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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망 없는 불행 |  | |
| 개인적인, 그러나 너무나 객관적인 이야기들
´소망 없는 불행´에서 페터 한트케는 객관성을 잃지 않으려 노력한다. 그는 ‘방식은 좀 다르겠지만 마치 인터뷰 기자처럼 이 자살을 하나의 사건으로 재현하고 싶’다고 말한다.그의 말마따나 이 작품엔 어머니의 죽음에 관한 감상적인 회고나 연민이 표면화돼 있지 않다. 냉랭하고 사무적인 어조지만 그렇다고 감정이 완전히 사상된 보고서적 문체라고 보기엔 그 안에 농축된 감정의 사무침이 사뭇 견고하다. ´소망 없는 불행´에서 한트케는 그 자신의 톡톡 튀는 문학적 역량을 차분하게 가라 앉히고 있다. 슬픔과 회한, 그리고 세계의 부정성에 대한 냉소적 통찰 등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채, 행간 깊숙이 암각돼 있다. ´관객모독´ 등의 다른 작품들에 비한다면 비교적 전통적인 서사방식에 충실했다고 할 수 있지만, 그걸 두고 그의 작품세계가 온건하게 변했다고 말할 수는 없을 듯하다. 그보다는 이 작품이 한트케의 작품 중 가장 내면적이면서도 소박한 작품이라고 말하는 게 더욱 정확할 듯하다. 이 작품을 소설이라고도 에세이라고도 분류할 수 없는 까닭 역시 거기에 있다.
극히 개인적일 수밖에 없는 이야기를 지극히 객관적인 거리에서 담담하게 서술한 이 작품을 통해 한트케는 기존의 산문문학에서는 잘 찾아볼 수 없는 기묘한 소격효과를 낳는다. 한트케는 51세 때 자살한 어머니의 인생을 거꾸로 되짚음으로써 자신의 역사를 스스로에게조차 객관화시켜 버린다. 그는 어머니의 지난 시간들을 재현하면서 스스로 타자화된다. 어머니의 죽음을 통해 어머니의 삶 속으로 들어간(보다 정확히 말해 ‘관찰하는’) 한트케는 자신을 어머니의 아들 이전의 어떤 객체화된 서술가의 위치에 배치한다. 그가 이 작품을 쓰면서 가장 고심했을 부분 역시 이런 의도된 역전이었을 듯하다. 그렇듯 어머니의 삶을 그 아들이 객관적으로 재현했다는 건 감정적인 울렁임 이전의 우주적인 질서를 통찰하는 것에 다름아니다. 육친에 대한 사랑을 객관적으로 체화하는 그런 정신의 모험 덕에 ´소망 없는 불행´은 매우 전통적이면서도 범상치않은 독창성을 획득한다. 사랑에 대한 범우주적인 통찰이 이 작품속엔 담겨 있는 것이다.
「소망 없는 불행」이란 제목으로 묶인 이 책의 또다른 작품은 ´아이 이야기´다. 그러나 내용상 똑같은 제목을 같이 공유한다고 해도 별로 틀릴 게 없다. 두 작품은 모두 인간이 가진 근원적인 불행, 즉 보편적인 ‘소망 없는 불행’에 대해 얘기하고 있는 것이다. 한트케는 연극배우였던 첫번째 부인과 결별한 후, 홀로 딸 아미나를 맡아 기른 경험을 가지고 이 이야기를 썼다. 일테면 이 작품은 ´소망 없는 불행´의 반면교사와도 같은 작품이라 할 수 있다.
파리와 독일의 여러 도시를 옮겨 다니면서 아이를 키우는 남자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이 작품의 어조는 ´소망 없는 불행´의 담담한 서술과 별반 다르지 않다. 도전적이고 자유분방한 아방가르드 문학의 예민한 전사로 통하는 한트케의 문학적 바탕이 이토록 온기와 냉기가 겹친 그윽한 시선 위에 정초돼 있다는 걸 표일하게 드러내는 작품도 드물 것이다. 딸과의 체험을 통해 한트케는 자신의 예민하지만 신경질적인 정신이 쉽게 놓쳐버린 인간의 또다른 소우주를 체험한다. 적어도 문학 활동과 관련해서는 자신 이외의 여타의 것에 관심이 없다는 한트케지만, 그가 맞닥뜨린 섬세한 인간관계의 질곡은 강렬했던 자신의 문학적 기저, 즉 옹립된 자아의 강한 자의식에서 벗어난 새로운 인식으로 작가를 이끈다.
“처음으로 남자는 자기가 나쁜 인간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는 단순히 악한이 아니라 도덕적으로 구원받기 어려운 존재였다. 그의 행동은 속세의 어떤 벌로도 속죄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는 자신에게 뭔가 현실적인 것에 대해 지속적으로 고양된 감정을 부여했던 유일한 것을 파괴해 버렸고 늘 영원한 것으로 만들고 찬미하고 싶었던 그 유일한 것을 배신했다.”(p.122)
딸에게 손찌검을 한 이후의 심리상태를 묘사한 이런 표현은 적어도 한트케가 자신의 문학에서 한 발짝 물러서 스스로를 관찰하고 있다는 징후로 읽힌다. ´소망 없는 불행´ 이후 꼭 9년만에 쓰여진 이 작품은 그러니까 한트케가 어머니라는 거울 다음에 또다른 인간의 내면 - 그건 자신 아닌 타인에 관한 것일수도, 남성 아닌 여성에 대한 것일 수도, 날카롭고 첨예한 인식에 반하는 따뜻함과 부드러움에 대한 감화일 수도 있다 - 에 눈뜨게 된 계기가 된다. 자신의 이야기를 자신의 바깥에서 차분하게 서술하며 객관성의 우주로 나아가는 경지. 이건 문학의 궁극과 닿아있는 기본이자 가장 먼 지점이다. 「소망 없는 불행」에 담긴 두 작품은 바로 그 지점으로 향하는 한트케의 문학적 반환점이다. (강정 igguas@libro.co.kr /리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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