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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친구야, 이제 다리를 건너거라 |  | |
| 인터뷰를 통한 문학과 존재의 자기증명
인터뷰란 뭔가. 사전적 의미로 면담, 회견을 뜻하는 인터뷰는 공적인 담화의 형식을 띠고 있으면서 실은 인터뷰어와 인터뷰이 사이의 관계로 인해 사적인 대화의 가능성을 함께 열어놓은 복합적 상호 소통의 한 수단이다.
정치분야에서 인터뷰가 사용될 때, 그 내용은 주로 공적 메시지로 통용될 목적으로 발화되지만 엔터테인먼트나 예술 분야에서 인터뷰가 사용될 때는 그와 반대로 모양새만 공공성을 띨뿐 실제로는 인터뷰이의 사적인 내면세계를 펼쳐보이는 것에 주로 이용된다. 그것은 아마도 정치가 내면을 감추고 외면을 확장하는데 그 성질을 두고 있는 것에 반해 예술 등은 내면을 확장해 외연으로 변화시키는데 주안점을 두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문학평론가 하응백이 7년동안의 인터뷰를 모아 대담집을 냈다. 그 책에는 시인 황동규, 소설가 김주영의 경우와 같이 철저하게 공식적 대담을 표방하는 실례가 있기도 하고 시인 이산하의 경우처럼 사적인 인연에 기대어 대담자의 깊은 상처를 극적으로 드러내는 일도 있다. 일반적으로 인터뷰가 화자의 속성을 드러내는 대표적인 접근수단임에도 불구하고 그간 제대로 된 인터뷰를 만날 수 없었던 저간의 사정을 생각해 보면 이 책의 수준은 놀랄만한 정도다. 인터뷰이에 대한 철저한 연구, 직설화법과 간접화법을 넘나드는 질문의 경지, 이야기를 맛깔스럽게 만드는 대화의 품격 등 이 책의 미덕은 적지 않다.
저자는 책 중에서 말한다. 신경숙의 소설을 보면 잠자는 아이들의 모습을 확인하고 싶어진다고. 조정권의 절창 ´산정묘지´ 가 의사의 ´간암 오진´으로 쓰여지게 된 것은 맞지만 그것은 계기일뿐 한길로 매진해온 시인의 생애가 시를 마침내 그 경지까지 올려놓은 것이라고. 시인 조경란은 고등학교 졸업 후 5년간을 칩거하며 내적 공황에 시다렸지만 그 내밀한 시기가 결국 그니만의 작품세계를 구축하게 만드는 훈련의 시간이었다고. 그렇듯, 시인 소설가 17명과의 인터뷰는 하나같이 그들 문학의 독자적 비밀을 은밀하게 벗겨보인다. 특히 이산하씨의 이야기등 깜짝 놀랄만한 고백들도 많은데, 문학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이 책은 아주 훌륭한 선물이 될것같다.
저자는 책 서문에 ´존재증명´이라는 제목으로 루카치의 ´영혼을 증명하기 위해 길을 떠난다´는 유명한 명제를 유쾌하게 변주해내고 있다. 사실 이 서문을 보는 것만으로 이 책의 가치는 충분히 짐작될 수 있다. 하응백은 이 책을 두고 ´정분(情分)의 기록´이라고 불렀는데, 인터뷰 사이의 따뜻한 공기와 넉넉한 이해, 적극적 공감의 측면에서 그 수사는 잘 어울리는 듯 하다.
소설가 정찬은 동인문학상 수상작인 ´슬픔의 노래´에서 비극의 강(´광주를 상징하는)을 ´배로 건널 것인가 아니면 강이 될 것인가´라고 물으며 시인 이산하는 그의 작품 ´실상사 가는 길1´에서 그 스스로 징검다리가 되지만 자신은 건너갈 수 없다고 말한다. 어떻게 살 것인가 혹은 어떤 문학을 할것인가 하는 문학적 존재론의 열쇠가 그들 작품에 고스란히 보관되어 있는 것이다. 거기에 평론가 하응백은 90년대식의 ´유쾌한 소화´를 저버리고 80년대 이전의 고단한 ´길항´의 방식을 택한 이들에게 이 책의 제목을 말하고 있다. 이제 그만, 다리를 건너가라고. 그리고 거기에는 말로 다할 수 없는 애정이 담뿍 묻어있다.
우리 문학은 어느새 ´가벼움´과 ´무거움´을 양단간에 확실히 구분하는 칼을 가졌다. 그 칼로 좋은 문학, 나쁜 문학 운운하며 거칠게 상처내기는 쉬울지 모르나 근본적으로 문학의 역사와 현실에 새 살을 보태는 일에는 크게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평론도 아니고 그렇다고 딱히 산문이라고만 보기 어려운 인터뷰의 형식을 취하고 있으나 그 어떤 장르보다도 짧고 예리하게 진실에 접근하며, 깊이와 가벼움을 함께 담보해내고 있는 이 책만해도 그런 기준으로는 제대로 성과를 담아내기 어려울 것같다.
좋은 책이다. 문학과 세상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옳게 사랑받기를 바란다.
by http://www.libro.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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