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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란꽃 |  | |
| 노발리스, 그대의 낭만은 독보적이라오
거의 비슷한 시기에 같은 작품이 출판사 세 곳에서 쏟아져 나왔다. 18세기 독일에서 발표된 낭만주의의 대표적인 작품인 노발리스의 소설 「하인리히 폰 오프터딩겐」(원제)이 그것인데, 각각 「파란꽃」(열림원), 「푸른 꽃」(민음사), 「푸른꽃」(범우사)으로 나왔다(범우사판은 〈밤의 찬가〉와 〈성가〉도 함께 싣고 있다). 낭만주의라, 학교 교육을 졸업하면서 거의 듣지 못했던 낱말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기억하고 있는 낭만주의에 대해 말해볼까. 아니 정확히는 내가 알고 있다고 생각해온 낭만주의란 무엇일까. 작가는 ‘악’하는 순간에 영감이나 계시를 받아 신들린 것처럼 작품을 써내려 간다. 그리고 그 작품은 불세출의 거작이다. 어떤 경우에라도 더할 나위없는 작품이 되고야 만다. 신을 영접했을 때 점바치가 내뱉는 말 한마디마다, 기침 한자락에라도 영험함이 깃들여 있듯이. 거기에는 이성이 있을 틈바구니는 조금이라도 없다. 낭만주의의 기원을 ‘자연으로 돌아가라’는 경구로 유명한 루소의 사상에서 찾는 통설을 상기해보라.
노발리스(Novalis), 본명은 프리드리히 폰 하르덴베르크. 그는 1772년 독일 니더작센의 귀족가문에서 태어나 대학에서 법학과 철학을 공부했고 누구와 교류를 하고 무엇에 심취했었고 행정 서기관으로 근면 성실하게 일했고 블라블라. 중요한 건 1794년이다. 그는 14세의 소녀 소피 폰 퀸에 첫눈에 반해 약혼했으나 삼 년 뒤 그녀가 결핵에 걸리자 불치의 병을 고치려 스스로 의학 공부에 매달리는 열성까지 보였지만 소피는 세상을 뜨고 만다. 노발리스는 어린 소피와의 만남으로 문학적 감수성에 불을 지피고 그녀의 죽음을 통해 서사시 〈밤의 찬가〉를 집필하게 된다. 노발리스는 소피가 죽은 해 그녀를 닮은 율리 폰 카르펜티어를 만나 다시 약혼하지만 1801년 결혼도 하지 못한 채 그 역시 결핵으로 요절한다.
낭만주의 문학의 시금석이 된 「파란꽃」은 노발리스가 죽은 지 일년 뒤에 미완의 작품으로 출간되었다. 소설은 기독교 전성기 때인 중세를 배경으로 기사 시인이었던 발터 폰 포겔바이더와 볼프람 폰 에셴바흐의 노래시합에 관한 전설에 나오는 궁정 연애가수인 하인리히 폰 오프터딩겐을 주인공으로 하고 있다. 소설의 첫 장은 하인리히가 파란꽃의 꿈을 꾸고 신비한 꽃 가운데서 나타난 미소를 띤 아름다운 여인을 찾아 길을 떠나는 것으로 시작된다. 다양한 인물을 만나고 새로운 세상을 겪는 도정의 끝에 하인리히는 마틸데라는 여자와 만난다. 그녀를 보자마자 그는 꿈속의 여인임을 알게 되고 사랑에 빠지게 된다.
소설은 “언제나 놀라움·슬픔·고통·악과 같은 것들이 세상에서 필요없게 될까요?”(P.225)와 같은 애매모호한 질문과 그에 따르는 장황한 서술을 답으로 준비해두는, 약간은 지루한 형식을 갖고 있다. 그러나 우주와 인간, 자연에 대한 근원적인 물음과 통찰은 재미없다고 쉬이 던져버릴 수 없는 무게를 가지고 있다. 청년의 길떠나기와 응당 따르기 마련인 성장의 과정을 통해 노발리스는 온갖 종류의 교양과 지식을 쏟아 붓는 노고를 아끼지 않는다. 때문에 「파란꽃」을 단순히 소설책이 아니라 낭만주의 사상서, 혹은 철학서로 칭해도 무방할 정도다.
특히 노발리스는 지치지도 않고 소설 내내 시인관, 시관에 대해 집요하게 이야기한다. 「파란꽃」 자체가 마치 시인을 위해 쓰여진 소설 같이 느껴진다. 시인은 지상에 발을 디딘 예언가이자 하느님의 은총을 받은 성자, 사람을 홀리는 마력을 가진 광인으로 묘사된다. 시인은 지상 최고의 감응력을 가진 독보적인 존재이자 전지전능한 자연과 맞먹는 인간이다. 주인공 하인리히가 마틸데와 함께 만난 사람은 바로 그녀의 아버지이자 시의 스승인 클링스오르였다. 클링스오르는 하인리히에게 시에 대해 가르친다. 사랑을 통해, 또한 시의 힘으로 하인리히는 위대한 시인이자 완벽한 인간으로 성장한다.
낭만적인 기질과 낭만성에 대한 매료를 전략과 전술로 삼는 몇몇 로맨티스트를 본 사람들은 그들의 속이 뻔히 비치는 무책임한 낭만 타령에 질려버렸을 게다. 감정의 거칠 것 없는 표현, 신적인 영감과 직관에 의해 범인들이 보지 못하고 도달할 수 없는 세계와 맞닿아있는 천재들, 그리고 ‘천재의 감정 표현’이라는 합체에서 나오는 상징과 암시는 어디로 다 달아나고 말았는가. 낭만은 자유를 동경하며, 환상을 쫓고, 자아를 숭배하는 것에 주력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정신이자 삶과 세계를 해석하는 다른 방법이다. 현실은 온데간데 없고 감상적이고 달콤하기만 한 작품으로 낭만주의를 기억하고 있다면 분명 「파란꽃」에 놀라게 될 일이다. (김은선 kong@libro.co.kr/리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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