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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화문 지하도 아주머니 |  | |
| 광화문 지하도에는 많은 노점들이 있다. 크고 작은 좌판 위에 갖가지 물건을 쌓아 놓고
지나가는 이들의 눈길을 끈다. 이따금 퇴근길에 그곳을 지나가며 새로 나온 자명종이며
장난감들, 상자째 쌓아 놓고 번개 세일을 하는 옷가지들을 두런두런 살펴보는 것은 쏠쏠한
재미 가운데 하나다. 지하철 5호선이 개통된 뒤에는 노점들이 더 많아져서 꽃이며 비디오,
가방 같은 것들도 지하도 한 귀퉁이를 차지하고 있는데, 내가 자주 찾는 곳은 신문을 파는
곳이다. 직장생활을 하는 동안 홍보나 출판관계 일을 오랫동안 해 온 터여서, 언젠가부터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다음날 조간을 미리 사서 보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또 막 나온
신문의 잉크 냄새를 맡으면 은근히 기분이 좋아지기도 했다.
광화문 근처에 신문판매대가 많지만 내가 다른 곳을 찾지 않고 유독 지하도에서 신문 파는
아주머니에게 가는 것은 몇 해 전 일 때문이다. 그날도 무심히 퇴근길에 신문을 사고 나서
동전을 찾는데, 동전은커녕 아예 지갑이 없었다. 어디서 잃어버렸는지, 아니면 회사 사무실
서랍에 넣어 두고 그냥 왔는지 알 수 없었다. 신문 값은 물론이거니와 집으로 갈 버스비조차
없어 쩔쩔매고 있는데 아주머니가 물었다. “왜 그래요, 돈이 없어요?” 나는 난처한 표정으로
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집에 갈 차비도 없겠네.” 그러더니 아주머니는 구겨진 천 원짜리
한 장을 건네주었다. “다음에 올 때 주세요” 하면서. 나는 문득 가슴이 뭉클해졌다.
서울 생활을 한 지 이십여 년이 지났지만 이런 일은 처음이었다. 내게 서울이라는 도시는
모르는 이에게는 버스 토큰 하나 빌려 주지 않는 곳이었다. 그래서 언젠가는 집까지 걸어
간 적도 있었다. 그런데 몇 차례 들러 신문을 산 일밖에 없는데, 이름도 주소도 모르는
이에게 선뜻 돈을 빌려 준다는 것은, 더구나 신문을 파는 가난한 아주머니가 ….
그날 이후 나는 신문을 살 때마다 꼬박꼬박 광화문 지하도를 찾게 되었다. 이제는 웬만큼
친해져 서로 안부도 묻게 되었고, 날이 추워지면 차디찬 시멘트 바닥의 냉기를 견디고
있을 아주머니가 걱정되기도 한다.
지난해 연말, 회사에서 나온 달력을 건네주었더니 아주머니는 “고마워요” 하면서 빙긋
웃었다. ‘천만의 말씀. 오히려 아주머니께 고맙지요. 저에게 사람을 믿고 사랑할 수 있는
법을 가르쳐 주셨으니까요.’ 어느새 훈훈해진 내 가슴속에 오래오래 맴돌던 말이었다.
좋은생각/전동균 님(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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