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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001개의 거짓말 |  | |
| 죽음의 사자도 취하게 만드는, 술과 같은 이야기
어릴 적 내가 가장 좋아했던 것은 잠들기 전 베갯머리에서 듣는 할머니의 이야기였다. 불이 꺼지면 어둠은 나를 삼키려고 달려들었다가 할머니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퍼지자마자 언제 그랬냐는듯 스르르 뒤로 물러났다. 그때서야 나는 감았던 눈을 살짝 뜨고 할머니의 목소리가 어둠 속에서 기분 좋게 풀려나가는 것을 들었다. 간혹 참을 수 없는 조바심에 ´그래서?´ ´왜?´라는 질문을 던져대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숨을 죽인 채 이야기를 따라갔다. 그러나 언제나 예외 없이 이르게 되는 ´끝´이라는 말을 들으면 나는 눈물이 핑돌았다. 그만큼 나는 절대로 끝나지 않는 끝이 없는 이야기를 원했던 것이다.
「1001개의 거짓말」은 할머니에게서 옛날 이야기를 듣던 추억의 그 순간을 재현해 낸다. 샤딕이라는 청년은 모르가나에 발목이 묶인 인도 서커스단의 무대 위에서 매일 저녁 자신의 가족, 친척, 이웃들의 이야기를 하나씩 들려준다. 그의 이야기는 끝없이 이어져서 하나의 이야기를 하는 도중에도 연상되는 또 다른 흥미로운 이야기를 언급할 정도이다. 그때마다 그가 하는 말은 ´그 이야기는 너무 기니까 나중에 해드리죠´이다. 그것은 곤란한 질문을 은근슬쩍 넘기는 방법이기도 하지만, 얼마든지 이야기를 계속할 수 있음을 과시하면서 관객이나 독자를 즐겁고 설레게 하는 ´미루기´에 다름 아니다. 샤딕의 이야기를 듣는 수많은 관객처럼 독자 역시 ´끝없는 이야기´에 대한 기대에 사로잡힌다.
하지만 그가 하는 이야기들과 마찬가지로 그런 기대를 심어주는 것은 ´거짓´일지도 모른다. 물론 알량한 거짓말은 아니다. 샤딕에 의하면 알량한 거짓말이란 술 마시는 장면이 금지된 사우디아라비아의 영화에서 권총을 찬 서부영화의 주인공들이 ‘이봐, 주인장, 차 한잔 갖고 와!’하는 것이다. 사딕의 거짓말은 오히려 이런 알량한 거짓말에 저항하는 거짓말이다. 다큐멘터리를 가장하는 상업영화에, 현지의 진짜 관광지보다 그것을 본따 만든 편리한 가짜 관광지에, 끊임없이 교체되어 온 듯 보이지만 실상은 똑같은 ´하덱´이라는 이름의 독재정치에, 그는 ´거짓말´이라는 무기를 들고 맞서 싸운다. 그의 거짓말은 불운하고 약하고 가난한 이들을 현혹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들을 위로하기 위한 것이다. 그는 우리들이 살아가는 동안 진실만으로는 단 하루도 버티기 힘들다는 점을 말하고 있다.
인간은 누구나 죽는다. 그건 진실이다. 하지만 그게 죽음에 대한 공포를 이기는 데 도움이 될까? 절대 아니다. 어쩌면 이야기라는 거짓말은 그 무엇보다도 죽음에 저항하기 위해서 시작된 것임에 틀림없다.
˝…거짓말은 바다와 산이 있는 커다란 나라 같은 것이어서 인생처럼 잔인하고, 아이들처럼 아름다우며, 여우처럼 꾀가 많고, 달면서도 시고, 싱싱하면서도 말라비틀어지고, 썩었는가 하면 싱싱하고, 오래되었나 하면 갓 태어난 것 같지요. 하지만 이 세상에 거짓말이 주는 웃음처럼 통쾌한 웃음은 없습니다.
저는 행복하게 살아가던 삼 형제의 막내입니다. 어느날 죽음의 사자가 저희를 찾아왔습니다. 목이 마르니 물을 한잔 달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저희의 영혼을 가져가기 전에 술이나 한잔하자고 했지요. (중략) 그런데 그날 저녁 죽음의 사자는 술을 너무 많이 마시는 바람에 주문을 잘못 외우고 말았습니다. 저희를 죽이는 대신 각각 둘이 되게 한 것입니다….˝ (pp.444∼445)
이야기라는 거짓말은 죽음의 사자조차 홀리는 술이다. 자신의 이야기에 완전히 빠져서 실제로 얼어죽을 뻔한 알리의 일화는 그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알리의 어머니는 위험천만한 그의 이야기에 개입하여 겨우겨우 그를 평화로운 잠으로 이끌어냈다. 이야기는 사딕이 오줌싸개 아이의 이야기를 하는 중에 ‘쉬∼쉬∼하는 바람 소리’를 반복해 관객들을 화장실로 이끄는 것과 같은 최면이고 주술이다.
「1001개의 거짓말」은 최면과 주술을 통해 죽음이 주는 공포에서 우리를 해방시키고 끝없는 재생을 통해 영생까지도 가능케하는 이야기의 진면목을 여지없이 보여준다. ‘그 이야기는 다음에 해드리죠’라는 새로운 시작의 약속에 여느 이야기에서와 다르게, 항상 채워지지 않던 갈망이 평온을 얻는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윤정윤 phyllis@libro.co.kr/리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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