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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소가 아름다운 친구 |  | |
| [김 규 화 / 시문학사 발행인]
육십세가가 넘었는데도 그는 여전히 신선하다. 전화를 타고 오는 그의 음성이 신선하고 세상을 바
라보는 자세가 신선하다. 나는 무엇보다 그의 전화 음성이 좋다. 어느 때 한 번 탁한음성으로 반
갑지 않게 받은 적이 없다. 설령 그가 지독한 어려움이 발등에 떨어졌다 해도 일단은 그 맑은 음
성으로 반갑게 수인사를 하고서 ´실은 이런저런 일(문제)이 있는데…´로 운을 떼고는, 다시 그 천
성의 명랑함으로 되돌아 간다. 아니 그는 설령 그 ´어려운 일´이 있다 하더라도 나한테 쥐어짜면서
전화로 말하지는 않는다. 그렇게 하는 일은 오히려 내 몫이다.
거기다가 그는 항상 웃는다. 찡그린 얼굴은 본 적이 없다. 그의 집에 점심 초대를 받으면, 파출
부가 부엌을 지키고 우리의 식사를 돕고 있다. 그 집에 점심 먹으러 가끔씩 드나든 지가 벌써 십
수년이 되고 파출부가 몇 번 바뀌었어도 그 파출부들은 우리, 친구들이 현관문을 들어가든지 식사
를 할 때면 웃음을 얼굴에 가득 담고서 일한다. ´왜 저리 의도적으로 웃을까, 부자연스럽게…´ 그
런 태도가 한편 싫지 않으면서도 꼭 마땅하지도 않았으나, 언제 한 번인가, 그의 말을 언뜻 듣고
는 ˝아, 그렇구나˝고 속으로 쾌재를 하였다. 즉, ˝웃으세요, 김 집사.(그는 파출부를 굳이 교회 직
책으로 불렀다) 항상 웃어요.˝ 하는. ´웃어야 복이 와요. 웃어서 손해본 것 아무것도 없어요. 만사
고맙게 즐겁게 생각하고, 그 첫 실천으로 먼저 얼굴에 웃음을 띄어봐요. 좋은 일이 많이 생길 테
니´하는 그의 말뜻이 아니었을까.
그의 말뜻이 다음의 행동으로 이어진 것을 봐서도 그냥 알 수 있었다. 우리에게 점심을 차려주
고는 웃음띤 파출부는 거실에 앉아 슬리퍼를 깁고 있었다. ˝무슨 슬리퍼를?˝ 내가 의아해하며 눈
짓을 하자 파출부 대신 그가 말하기를 ˝버리면 아깝잖아. 우리는 떨어지면 늘 이렇게 기워 신어.˝
했다. 맙소사 백만장자가 이게 무슨 궁색이람. 내가 속으로 말하는데, ˝무얼 낭비할 필요는 없지
않아. 물건을 아껴 써야 하지…˝는 그의 말이다. 그러고 보니 음식도 절대 버리지 않는다. 집안 여
자식구들끼리 분배해서 먹어치워버린 것을 알았다.
그러면서 그는 알게 모르게 남을 돕는다. 돈을 써야 할 곳이 있을 때는 아낌 없이 쓴다. 그의
말대로 ˝(내가) 밥술이나 먹고 사는데 그렇게(적게) 해서야 쓰겠느냐˝가 이유이다. 그는, 더불어
정을 나누며 살아가고 있는 이웃들에게 하나하나 신경을 써서 그야말로 안 미친 곳 없이 물질로,
말로, 몸으로 햇빛처럼 쬐어준다. 그러고는 그 착한 일을 얼굴에 표시하지도 않고 벌써 다 잊어버
린다.
말하자면 물질에 집착하지 않는다. 돈이 많으니까 그렇지라고 간단히 말해버릴 수 있지만 돈이
있으면 있는대로 쓸 곳은 더 많아지고 그래서 더 돈을 갖고 싶을 텐데…
언젠가 내게 시집을 내라고 상당액의 돈을 주기에, 나는 이렇게 말하면서도 고마워했다. ˝혼자
서만 좋은 일 다하고 사네. 그래, 혼자만 복 받을 거야?˝
이와 관련해서 십수년 전에 그가 한 말이 생각난다. ˝돈을 어느 정도 갖고 보니 인생이 너무 허
무하다는 생각이 들어. 돈만 있으면 뭐해. 인생은 유한한데. 삶은 돈보다 고귀한 건데…˝ 그래서
그는 나이 오십에 마저 못 채운 학사 졸업을 하고 3년 더 공부해서 석사 학위를 취득한 것일까.
그는 아름다운 나의 친구다. 육십 넘게 살아오면서 어려운 일도 많았으련만 그때마다 삶에 충실
하면서 해맑은 지혜로 극복해나간다. 그러나 명석한 판단력을 가지고 사회비판도 많이 하는 사람,
유달리 정이 많아서 울기도 잘하고 샘이 많아서 친구간에 갈등도 가지는 약점도 있는 사람.
그러나 이런 약점은 그의 많은 장점에 흔적도 없이 감추어지는 내 친구, 아름다운 그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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