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joungul.co.kr 에서
제공하는 좋은글 입니다.
바쁜 일상 속에 잠시 쉬어가는 공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
|
|
|  | 환상동화집 |  | |
| 정신의 시련이 낳은 환상적 두근거림
1925년, ´짧은 이력서´라는 글을 통해 독일의 대문호 헤르만 헤세(1877∼1962)는 다음과 같은 고백을 하고 있다.
˝고백하거니와, 내 자신의 삶이 바로 동화처럼 보일 때가 많다. 나는 바깥 세계와 나의 내면과 화합하고 어울리는 모습을 자주 보고 느낀다. 이러한 연관성을 나는 마술적이라고 부를 수밖에 없다.˝
헤르만 헤세의 환상 동화는 이렇게 태어났다. 헤세의 동화를 구태여 ´환상동화´라고 부르는 것은 아무래도 위의 짧은 고백에서도 드러나듯 그의 마술적 사고에서 기인하는 바가 크다. 독일 문학사전에서 동화는 ´환상적이고 놀라운 사건과 상황을 시간과 공간에 매이지 않고 자유로이 지어낸, 민중들이 즐기는 짧지만 산문적 이야기´로 정의된다. 그러니까 독일 문학에서는 동화라는 말 자체에 이미 환상과 마술적 요소가 포함되는 셈이다. 따라서 마술적 요소가 등장하여 소원을 이루어주거나(소원성취의 모티프), 다른 인간이나 동식물로 변신(변신 모티프)시키는 헤세의 동화는 마술과 환상적 요소를 기본으로 하는 독일 동화에 가장 충실하다고 볼 수 있다.
「헤르만 헤세 환상동화집」은 헤세가 동화의 형식을 빌어 쓴 독특한 단편 및 중편 스물 여섯 편을 모은 책으로, 1975년 헤세 연구자인 폴커 미헬스가 편집하여 「동화 M rchen」라는 제목으로 출간된 원서를 번역한 것이다. 「유리알 유희」「데미안」「싯다르타」 등으로 전 세계 청년들의 우상으로 군림해온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헤르만 헤세는 왜 동화를 쓰게 된 것일까? 헤세문학 연구가들은 헤세가 동화를 쓰게 된 데 대해 두 가지의 결정적인 계기를 들고 있다. 그 하나가 1차 세계대전. 구질서가 붕괴된 혼란스러운 소용돌이 속에서 이상적인 사회의 실현을 바라는 표현주의자들의 희망에 헤세도 공감하였을 거라는 게 그들의 첫 번째 추측이다. 이 책에 수록된 작품들 가운데 ´팔둠´ ´다른 별에서 온 소식´ ´새´ 등은 헤세의 이러한 바람을 잘 드러내준다.
또 하나는 헤세의 정신분석 치료 체험이다. 1차 세계대전을 전후한 1914년, 헤세는 반전 사상이 담긴 글 ´오 친구들이여, 그런 곡조의 노래를 부르지 맙시다´를 스위스 취리히 신문에 발표하여 독일의 극우파들로부터 매국노, 변절자로 매도당한다. 가정형편 역시 여의치 않아, 막내아들의 중병과 아버지의 사망이 잇따르고, 아내는 정신병원에 입원하게 된다. 설상가상 책의 출판까지 제한 당하자 경제적으로 몹시 어려워진 헤세는 세 아들을 각각 친구와 기숙학교에 맡길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인다. 결국 이러한 상황을 감당할 수 없게 된 헤세는 정신적 충격을 이기지 못해 심한 노이로제 증상을 일으키고 심리학자 융의 제자인 랑 박사로부터 정신분석 치료를 받게 되는 것이다. 헤세의 동화 가운데 ´아이리스´와 ´험한 길´, ´아우구스투스´ 등은 정신적 안내자의 도움으로 진정한 자아를 찾아가는 과정을 그린 것으로 이 같은 그의 정신적 치유의 과정을 반영하고 있다. 특히 절제를 모르고 도덕적 타락에 빠진 채 방랑하는 젊은이 아우구스투스가 비밀스러운 노인 빈스방거 씨의 정신적 구원을 통해 거듭나게 되는 과정을 그린 ´아우구스투스´는 비슷한 시기에 나온 헤세의 장편소설 「데미안」과 매우 흡사하게 읽혀 아마도 「데미안」의 모태가 되었음을 추측하게 한다.
작품들은 모두 환상과 마술을 기반으로 하지만 각각의 메시지는 다양하다. ´시인´ ´등나무 의자의 동화´ ´화가´ 등은 순수한 예술과 세속적인 성공 사이에서 갈등하는 예술가의 고뇌를 다룬다. ´다른 별에서 온 이상한 소식´과 ´유럽인´에서는 악몽처럼 펼쳐지는 미래의 어느 공간을 배경으로, 야만적인 문명의 아이러니와 전쟁에 대한 헤세의 통렬한 비판의식을 담았다. 이렇게 볼 때 이 책에 실린 스물 여섯 편의 동화는 비록 환상이라는 껍데기를 뒤집어쓰고는 있지만 헤세의 현실의식을 매우 핍진하고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전쟁과 사나운 현실로 인한 정신적 상흔은 오히려 가장 순수하면서도 우회적인 현실 비판의 모태가 된 것이다. (이현희 imago@libro.co.kr/리브로)
by리브로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