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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와 사이다
할아버지와 수박”이라는 노래가 있다.
내기 장기에 이기신 할아버지가 한 손에 수박을 들고 웃으시며
들어오시더라는 가사의 이 노래를 들을 때마다 난 10여 년 전에
돌아가신 할머니 생각이 난다. 수박이 아니라 사이다이긴 하지만
할머니가 살아계실 때는 잘 느끼지 못했던 할머니의 마음이 이렇게
노래 한 곡을 통해 되살아나는 것이다. 할머니는 유독 사이다를
좋아하셨다. 평소에 사이다를 찾진 않으셨지만 목욕을 가면 언제나
사이다 한 병은 마셔야 목욕이 끝나는 것으로 알고 계셨다.
일요일이면 같이 목욕을 다니며 세상에 그렇게 맛있는 것은 없다는
듯이 사이다를 마시던 할머니가 여든아홉 되시던 해 봄, 갑자기
자리에 누우셨다. 어디가 불편하시냐고 물어도 괜찮다며 아픈 곳은
없다고 하셨다. 목욕탕에 같이 가기 위해 내가 학교를 가지 않아도
되는 일요일이 오기만을 기다리시던 할머니가 이젠 일요일이 되어도
그대로 누워만 계셨다. 사이다 사드린다고 목욕탕에 가자고 해도
그냥 사이다만 한 병 사오라고 하시며 움직이려 하지 않으셨다.
목욕탕 나들이를 거른 지 2주 정도 되던 어느 날 아침 할머니는
돌아가셨다. 아픈 곳도 없다고 하시더니 주무시면서 가신 것이다.
그때 할머니의 머리맡에는 그렇게 좋아하시던 사이다 한 병이 놓여
있었다. 요즘도 목욕탕을 가거나 어쩌다 사이다를 마실 때면 할머니
생각이 난다. 아무리 새로운 음료가 많이 나온다고 해도 난 아무래도
사이다에 대한 정은 떼지 못할 것 같다.

- 안성옥, 부산시 금정구/리더스 다이제스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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