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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반딧불의 묘 |  | |
| 뒤도 돌아보지 말고 도망쳐라, 그리고 외면하라
“나를 규정한다면 ‘폐허 뒷골목 도망파’라고 하는 것이 좋을지도 모른다. 공습으로 불탄 자리와 혼란 속에서 부모를 잃고 나 혼자만 살아 남았다. 불타고 있는 우리 집을 향해 단 한 마디, 오로지 부모를 애타게 불렀을 뿐 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쏜살같이 록고산으로 도망쳤다. 이 꺼림칙한 기분은 아직도 남아 있다. 결국 소년원에 들어가고 굶주림과 추위로 차례차례 죽어가는 소년들 속에서 나만이 마치 동화 속 주인공 같은 행운을 만나 그곳에서 벗어났다. 여기서도 나만이 도망쳤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쳤다. 자기에 대한 응석인지도 모르지만 역시 꺼림칙하다. 나는 언제나 도망치고 있다.”
노사카 아키유키는 1968년 나오키상을 수상한 후 이렇게 밝혔다. 「반딧불의 묘」에는 나오키상 수상 작품인 ´반딧불의 묘´를 비롯해 총 5편의 단편 소설이 실려있다. 소년원에서 빠져나와 좋은 양부모를 만나지만 양어머니에게 집착하게 되는 소년의 이야기 ´푸어 보이´, 전쟁 중 동생을 잘 돌보지 못해 죽였다는 죄책감으로 자신의 아이를 살해하는 젊은 여자의 고백 ´죽은 아이를 키운다´, 전쟁의 어려움 속에서도 자신을 힘들게 키웠던 양어머니의 장례식에 와서야 공습으로 불탄 옛 집터를 돌아보는 중년 남자의 이야기 ´불탄 자리´, 식탐으로 인해 도둑질을 하다 소년원에 들어간 소년의 이야기 ´라 콤파르시타´ 등, 모두 끔찍한 전쟁 속에서 어떻게든 살아남으려 발버둥쳤던 작가의 체험이 생생하게 담겨 있는 소설들이다.
표제작 ´반딧불의 묘´는 다카하타 이사오 감독의 애니메이션으로 더 유명하다. 소설 ´반딧불의 묘´를 읽으면 두 주인공의 영혼이 현대 일본의 야경을 바라보는 장면을 넣은 것을 제외하고는 애니메이션이 원작을 충실히 옮겼음을 알 수 있다. 공습으로 집이 불타고, 전쟁터에 나가 소식이 끊긴 아버지에 이어 어머니마저 죽자 세이타와 세츠코는 친척집에 몸을 의탁한다. 그러나 친척의 냉대를 이기지 못하고 뛰쳐나와 방공호에서 살게 된다. 공습 사이렌이 울리면, 마을 사람들이 방공호로 대피한 사이 빈 집에 들어가 무엇이든 닥치는 대로 훔치는 세이타와 나날이 쇠약해지는 어린 누이 세츠코. 모기장 안에 잡아넣은 반딧불을 보며 잠이 들고 아침에는 밤새 죽은 반딧불을 묻어주는 이들 오누이의 생활은 안쓰럽기 그지없다. 애니메이션은 비참한 생활 속에서도 반딧불이 날아다니는 모습 등을 환상적이고 서정적으로 묘사했다. 그러나 애니메이션에 비해 심지어 반딧불마저 먹을 수 없을까를 생각하는 소설의 한 대목은 소설이 이들의 상황을 훨씬 참혹하게 그려내고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세이타와 세츠코의 고통에 가까이 가면 갈수록, 같은 시대 한반도에서 죽어갔을 수많은 아이들이 떠오르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세이타와 세츠코가 ‘학교에서 돌아오면 아버지가 보내온 상해제 초콜렛이 우편함 속에서 기다리고 있었고, 배가 조금 탈이 나면 사과즙을 내 거즈로 꼭 짜서 마시던 그 날들!’이라고 그리워하는 풍요로운 과거란 수많은 식민지인들의 피땀의 댓가이다. 그리고 그토록 처참한 전쟁을 일으킨 자는 다름아닌 일본이었다. 소설에서 결여된 것은 바로 이런 맥락에 대한 통찰이다.
반딧불이의 불빛 행렬은 마치 1935년 10월의 관람식 때와 같았다. 록고산 산중턱에 배의 형태로 큰 일루미네이션을 장식해 놓고 거기서 오사카 항의 연합 함대와 항공모함을 바라보았는데, 그 때 그 모습은 마치 막대기를 띄워 놓은 것 같았다.
전함의 이물에는 하얀 천막이 처져 있었는데, 아버지는 당시 순양함 마야에 승선하고 계셨다. 세이타는 필사적으로 그 군함의 모습을 찾아보았지만, 마야 특유의 절벽처럼 깎아지른 듯 솟아있는 브릿지는 보이지 않았고, 상대(商大)의 브라스 밴드가 군함행진곡을 연주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을 뿐이었다.
“아! 아빠는 어디서 전쟁을 하고 계신 걸까? 아빠의 멋진 사진이 땀으로 얼룩투성이가 되고 말았는데…….” (pp.47~48)
노사카 아카유카의 소설은 전쟁을 일으킨 당사자들의 자기 연민과 피해의식이라는 혐의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의 소설은 ‘살아남으려면 도망쳐야 했다’라고 이야기한다. 그저 본능적으로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나 살기 위해 달렸다면 많은 것들을 보지 못했을 지도 모른다. 그것을 탓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여전히 도망치고 있다니, 언제나라니. 이제 살아남았으니 그 도망치는 걸음을 멈추고 돌아봐야 할 것이 아닌가. 그들 스스로 파놓은 무덤에 빠져 죽은 사람들이 그들 말고도 얼마나 많은지. (윤정윤 phyllis@libro.co.kr /리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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