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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원의 심부름꾼 소년 |  | |
| 유령을 만나야 하는 이유
이미「목화밭 엽기전」을 통해 지독히 낯선 세계를, 불쑥, 보여주었던 작가 백민석! 그의 작품집「장원의 심부름꾼 소년」에는 다리 없는 유령들이 서성거리고, 말 없는 시체들이 등 뒤에 서 있고, 심지어 인육을 먹는 인물이 등장하기까지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백민석을 21세기의 새로운 문화적 코드인 ‘엽기’에 부응하는 작가라고 성급히 판단하지 마라. 물론 그의 세계로 빠져들다 보면, 뭔가 무겁고 축축하고 우울한 것들이 발목을 붙잡고 놔주지 않는 악몽을 꾸게 되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가 아니다. ‘비틀기’와 ‘이미지화’의 이면에는 좀더 섬뜩한 진실이 숨어 있다. 그것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면, 단지 희귀성의 매력을 거론하며 함부로 그의 팬이라고 단정하지 마라.
이번 작품집에서 마치 하나의 키워드처럼 등장하여 중요한 역할을 하는 ‘유령’의 존재는, 단순히 공포와 허구성을 드러내는 상징이 아니다. 유령이란 어떤 존재인가. 이미 폐기되었어야 하는 존재이며, 때문에 현실적 공간에 있으면 안 되는 존재이다. 그런데도 만약 그 존재가 두 눈을 부릅뜨고 우리 눈앞에 고개를 들이민다면, 어느 누가 그 존재를 외면하고 싶지 않을까. 하지만 안타깝게도 유령은 우리가 외면한다고 외면되어지는 존재가 아니다. 등을 돌리면 다시금 눈앞에, 죽도록 달려 골목을 돌아가면 이미 그곳에 서 있는 것이 바로 ‘유령’인 것이다.
백민석의 유령도 다르지 않다. 이 책에서 ‘유령’은 외면하거나 망각하고 싶은 삶의 흔적들을 상징한다. 즉 영영 나타날 것 같지 않게 깊숙이 묻혀 있다 어느 순간 불쑥 정체를 드러내는 기억들이다. 이는 비물질이라는 점에서 허구이고 공포를 안겨준다는 점에서 실재이기 때문에 어느 쪽으로도 외면할 방법이 없다. 바로 이때 백민석이 선택한 방식은 그냥 대면하는 것, 피할 수 없으면 극복해야 한다는 것이다. 두 눈을 똑바로 뜬 채 “모든 가식을 뚫고 자신과 현실을 직시하는 추잡한 날엉덩이”(p.147)를 온전히 응시한다는 것이다. 그것에는 작가 자신의 절망과 수치심, 열등감, 두려움, 비겁함까지도 포함되어 있다. 그의 상상력이 단지 빛나는 요령에서 나온 것이 아님을 말할 수 있는 것은 그 때문이다.
‘날엉덩이를 직시’한다고 해놓고선 왜 현실을 한바퀴 비트냐고? 이를 테면, 왜 있지도 않은 ‘장원’을 들먹이고 ‘유령’을 불러내서 리얼리티를 죽이고 판타지로 만들었냐는 말일 것이다. 작가의 대답은 간단하다. 바로, 이미지의 이미지를 통해 실재를 파헤친다는 것! 어차피 인간의 운명이 뫼비우스 띠와 같다면, 가상의 가상을 통해 본질에 근접할 수 없다고 어느 누가 단정할 수 있을까. 표제작인 <장원의 심부름꾼 소년>이나 <구름들의 정류장> <인형의 조건> 등은 비틀기와 이미지화가 오히려 현실이 주는 공포를 더욱 체감적으로 전달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준다.
그렇다면 백민석의 유령은 왜 존재하는가? 이는 그가 바라보는 세계와 무관하지 않다. 즉 기득권 세력의 힘이 갈수록 거대해지고 무수한 사람들이 그 권력에 길들여질 때, 바로 그때, 백민석의 유령들은 꿈틀거리기 시작한다. 그럴 때의 삶은 허구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지배자의 논리로 교묘하게 마을 사람들의 발을 잘라 먹는 wt(‘이렇게 정원 딸린 저택’)나, 다수의 인생을 통해 그 전형을 꾸준히 확대 재생산함으로써 자기 입지를 강화해 나가는 사회(‘이 친구를 보라’)나, 모두 같은 연장선상에 있다. 결국 작가는 사회가 힘을 잃지 않기 위해 사람들을 갉아먹고 버린 폐기물(유령)을 뒤적이고 있는 셈이다. 물론 자신의 폐기물까지도 샅샅이 말이다. 왜 하필 폐기물이냐고? 이유를 묻지 마라. 그것이 얼마나 작가를 위협하고 있는지 모른다면 이 책을 읽을 자격이 없다.
(황여정/리브로)
by http://www.libro.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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