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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히치하이킹 게임 |  | |
| 문학과 에로티시즘의 속궁합
에로티시즘 하면 초등학교 5학년 때가 생각난다. 할부로 구입한 계몽사판 한국문학대전집을 어머니가 대금을 치르는 방식대로 야금야금 읽다가 초장에 만나 놀랐던 나도향의 〈뽕〉을 읽던 오후가 떠오른다. 이미숙과 이대근이 주연한 영화 ´뽕´을 볼 수 있는 나이에 다시 잡은 나도향의 소설은 문학과 에로티시즘의 속궁합이 얼마나 좋은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나는 이제 소개할 소설집에 한국작가의 단편을 넣는다면 강력히 추천해야 할 작품이 〈뽕〉이라고 본다.
한국외대 외국문학연구소에서 선정하고 번역한 동서양 12개국 유명작가의 단편을 묶은 소설집 「히치하이킹 게임」은 문학과 에로티시즘이라는 하나의 주제를 상정하고 있다.
표제작인 밀란 쿤데라의 〈히치하이킹 게임〉은 국내에서 「우스꽝스러운 사랑」이라는 그의 단편집에 소개된 적이 있다. 20대의 연인이 휴가를 맞아 여행을 떠나면서 여성은 히치하이커로, 남성은 낯선 운전자로 분하는 일종의 역할게임을 하면서 급기야 창녀와 손님이라는 구도로 변질되는 양상을 띠기 시작한다. 여자는 섹스를 영혼과 육체의 결합으로만 인정하는 자신이 창녀의 역할을 맡아 온전히 쾌락의 경험으로 구성된 성행위에 황홀해하는 것에 정체성의 위기를 느낀다. 그것을 받아들이는 청년은 이제 애정의 권력구도가 틀어져버린 예전의 관계로 돌아가는 것을 두려워한다.
단 하루만에 연인이었던 둘의 관계는 부서지고 게임이 현실을 대치하는 과정을 통해 인간의 성은 본능이자 나와 타자의 관계, 곧 인간관계의 문제에 보다 직접적인 연관을 맺고 있음을 역설하는 수작이다.
중국작가 진염의 〈침묵하는 좌측 유방〉은 사회 속에서 확고한 위치를 가지고 있지만 여성으로서는 별다른 지위를 가지고 있지 않는 주인공이 젊은 미용사 아린을 유혹하는 이야기를 1인칭 시점으로 그리고 있다. 우측 유방은 만인에게 공개하지만 좌측 유방은 남편에게만 허락된다는 소수 민족의 전설이 여성의 신체가 갖는 공적이면서 사적인 의미와 함께 주인공의 고립된 개체로서의 의사소통과 자기확보로서의 섹스를 대변하고 있다.
독일 작가 자라 키르쉬의 〈마른 하늘에 날벼락〉은 독일에서 펴낸 단편집 「성전환, 관계의 변화에 대한 세 이야기」에 실린 작품이다. 여성 자연과학자인 카타리나는 사흘 동안의 잠에서 깨어나 보니 남성으로 변해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성별이라는 사회적 범주 내에서 남자를 위해 요리를 하고 옷을 세탁하고 언제 올지 모르는 그를 기다렸던 그녀는 이제 집밖으로 나가 애인인 화물차 운전사 알베르트의 조수로서 새 삶을 시작한다.
남성과 여성의 성차는 분명 근본적인 것이지만 불안정한 것이다. 사회 생활 전체에 걸쳐 제도화되고 강화되어 온 성적 정체성은 선천적이거나 자동적으로 형성된 고정불변의 것이 아니며 변화가능한 것이라는 점을 이제는 누구도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밖에도 외도와 불륜, 매매춘이라는 세 가지 코드를 가지고 성이 어떤 도덕적 견지에서 판단될 수 있는가를 묻는 러시아 한인 3세인 아나톨리 김의 〈서울의 비너스〉, 사랑과 죽음, 허상을 전남편과 거울을 통해 은유적으로 그린 카와바타 야스나리의 〈물의 달〉, 일상에서의 성의 환상을 현대적인 소설법으로 보여주는 세르칸 으슨(터키)의 〈사무실〉에서 우리는 지금까지 쉽게 접할 수 없었던 나라들의 성문화와 문학적 상상력을 맛볼 수 있다.
이 글의 서두에서 꺼낸 〈뽕〉을 추천하고 싶다는 얘기가 아주 틀린 말로 들리지는 않을 것이다. <뽕> 안에 들어 있던 가정과 사회의 질서와 제도, 남녀의 관계, 매매춘, 여성의 성은 《히치하이킹 게임》에 담긴 12편의 단편 모두에 점점이 박혀있다.
´문학과 에로티시즘´. 말만으로도 완벽에 가까운 결합같이 보인다. 실제 당신의 책꽂이에서 문학작품을 뽑아 들춰 보라. 무엇이 가장 빈번하게 조우하고 있는가. 바로 쾌락의, 위반의, 일상의 성(性)이 갖가지 소재와 주제로 변환되어 직간접적으로 그려져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어김없이 쉽게 정의할 수 없는 복잡한 인간 본성이자 인간의 소통 구조의 하나로서의 성(性)과 맞붙어있다. 육체적이면서 정신적이고 감정적인 요소들이 동시에 존재하며, 자연적이면서 문화적이고 정치역사적인 요소가 공존하는 복잡다단한 것. 때문에 성(性), 에로티시즘은 언제나 우리의 육신을 뒤흔들고 혼을 빼놓는다. (김은선 kong@libro.co.kr /리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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