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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물고기가 꾼 꿈 |  | |
| 삶의 어둡고 깊은 내부에서 솟구쳐 나오는 따뜻한 호흡
〈쓴다는 것은 끔찍한 일상〉이라는 글에서 소설가 유미리는 아쿠타가와 상의 수상식이 있던 날 밤, 심사위원들과 함께 있던 술집에서 일어난 일을 전한다. 그 자리에서 ‘어떤 저명한 작가’가 “이젠 가족 이야기는 그만 좀 하지 그래, 넌더리가 나더군”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사실 유미리에게 이런 말은 좀 가혹하다는 느낌이 들지만, 그만큼 유미리의 가족사가 곧 유미리의 문학을 뜻할 만큼 일본 사회에는 널리 알려졌다는 반증인 셈이다. 그런 점에서 보자면 이번에 출간된 유미리의 에세이 「물고기가 꾼 꿈」(김난주 옮김, 열림원)은 다시 유미리의 가족사를 다룬다는 점에서 ‘넌더리’가 난다던 그 ‘어떤 저명한 작가’를 떠올리게 하기도 한다.
이 책은 1992년부터 2000년까지 8년에 걸쳐 여러 매체에 기고한 짧은 글을 모은 책이다. 희곡 「물고기의 축제」소설「풀하우스」「가족 시네마」「골드러시」등의 내용이 모두 ‘가족’을 주제로 했다는 점에서 알 수 있다시피 이 시기 유미리는 ‘가족의 붕괴’라는 것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러니 이 기간 동안에 쓴 이 책의 글들이 자신의 가족사를 다루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사실 이 책은 작년 12월에 나온 「생명」(김유곤 옮김, 문학사상사)과 겹쳐 읽을 필요가 있다. 이 책에 실린 〈엄마에 대한 복수 ― 아이를 낳지 않는 것〉이란 글에서 유미리는 가족으로 인해 야기된 비참한 과거와 부모에 대한 복수의 마음으로 평생 독신으로 지낼 것이며 적어도 아이는 낳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생명」에서 유미리는 죽음과 재생이라는 문제에 깊게 침잠한 나머지 아기를 낳기로 결심하고 스스로 미혼모가 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이런 변화 때문일까, 유미리는 책의 서두에 “출판에 임하여 나는 교정지를 읽지 않았다. 원고를 다시 한 번 읽어보지 않고 출판하기는 이번이 처음인데, 그 이유는 아주 단순하다. 가필하거나 정정할 마음이 없었기 때문이다. 스물 세 살의 내가 쓴 글을 서른 두 살의 내가 고친다― 물론 고치는 것은 가능한 일이지만, 그렇게 했다면 원래의 형태를 알아볼 수 없을 만큼 손질했을 것이다. 그리고 삼분의 이 정도는 삭제되어 얇은 책이 되고 말았을 것이다”라고 쓰고 있다. 이런 점에서 이 책은 유미리가 가족간의 아픔으로 점철된 인생의 전반기를 떠나보내며 엮은 글들이라고 할 수 있다.
말했다시피 이 책은 널리 알려진 가족사를 다시 말한다는 점에서 여러모로 불리한 조건이다. 하지만 막상 책을 펼치면 이 불리함은 눈 녹듯이 사라진다. 세상을 바라보는 유미리의 시선이 가 닿는 그 깊이 때문이다. 절망을 얘기하면서 유미리는 초등학교 시절을 떠올린다. “내 자신의 짤막한 그림자를 깡충깡충 밟으면서, 그러고는 잠자리채 안에 나비를 가둬놓고 오른손 집게손가락과 엄지손가락으로 살며시 날개를 잡아 가져온 라이터로 불을 붙였다. 나비는 불타오르며 8월의 하얀 태양을 향해 나풀나풀 날아오르다 금세 땅으로 떨어졌다. 나는 아마도 그 나비처럼 죽으리라.” 또 열 다섯 살 되던 해 봄에 학교에서 쫓겨날 때의 일이다. 교장실에 무릎을 꿇고 비는 아버지에게 교장 선생님은 아버지를 내려다보면서 다른 학생들에게 독을 뿌리고 다니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냉정하게 말했다. 그 시절을 유미리는 다음과 같이 기억한다. “교문까지 걸어가는 길은 떨어진 벚꽃잎으로 하얬다. 아버지에게 죄송하다고 사과하고 싶었지만, 내 입술은 꾹 닫힌 채 열릴 줄을 몰랐다. 아버지의 등이 졸고 있는 사람처럼 흔들렸다. 나는 꽃향기 속에서 아버지의 애환을 읽었다.” 이 책에 실린 글들은 유미리가 자신의 삶과 가족을 얼마나 깊이 들여다봤는지 보여준다. 담담한 목소리로 유미리는 삶의 아주 깊은 곳은 꽤나 어둡고 빠져 나오기가 여간 힘들지 않다고 말한다. 서두에 말했던 ‘어떤 저명한 작가’와 마찬가지로 한국에서도 유미리의 삶을(예컨대 「생명」의 표지 같은 경우)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경우가 있었다. 자기의 아픔과 기억을 판다는 비판이다. 하지만 이 책은 그 비판이 얼마나 무모한 것인지 보여준다. 단순히 아픔과 기억을 파는 사람이라면 이처럼 울림이 큰 문장을 쓸 수 없기 때문이다.
언젠가 소설가 한수산씨는 유미리의 글을 대할 때마다 그 무서운 감성이나 놀라운 재능과 함께 ‘사람’을 바라보는 ‘따뜻한 눈’을 느낄 수 있다고 말한 바 있다. 그는 《주간 아사히》에 연재되던 유미리의 글을 두고 “자신의 불행한 개인사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가족의 의미를 따뜻하게 성찰하는 글이었다. 상주가 오히려 문상객을 위로하듯”이라고 표현했다. 이 책은 한수산씨의 말이 무슨 뜻임을 분명히 알게 해준다. (김연수/리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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