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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자들은 모른다 |  | |
| 분노와 비애, 용기와 저주, 웃음과 울음, 절망과 희망, 삶과 죽음. 김승희의 어법은 이들 사이에 놓인 틈새, 공간, 여운을 쓱쓱 가로지르거나 솟구쳐 오르는 탈주의 어법이다. 김승희의 시를 유심히 보아온 이들이라면, 시인으로서 혹은 국문학을 연구하는 학자로서 그의 어법 속에 도사리고 있는 탈주의 충동을 짐작할 수 있었을 것. 그리고 이렇게 되물었을 법도 하다. ´도대체, 무엇으로부터, 왜?´
김승희의 새 책 「남자들은 모른다」(마음산책)는 그에게 품어왔던 모종의 궁금증에 관해, 어느 정도의 실마리를 주는 친절한 책이다. 국내 외 여성시인들의 시 가운데, 여성주의적 입장 그러니까 흔히들 말하는 ´페미니스트´적 색채가 짙은 시들만을 골라 엮은 이 책은 탈주하거나 솟구쳐 오르고자 하는 그의 욕망의 근원에 이 땅에서 여성으로서 겪는 온갖 부당함에 대한 저항이 도사리고 있음을 거듭 말해준다.
이 책이 담고 있는 시와 시평의 어법은 순하거나 소박한 서정시의 그것과는 거리가 멀다. 책장을 넘길수록 거듭 읽히는 건 고아의식, 죽음의식, 광기, 비극성, 증오, 연민, 자기비하, 자기살해이다.
아무 부모도 나를 키워주지 않았다
쥐구멍에서 잠들고 벼룩의 간을 내먹고
아무 데서나 하염없이 죽어가면서
일찌기 나는 아무 것도 아니었다
(-p.17 최승자, ´일찌기 나는´ 중에서)
어떤 이는 이 책에서 자신의 몸을 제 스스로 불사르거나, 목을 매달거나, 수면제를 먹고 쥐도 새도 모르는 시간에 죽어버렸다는 여성 시인들의 기구한 삶에 대해서만 왈가왈부할지도 모르겠다. 또 어떤 이는 ´아빠, 아빠, 이 개자식, 이젠 끝났어!´(실비아 플라스), ´아아 컴-퓨-터와 씹할 수 있다면!´(최영미)이라는 등의 말초적 감각을 자극하는 시어들에만 주목하고 한바탕 웃어넘기거나, 혹은 ´엽기적´이라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김승희는 스스로 고르고 해설을 덧붙인 이들 시에 대해서 ´우리사회의 문화질서가 여성들에게 부여한 젠더(gender)를 해부하고 뒤집는 푸른 힘의 문학´이며, ´고개를 갸우뚱하며 생각하는 문학이고 반어와 역설의 언어이며 정전해체의 시각과 정전 뒤집기의 언어를 가진 유쾌한 문학´임을 거듭 강조한다.
한번쯤 생각해볼 일이다. 왜 이렇게 여성시에는 광기와 타나토스(죽음)이 많은 것인지, 남자들은 무엇을 모른다는 것인지, 이런 섬뜩함이나 엽기적인 시어가 튀어나오는 이유는 무언지, 왜 김승희는 여성문학을 일러 소수문학이라고 단정하는지. 그리고 이런 의문이 어느 정도 답을 얻었을 때 독자들은 이런 감탄사 한마디쯤 흘릴지도 모르겠다. 과연, 언제 한번 이토록 시원한 책이 있었던가!
(이현희 imago@libro.co.kr/ 리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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