라도 버시겠다며 동사무소에서 취로사업을 하고
계십니다. 조금이라도 저의 장가밑천을 마련하시겠다고 말입니다.
전 어머니를 영원히 사랑할 것입니다.
아니, 저 세상으로 가서도 꼭 어머니로 모시고 싶습니다.
어머니 만수무강 하십시오.
김석진/월간 낮은울타리
Kido5603@thrnue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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