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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뻬쩨르부르그 이야기 |  | |
| 환상과 풍자의 대가 고골
엽기적인 소재, 과감한 생략과 반전의 구성, 풍자와 상징으로 가득한 문장이 정신없이 뒤죽박죽 전개된다. 이것이 러시아 사실주의 문학의 선구자로 일컬어지는 니콜라이 바실리예비치 고골(1809∼1852)의 소설적 특징이다. ‘뒤죽박죽’이란 표현을 썼지만 고골의 소설은 정말 뒤죽박죽 전개된다. 흡사 쿠엔틴 타란티노의 ‘펄프픽션’의 전개에 비견될 만 하다. 읽는 동안 뇌가 공포와 쾌감으로 범벅된 롤러코스터를 탄 듯 빠르게 내달린다. 고골이 어째서 사실주의 작가란 말인가? 「뻬쩨르부르그 이야기」를 읽어본다면 이 책이 환상문학, 호러문학이라고 단언할 것이다. 도스또예프스키는 고골의 〈외투〉를 일컬어 ‘러시아 소설은 모두 고골의 〈외투〉에서 나왔다’고 선언했다던가. 〈외투〉에서 나온 건 러시아 소설뿐만이 아닌 듯 하다.
「뻬쩨르부르그 이야기」에 수록된 작품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코〉, <외투〉, 〈광인일기〉,〈초상화〉,〈네프스끼 거리〉가 실린 고골의‘뻬쩨르부르그 산문시대’라 일컬어지는 시기에 썼던 단편모음집이다. 이 작품들은 대개 어렸을 적 청소년 문고판으로 읽었거나, 읽지 않았더라도 그 내용을 다이제스트로 알고 있을 만큼 유명한 것들이다. 그러나 고전을 지금의 언어로 새롭게 번역하려는 취지에 따라 출간된 「뻬쩨르부르그 이야기」는 그 내용을 알고 있다하더라도 손에 잡으면 놓기가 쉽지 않을 만큼 재미있다. 〈코〉의 첫 장면은 요즘의 신세대 작가보다 날렵한 이야기 전개 솜씨를 보여준다. 이발사 이반 야꼬블레비치가 아침 식사 도중 빵에서 나온 코를 발견하고 그것을 몰래 버리려고 좌충우돌하는 이야기를 하다가 다음과 같이 쓰고, 다른 전개로 넘어간다.
러시아 소설을 읽을 때면 정말이지 엄청나게 복잡하고 긴 이름 때문에 고역을 치른 적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고골의 소설을 읽을 때 그것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 고골의 소설에서 주인공들 이름은 전부 기막힌 뜻을 지닌 단어의 조합이거나 ‘말장난’ 같은 것이므로 상세한 주와 함께 읽으면 된다. 가령, 이반 야꼬블레비치의 이름은 감정이 없는 사람을 일컫는 ‘이반’이란 이름과 바보 같은 사람을 일컫는 속담에서 따온 ‘야꼬브’란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소설을 읽을 때 이반 야꼬블레비치가 등장하면 ‘감정 없는 바보’라는 이름으로 읽으면 되는 것이다.‘바지 입은 여자’와 같은, 장정일식 소설 주인공 이름 같지 않은가. 러시아에서는 이것을 ‘캐리토님 기법’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뻬쩨르부르그 이야기」를 읽는 또 다른 재미는 청소년용 문고판에서는 절대로 읽을 수 없는 정신분석적 해석이 달린 주석들이 등장한다는 점이다. 물론 이 주석들은 본 소설을 읽는데 방해가 되지 않는다. 오히려 어렸을 적 읽던 동화의 성인버전을 읽을 때처럼 흥미진진하다. 남성성을 상실하고 그것을 되찾는 이야기인 〈코〉라든가, 〈외투〉는 여성의 상징이라든가 하는 해석을 읽을 수 있다. 〈광인일기〉는 관음증과 이상성애를 노출한다고 하니 소설을 읽고 있으면 기괴하고 야릇한 종잡을 수 없는 소설을 읽고 있다는 착각에 빠진다. 이런 해석이 무리도 아닌 것이 본 소설에 어렸을 적에는 차마 발견할 수 없었던 문구들이 꽤 등장한다. 더불어 고골의 소설을 읽다보면 풍자와 상징에 있어 상당히 치밀히 계산된 장치들이 숨겨져 있다고 느끼게 된다.
“이반 야꼬블레비치, 자네 손에서 구린내가 나!”
그러면 이반은 반문하는 것이었다.
“글쎄요, 왜 구린내가 날까요?”
그럴 때 8등관은 말했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구린내가 나는 건 사실이야.”(P. 14)
도대체 왜 구린내가 나는지 본 소설을 다 읽어봐도 도통 설명이 없다. 이 대목이 왜 존재하는지 조차 모르겠다. 그런데 이 대목에 친절하게도 주석이 달려 있다. 비평가 예르마꼬프의 가설로 소개가 되어있는데, 이반 야꼬블레비치의 손에서 풍기는 구린내는 항문 에로티시즘의 증거라는 것이다(기막힌 해석이다). 이런 대목들을 읽게 되면 혹시 내가 눈치채지 못하는 우스꽝스러운 비밀이 또 있지 않을까 은근히 기대하게 된다.
얼마 전 고골의 단편소설 〈코〉를 기념해 뻬쩨르부르그에 전시된 대형 코 조각상이 소설 내용처럼 없어지는 일이 발생했다고 한다. 100㎏짜리 대리석 코 작품이 감쪽같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그 없어진 코는 거구를 이끌고 정말 소설에서처럼 고위관리가 되어 시가지를 활보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김은선 kong@libro.co.kr/리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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