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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레벌루션 No.3 |  | |
| 살아있는 시체들의 마이너리티 리포트
한일 합작영화로 만들어져 더 유명해진 가네시로 가즈키의 「GO」(김난주 옮김, 현대문학북스)는 재일 한국인의 정체성 문제를 전혀 새로운 각도에서 경쾌하게 풀어낸 작품으로 적잖은 독자들을 매혹시켰다. 정치적·민족적인 문제를 정치나 민족의 개념을 내세우지 않고 순전히 젊은 감성의 영역으로 변환시킴으로써 보다 설득력 있는 문제제기에 성공했던 것이다. 이 때 젊은 감성이란, 사적인 의미가 강하다. 가네시로 가즈키는 자신의 실제 경험을 가감 없이 전달하면서, 자신이 직접 겪고 깨달았던 문제들의 본질을 통찰해낸다. 어쩌면 그에게는 선험적으로 주어진 정체성과 그것에 대한 명분보다는 그 자신의 현재적 실존이 더 중요했던 건지도 모른다.
「GO」를 읽어보면 알 수 있듯, 그는 스스로를 희화하거나, 사태의 심각성을 가벼운 농담으로 치부함으로써 문제의 본질을 역으로 통찰해내는 재주가 뛰어나다. 약간은 오만불손하고 경박스럽기도 하지만, 전체적으로 도저히 미워할 수만은 없는 악동들의 좌충우돌하는 모험담이 특유의 유머와 위트, 그리고 명쾌한 문장으로 표현된다. 「레벌루션 No.3」는 가네시로 가즈키의 그런 독특한 소설감각이 최초로 선보였던 그의 데뷔작이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지만, 일본은 전형적인 학력 중심사회다. 게다가 재일 외국인에 대한 편견과 차별이 뿌리깊다. 조총련계 재일교포로 태어난 가네시로 가즈키 역시 일본 특유의 차별대우와 경멸 속에서 성장기를 보냈다. 그가 소설을 쓰게 된 동기 역시 현실에서 채워질 수 없는 세계에 대한 자신만의 욕망과 이상을 그려보겠다는 야심 탓이었을 것이다. 그만큼 그의 데뷔작은 세상에 대한 저돌적인 악의와 순진무구한 열정들로 가득 차 있다.
“헤헤헤, 알 만하군. 순신은, 늘 다수 측이 이기게 돼 있어, 라고 말했다. 그 말대로 아까 우리에게 굴복한 놈들은 머지않아 사회의 한가운데서 다른 형태로 우리들을 굴복시키고 승리를 거머쥐려 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몇 번이나 패배의 쓴 맛을 보게 되리라. 하지만 그게 싫으면 이렇게 계속 달리면 된다. 간단하다. 놈들의 시스템에서 빠져나오면 된다. 초등학교 1학년생들의 달리기 시합처럼 계속 달리면 된다. 빛 대신에 모두의 모습이 눈앞에 떠올랐다. 모두들, 뛰어, 뛰어, 뛰어…….”(´런, 보이스, 런´ p.127)
「레벌루션 No.3」은 모두 세 개의 단편들이 연작형식으로 묶여있다. 세 개의 이야기들을 이끌어 가는 주인공은 한 명의 인물이 아닌 47명의 마이너리티 그룹 ‘더 좀비스’, 즉 ‘살아있는 시체들’이다. 그 별명은 신주쿠의 전형적인 삼류남자고등학교에 다니는 이들에게 반경 2킬로미터 안에 위치한 일류고등학교 학생들이 부쳐준 것인데 그 이유가 가관이다. 첫째는 평균 학력이 뇌사 판정에 버금가는 혈압 수준밖에 안된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죽여도 죽을 것 같지 않아서’라는 거다. 그런데 정작 ‘더 좀비’들은 타 학교 학생들의 그런 경멸을 사뭇 유쾌하고 자랑스럽게 받아들인다. 일테면 ‘영웅에게 없어서는 안될 자질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주위의 경멸을 그런 식으로 희화시키는 능력은 상대의 머리꼭지에 올라있다는 자부심과 여유 없이는 불가능하다. 물론, 그게 스스로에 대한 예민한 보호심리에서 나오는 건 분명하지만.
그런 ‘더 좀비스’가 편견과 차별로 가득찬 세상을 향해 내세우는 무기는 돈과 페니스, 두뇌와 주먹, 그리고 노력이다. 그들의 방법론은 머리 좋고 공부 잘하는 여자들과 결혼해 새로운 세대의 자손들을 번창하게 하는 것이다. 일종의 유전자 혁명이라 할 수있는 그들의 이상은 생물교사 닥터 몰로의 복음과도 같은 메시지에 자극받은 것이다. 다소 황당무계하고 우스꽝스러울 수도 있는 그런 이야기를 가네시로는 특유의 유머와 하드보일드한 문체로 경쾌하게 들려준다. 슬픔조차 희화하고, 사뭇 심각하고 무게겁고 느껴질 수 있는 정체성의 문제를 이토록 가볍게 소설화시키는 가네시로의 장기는 그 자체로 독보적이라 할만하다. 3인종 혼혈아 아기날드, 미군의 피가 섞인 혼혈아 히로시, 조총련계 출신의 순신등 이 작품의 주요 등장인물들은 태생에서부터 코스모폴리탄적인 감수성을 지녔다. 그들은 급진적일 정도로 단순하지만, 단순한만큼 문제의 핵심에 육체적으로 맞닿아있다. 그들은 단지 이렇게 말하고, 그대로 실천할 뿐이다.
“무슨 일이 있어도, 끝까지 춤추는 거야.” (´이교도들의 춤´ p.274)
이건 그들이 세계의 난제들을 극복하고, 그들만의 이상(그게 실현되든 안되든)을 현실화시키는 유일무이한 무기이다. 그리고 그게 혼융된 정체성을 가지고 일본어로 소설을 쓰는 가네시로의 무기인 것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강정 igguas@ libro.co.kr/리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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