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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침묵으로 지은 집 |  | |
| 아물지 못한 상처가 아프다
북한의 핵 문제가 불거지면서 얼마 전 미국의 스타즈 앤드 스트라이프스 신문은 한반도의 전쟁에 관한 보도를 내 놓았다. 전쟁이 발발할 시엔 개전 24시간 이내 서울 등 수도권에서만 100만명까지 희생자가 발생할 것이라는 가상의 시나리오다. 남북한 모두 아비규환이 될 것이며 포탄 30만~50만발이 서울에 비처럼 쏟아질 수 있다고도 전했다. 상상하는 것 만으로도 등골이 오싹한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그들은 어땠을까? 6·25를 겪은 사람들. 남북 이산가족 상봉에서 눈물조차 흘릴 수 없었던 그들의 아픔은 시퍼런 멍이 되어 오십년 동안 가슴에 남았을 것이다. 죽으면 죽었지 난 견디어 낼 수 없을 것 같다.
그런 그들의 이야기가 소설로 나와 또 한번 우리들의 가슴을 친다. 조한혜정, 오숙희 등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는 여성사회학자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는 학자이자 동국대 사회학과 교수인 조은 씨가 6·25에 관련된 기억을 풀어냈다. 학자가 낸 소설이라… 어딘지 딱딱하고 권위적이지 않을까라는 선입견이 앞선다. 하지만 책을 펼쳐 들고 몇 장을 넘기기도 전에 그 선입견은 기우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마치 TV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의 영상을 보는 듯한 느낌이다. 저자의 개인적 경험을 바탕으로 해서 쓰여졌다는 이 소설은 논픽션에 가깝다. 저자 조은 씨 역시 ‘작가의 말’에서 “소설을 쓸 생각이 아니었다. ‘어떤 기억들‘에서 놓여 나고 싶었다”라고 고백하고 있다.
이 책에서 저자는 6·25 당시 M시 부시장이었으나 낯선 사람들에게 끌려간 뒤 행방불명 되어 스스로 지워야만 했던 아버지에 대한 기억을 더듬는다. 어머니가 ´보통 남자´라고 회상하는 아버지, 친구들이 ´멋쟁이´ ´청결과장´이라고 기억하는 아버지, 남농의 그림이나 병풍 서화 등을 귀히 여긴 아버지, 낭만적 좌익 또는 중도 좌파쯤으로 어정쩡하게 해방공간에 서 있던 아버지, 태어난 날이 기일이 된 아버지의 자리를 찾는 과정에서 ´나´는 스물 여섯에 혼자되어 아들과 딸을 키워야 했던 어머니의 심정을 이해하고 감싸 안게 된다.
말할 수 없는 것들이 있다. 다 알면서도 침묵으로 일관하는 것들. 예를 들어 어린 시절에 사고로 죽은 형제의 이야기나 유산된 아기의 이야기 같은 것. 더는 할 수 없는 이야기들이다. 너무 아픈 이야기는 더 이상 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그런데 왜 작가는 그 아픈 이야기를 다시 들추어낸 것일까.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도 여전히 현실의 어귀마다 자리하여 순간순간 익숙하고도 생소한 아픔을 던져주었던 기억들이, 더듬어지고 말해지는 과정을 통해 비로소 진정한 씻김굿을 한 것이었을까. 저자는 이 책을 통해 독자에게 나지막이 속삭인다. 이제는 자신으로 향하는 ´기억 여행´을 하라고. 상처는 아직 아물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니 아물 수 없기 때문이다. 다만 침묵할 뿐이다. 그러나 누군가는 그 침묵을 깨뜨려야 하는 것이다. 진실은 깨어진 침묵의 뒤에 있는 것이다. (고지혜 gomgom@libro.co.kr/리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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