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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휴먼 코미디 |  | |
| 희망으로 커가는 열 네 살 가장
간혹 TV를 통해 나오는 소년소녀 가장이나 독거 노인들의 생활을 보게 되면 궁금해진다. 주제넘은 소리 같지만 그들은 하나같이 아직 세상은 살 만한 곳이라는 듯이 미소 짓는다. 내가 보기에 그들에게 희망은 넘쳐난다. 내일의 양식을 걱정하며 단칸방에 사는 처지이지만 힘들다는 내색은 웬만해선 안 하려든다. 그들은 분명 남보다 많은 악조건 속에 처해있건만 좀체 불평을 터뜨리지는 않는다. 때문에 나에게 그들의 희망은, 삶의 낙관은 심정적으로 쉽게 납득되지 않는 것들이었다. 때로 그들은 대책 없이 밝게만 보인다. 어렵게 사는 사람들에게 희망은 더 간절하고 소중한 것이기 때문일까.
「휴먼 코미디」의 작가 윌리엄 사로얀은 두 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곤궁한 집안 형편 때문에 고아원 생활도 하고 어릴 때부터 신문팔이, 전보 배달 등을 닥치는 일을 했다. 그러나 그런 팍팍한 시절을 보낸 그가 쓴 소설은 말 그대로 ‘정말 따뜻한 이야기’로 채워져 있다. 작품에 등장하는 사람들도 어렵긴 마찬가지이지만 그들은 언제나 만면에 웃음을 띠고 있다. 궁색한 삶에서도 바르게 살려는 지침을 늘 가슴에 새기고 있는 듯하다.
아버지는 이 년 전 돌아가시고 형 마커스마저 2차세계대전에 참전하자 열 네 살 호머는 가장이 된다. 그가 부양해야 할 가족은 여름철마다 통조림 공장에서 일하는 어머니와 주립 대학에 다니고 있는 누나 베스, 그리고 네 살바기 어린 동생 율리시즈가 있다. 호머가 할 수 있는 일은 야간에 전보를 배달하는 일. 그러나 2차 세계대전 중이라 대개의 전보가 사망이나 실종을 알리는 우울한 내용뿐이다. 그는 ‘이런 전보를 가지고 와서 죄송하지만, 이건 제 일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어요.’(P.27)이라고 속으로 수없이 되풀이한다. 첫 출근을 마치고 돌아온 호머에게 세상은 결코 예전과 같지 않다.
“넌 모든 게 달라졌단다. 하지만 전과 달라진 게 없다는 것도 사실이야. 네가 외롭다고 느끼는 것은 이제 어린애가 아니기 때문이야. 세상은 항상 그런 외로움으로 가득 차 있단다.”(P.36)
어머니는 호머에게 ‘너는 이제 어른이 된 거’라는 말을 전한다. 아직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호머는 자신이 어른으로 성장하는 것을 담담히 받아들인다. 그에게 사춘기의 감상이나 반항 같은 것은 끼어들 여지가 없다. 친구들과 벌이는 달리기 시합에 들떠 있을 나이의 호머를 어른으로 키우는 손은 가족뿐만 아니다. 35년간 고대사를 가르친 힉스 선생과 배달부 출신인 스팽글러 아저씨와 젊은 시절 가장 빠른 전신기사였던 그로건 할아버지가 알게 모르게 그를 키워낸다. 그들에 의해 호머는 자신의 고장 이타카 사람들을 위해 연민의 눈물을 흘리며 세상의 고통을 짊어지고 나눌 줄 아는 어른이 되어간다. 2차세계대전이라는 암울한 배경 속에서 호머의 성장은 곧 희망 그 자체인 것이다.
“전에는 어른이 되면 절대 울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젠 어른이 되고 나서야 울기 시작하는 모양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어른이 되고 나서야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게 되니까 그런가 봐요.”(P.198)
‘이런 세상이 싫어요.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세상이 좀더 나아졌으면 좋겠어요.’(P.144) 열 네 살 소년이 이런 희망의 말을 하는 것을 보자니 속이 쓰리긴 하지만 나는 그 희망에 천천히 전염되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일찍이 희망을 노래한 소설들은 많았다. 아니 모든 인간의 노래는 희망을 담고 있다. 우리가 이토록 구구절절, 주야장창 희망을 읊조리는 건 질리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 희망을 품는 건 인간으로 할 수 있는 일 중에 결코 질리지 않는, 드문 일임에 틀림없다.(김은선 kong@libro.co.kr/리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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