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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박씨이야기 |  | |
| 노박 씨, 노박 씨, 사랑은 때가 되면 찾아오나요?
˝나…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어. 그 사람은 아마 날 알지 못하겠지만, 난 가슴을 진정할 수가 없을 정도야. 그래, 단 한번 보았을 뿐이야.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 사람의 모든 것이 생생해지니, 이를 어쩜 좋아? 이목구비, 섬세한 손동작까지도 난 분명히 기억할 수 있어. 한편으로는 너무 두렵다. 행여 그 사람을 다시는 만나지 못한다면, 아니면 그에게 이미 애인이 있다면... 그 때 나 어떻게 해야하지? 응?˝
누군가 이렇게 안타까운 가슴을 토로하는 이가 있다면, 이 책을 꼭 권해주고만 싶다. 심심하고 건조한 삶을 살다가 사랑을 만나고, 눈먼 짝사랑에 가슴 아파하다가 결국 진정한 사랑을 찾아가는 노박 씨의 사랑 역정(?)을 다룬 이 책은 사랑의 시작과 그로 인한 감정의 미세한 떨림을 더할 수 없이 귀엽고 깜찍하게 그렸다.
사람들은, 아니 다른 쥐들은 노박 씨를 그저 평범하고 게으른 쥐라고 생각하겠지만, 노박 씨는 매일 아침 콘트라베이스를 켜고 단골 카페에 가서 커피를 마시며 신문을 읽고 글을 쓰기도 하는 멋쟁이 쥐. 단골카페가 문을 닫는 일요일이면 기차역까지 걸어가서 기차가 도시를 떠나는 것과 젖은 손수건들이 펄럭이는 풍경을 말없이 바라보는 여유도 알고 있다.(독자들은 부디 본문 13쪽에 있는 그림을 유심히 보시기를. 저자가 직접 그렸다는 그 그림은 기차역에 우두커니 앉아 떠나는 기차를 바라보는 노박 씨의 뒷모습은 서글픔 그 자체다!)
그러던 그에게 세 번의 사랑이 찾아온다. 첫 번째는 단숨에 온 마음을 빼앗긴 사랑. 노박 씨는 치즈박람회에서 단 한번 마주친 예쁜이 쥐를 두고 갖은 상상을 하며 그녀를 다시 만나기 위해 온 도시를 헤매 다니지만, 일주일, 열흘, 한달, 그리고 석달이 지나도록 그녀의 모습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가 없다. 여기서 시간의 흐름과 더불어 변화하는 노박 씨의 심리 묘사는 간결하지만 여느 심리소설보다 절박하고 절묘해 보인다.
석달이 지났다. 노박 씨는 이제 숫제 화가 나기 시작했다.
˝그녀는 날 좋아하지 않는 거야.˝
그는 낙심했다.
˝그녀가 날 피하고 있는 건지도 몰라.˝
화가 났다.
˝그녀는 날 우습게 생각하는 거야.˝
슬슬 그녀가 야속해졌다. 노박 씨의 분노는 점점 슬픔으로 변해갔다.
˝바보같이 그녀를 탓하다니...˝ (p.25)
노박 씨에게 찾아온 두 번째 사랑은 이보다 더 야속하다. 다재다능한 재능을 가진 여인 쥐 ´릴라´는 역시 재주 많은 노박 씨와 그림 그리기, 노래부르기 등 모든 작업을 함께 하며 최고의 콤비플레이를 펼치지만, 이쯤이면 됐다 싶은 노박 씨가 큰맘 먹고 사랑을 고백했을 때는 번번이 의외의 반응을 보여 노박 씨를 좌절시킨다.
˝나는 나고 당신은 당신이에요. 함께 있어 즐거우면 그뿐이에요. 그렇지 않다면…… 그걸로 끝인 거구요.˝ (p.48)
화려함과 명성만을 좇는 그녀에게 있어 노박 씨는 그저 유명세를 타기 위한 도구에 지나지 않았던 것. 절망한 노박 씨의 몸집은 그 후로 한없이 작아지고 급기야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 작고 약한 새앙쥐가 되어 집에서 은둔하며 왜 자신은 그토록 불행한가만을 되뇌이고 또 되뇌인다.
˝왜 난 이렇게 불행할까? 릴라가 더 이상 나를 원하지 않기 때문이지. 그렇다면 왜 그녀는 나를 원하지 않는 걸까? 내가 너무 작고 초라해서일 거야. 그럼 왜 나는 이렇게 작아진 거지? 그거야 내가 불행하니까. 결국 내가 불행한 이유는, 내가 불행하기 때문이군.˝ (p.66)
세 번째이자 마지막 사랑은 노박 씨가 ˝나는 나야! 그리고 네 말대로 넌 바로 너지! 넌 소중한 내 마음을 받을 자격이 없어!˝라고 다짐했을 때 찾아왔다. ´모든 건 마음 속에 있는 거야. 있는 그대로 사는 수밖에..´라고 되뇌이며 눈 쌓인 거리를 걷는 노박 씨에게 눈송이처럼 어여쁜 ´그녀´는 천진난만하게 웃으며 말을 건냈다. ˝꿀 탄 우유 한잔 드실래요?˝ 라고.
차 한잔 훌쩍 마시면서 가볍게 읽기 딱 좋은 이 책은 그러나, 그 내용만큼은 사뭇 진지하다. 무엇보다 이 책을 거듭 뒤적이게 만드는 요소는 바로 굴곡 많은 사랑의 과정을 겪으며 때로 절망하고 때로 혼자만의 몽상을 키워나가는 노박 씨의 심리묘사. 거창한 수식어나 미사여구로 치장하지 않은 단 몇 줄의 담백한 문장들은 ´아하, 그렇지´ 하며 번번이 무릎을 치게 만든다. 천박하지 않은 유머, 과장하지 않는 감정의 기복, 오만하지 않은 교훈, 여유롭게 전달되는 희망의 메시지…. 이 모든 것이 담겨 있는 이 작은 책을 사랑으로 고민하는 그 사람의 두 손에 전해줄 수만 있다면 참 좋으련만. (이현희 imago@libro.co.kr/ 리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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