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joungul.co.kr 에서
제공하는 좋은글 입니다.
바쁜 일상 속에 잠시 쉬어가는 공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
|
|
|  | 흡혈귀의 비상 |  | |
| 흡혈귀에게 피를 빨리는 쾌감, 그 생생한 기록
˝쓰여졌으나 읽히지 않은 책은 온전하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반(半)존재만을 가졌을 뿐이다. 그것은 하나의 잠재성이며, 존재하기 위해 열심히 도움을 요청하고 있는, 알맹이가 없이 텅 빈 불행한 존재이다. 작가는 그 사실을 알고 있으며, 한 권의 책을 출판할 때 그는 익명의 남녀의 무리 속으로 종이로 만들어진 새떼를, 피에 굶주려 야윈 흡혈조들을 풀어놓는 것이다. 그 새들은 닥치는 대로 독자를 찾아 흩어진다. 한 권의 책이 독자를 덮치면 그것은 곧 독자의 체온과 꿈들로 부푼다.˝ (p.13)
미셸 투르니에는 한 권의 책이 쓰여져 독자를 찾아가고, 독자의 해석과 상상으로 풍부해져 전염처럼 또 다른 독자를 찾아나서는 과정을 ´흡혈귀의 비상´으로 표현한다. 책에 대한 이처럼 매혹적이고 아름다운 비유를 우리는 또 어디에서 찾아볼 수 있을까? 폴 발레리에 의하면 진정한 천재는 자신을 드러내는 원죄를 범하지 않고 고백하지 않은 채 죽기를 선택한다지만 미셸 투르니에는 ´책상 속의 어둠, 혹은 금고의 비밀´에서 벗어나 독자의 체온과 꿈들로 채워진 책만이 온전하게 존재한다고 말한다.
「흡혈귀의 비상」은 ´미셸 투르니에 독서노트´라는 부제에서 알 수 있듯이 여러 작가와 작품에 대한 비평들을 묶은 책이다. 그러나 이 책에는 여러 작품들에 대한 흠잡을 데 없는 비평이기 이전에 위대한 작품이라는 ´흡혈귀´에 경도된, 소설가이자 한 사람의 독자로서 보내는 찬사가 기본적으로 깔려있다. 투르니에는 무엇보다 위대한 작품들에서 ´예언자적 비전´을 발견하고는 감탄한다. 「마담 보바리」에서는 반교권 급진사회주의자가 프랑스 정치 일면에 등장하기 반세기 전에 이미 ´오메´라는 인물 속에서 그것을 예감했던 플로베르의 천재적인 직관을 발견하고, 앙리 드 캉피옹의 「회고록」에서 보여지는 잃어버린 딸에 대한 슬픔을 통해 어린이에 대한 경멸이 그 시대의 풍속이었던 17세기 한복판에서 방황하는 19세기의 인간을 발견한다.
앙리 드 캉피옹의 예처럼 여러 훌륭한 작품에서 보여지는 인간형은 그 시대의 일반 사람들과 달리 괴짜이거나 괴물이거나 기형이다. 글쓴이는 「적과 흑」의 줄리앙 소렐을 기존의 질서에 맞서는 섹스의 투쟁이라는 신화적 인물인 ´돈 주앙´과 천재성, 악당, 괴물 같은 특성을 지닌 시인 바이런과의 맥락에서 파악한다. 그리고 더 나아가 자기 자신을 조금도 변화시키지 않으면서 수많은 모험들과 실패를 겪어내는, 교육할 수 없는 인물, ´돈키호테´와 닮아있음을 지적한다. 독일 성장소설의 전통을 튀틀고 있는 「양철북」의 오스카 역시 정상인이라는 존재들에 대해서 새롭고 날카로운 빛을 던지는 난쟁이다.
˝모든 세기, 모든 세대가 고유한 세계관과 고유한 가치 체계를 가지고 있는 것은 물론 사실이다. 그러나 모든 순간 모든 장소에서, 이따금은 괴물이라는 고통스러운 의식을 가지고, 그리고 박해를 받을지 모르는 위험을 감수한 채 다른 모든 사람들의 흐름에 역행하여 자신만의 구석에서 생각하거나 느끼고 있는 괴짜를 만나게 될 경우를 예상해야 한다.˝ (p.57)
시대를 앞서가기에 괴짜나 괴물로 보일 수 밖에 없는 숙명을 지닌 이들의 불온함을 담아 비상하는 것이 바로 흡혈귀이다.
투르니에는 이 밖에도 괴테의 「친화력」, 발자크의 「고리오 영감」, 토마스 만의 「마의 산」 등의 고전을 읽어내면서 픽션의 진실이 언제나 미래로 향해 열려있는 것임을 확인시킨다. 글쓴이는 작가들의 예언자적 천재성, 미래의 세대들로 하여금 모방할 새로운 모델을 받아들이게 하는 확신의 힘에 대해 찬탄하는 것에서 그치치 않는다. 그들의 작품이 시간이 흘러도 소멸하지 않고 계속 유지되는 것은 독자의 몫인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걸작의 기준은 명확하다. 걸작이란 참여할 수 있는 창조의 기쁨을 독자에게 주는 것이다.
「흡혈귀의 비상」은 미셸 투르니에가 여러 ´흡혈귀´에게 피를 빨리는 과정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그는 풍부한 해석과 상상으로 ´흡혈귀´에게 진하고 신선한 피를 수혈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이미 스스로 강력한 흡혈귀가 된 이 책은 이제 자신의 독자들을 찾아 비상한다. 혹시 받아들여질 수 없는 욕망과 헛된 꿈으로 잠못 이루고 뒤척이는 독자가 있다면 창문을 활짝 열어 그를 맞아들여도 좋다. 그라면 충분히 난생 처음 흡혈귀에 피를 빨렸을 때의 황홀함까지 그대로 되살려 줄 수 있을 것이다. (윤정윤 phyllis@libro.co.kr/리브로)
by http://www.libro.co.kr/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